나는 윗집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고있다

이사떡 덕분에 진짜로 ‘이웃사촌’

by 무지개 연필

입주 시기가 비슷해도 위 아래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다.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떡을 사오라고 했다. 명절에나 나올 법한 커다란 팩에 온갖 떡을 사 온 남편을 보고, ‘또 손이 컸군’ 하며 웃으면서 핀잔을 줬다.


“안녕하세요. 저희 2205호인데요. 떡 좀 드셔보세요.”

아이는 몇 번 연습하더니 윗집, 아랫집,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요즘에 떡 잘 안 돌리는데,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어르신의 반가운 목소리에 아이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미션을 수행한 듯 다음에도 또 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다음 날, 현관 손잡이에 종이가방이 걸려 있었다. 안에는 치약, 주방세제, 그리고 정성껏 눌러 쓴 손편지가 들어있었다. “떡 잘 먹었어요. 좋은 이웃이 되면 좋겠어요.” 윗집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손글씨에 마음이 찡했다.


그날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도 자연스러워졌고 스몰 토크도 오갔다. 특히 아랫집은 더 신경이 쓰여서 만날 때마다 “시끄럽거나 불편하시면 꼭 말씀해주세요”라고 인사했다. 다행히 아랫집도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어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 덕분에 웬만한 식재료는 사 먹지 않는다. 알고 보니 옆집도 텃밭을 가꾸고 있고, 아랫집도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윗집은 식재료를 대부분 사 먹는다며 시골에서 가져온 냉이, 시래기, 고구마, 김치 등을 나누어주면 무척 고마워했다.


윗집도 세 식구, 우리도 세 식구. 아이는 20대인 윗집 언니가 아이돌 장원영을 닮았다며 좋아했다. 어느 날, 윗집 딸이 여행 갔다가 아이가 떠올라 사 왔다며 핸드크림을 건넸다. 아이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를 언니가 어떻게 알고 사왔냐며 신기해했다.


“엄마, 이거 또 윗집에 가져다주자! 내가 갈게!”


아이는 시골에서 식재료가 오면 나누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윗집과는 왕래가 잦아지면서 전화번호도 주고받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에는 현관 앞에 직접 만든 쿠키나 달걀, 멜론, 복숭아 등이 놓여 있다. 윗집의 이벤트다. 어릴 적 엄마가 빈 반찬통을 그냥 돌려주기 민망해 반찬을 고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쑥떡, 부침개, 도토리묵 등 정겨운 음식들이 오갔는데, 나도 이제 그 시절 엄마처럼 뭘 담아 보낼까 고민한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총각무 김치를 윗집에 나누어 드렸더니, 아저씨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라며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평소 입맛이 까다로운 분인데, 밥도 잘 드셨다고 고마워했다.


설 다음날, 초인종 소리가 났다. 윗집에서 세배도 안 했는데 아이에게 세뱃돈을 주셨다. 문득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웃집에 세배하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경, 명절에 이웃집에 세배하러 가는 풍경을 요즘에는 보기 힘들다. 어떤 집은 세뱃돈을 주고, 어떤 집은 안 줘도 상관없었다. 함께 모여 전, 산자, 사탕을 먹는 게 더 좋았다. 이웃집 개가 짖어 대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던 장면도 아직 선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우리 가족은 교회를 다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제사 음식이 그립기도 했다. 일가친척이 가져다주던 알록달록 요강 사탕, 산자, 전, 산적. 할머니는 “제사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 하셨지만, 몰래 먹었던 그 맛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요즘 명절 음식에선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


외동이라 그런가, 아이는 학원에 갈 때 과자를 챙겨 나눠주곤 한다. 다섯 남매였던 나는 과자 한 봉지 숨기느라 애썼는데. 동생들이 하나씩 집어가면 울면서 빈 봉지를 내던진 기억도 있다. 아이는 그런 결핍을 모르고 자란다.


꽃을 좋아한다는 윗집 이야기에, 아이는 마트에서 산 꽃을 반으로 나눠 윗집에 드리고 싶다고 했다. 다녀와서는 “정말 좋아하셨어!”라며 뿌듯해했다. 나누는 기쁨을 아이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어른과 이야기하는 게 늘 조금 어렵다. 조용히 있는 것이 미덕이라 배워서, 어렸을 때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해 본 적이 없다. 어른은 항상 낯설고 불편했다. 그래서 아이만큼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고, 편하게 소통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앞으로 아이가 맺게 될 수많은 관계 속에서, 따뜻한 인연을 만들고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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