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벚꽃엔딩

by 무지개 연필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는 연일 벚꽃 개화 소식과 매년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역 축제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동네에도 4월이 되면 당진천변에 12km에 달하는 벚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누군가는 벚꽃엔딩을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꽃길을 걸었던 기억에 가슴 설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벚꽃만 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시큰해진다.


29살에 결혼했다. 두 번의 유산 후 얻은 아이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모습대로 남편과 내 얼굴을 반반 닮은 딸아이였다. 아이를 출산하자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처음 마주한 아기는 조금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정이 들었는지 보호본능이 생겼다.

임신했을 때,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지로 각종 육아서를 섭렵했다. 집에서 육아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자만했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을 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내 몫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스러웠다. 신생아는 하루 종일 자는데 자는 모습도 불안했다. 숨은 잘 쉬는지 코에 손을 대어 보고 가슴을 쳐다보고 생존을 확인하곤 했다. 아기 손톱도 다칠까 무서워 남편과 서로 미루다가 깎지를 못했다. 결국 아기 보러 온 지인이 뭐가 무섭냐고 핀잔을 하며 바짝 깎아주었다. 남편은 집안을 무균실이라도 만들려는 것인지 집안 위생관리에 집착했다.


아이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달도 빨랐다. 발달 시기에 맞게 음식이며 환경을 바꾸어줘야 했지만 너무나 서툴렀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에게 물어도 애를 키운 지 오래되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가며 알려주는 어른들의 육아 정보는 그리 신뢰가 가지 않았다. 소아과 의사가 신생아 실내 적정온도는 23도 정도면 된다고 했지만, 어른들은 애를 볼 때마다 춥다며 담요로 꽁꽁 싸맸다. 아이의 얼굴과 몸에 태열과 땀띠가 난 이후 어른들의 말을 더욱 신뢰할 수 없었다. 공감과 위로,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곳은 맘카페였다. 거의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맘카페에서 모든 정보를 얻었다. 손목, 어깨, 팔도 아프고, 눈도 아팠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핸드폰 때문에 수면이 부족하고 더 피로가 쌓였다.


아기는 순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인 초보 엄마였다. 몸만 컸지 철이 안 든 나는 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도 잘 못하는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막중한 임무로 다가왔다. 호르몬 변화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서운했다. 눈치 없는 남편이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주 눈물을 보였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잉여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만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주말에도 집에만 있으려는 남편에게 나가자고 했다. 아기띠를 메고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걸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마음이 급했다.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받아 품에 안겨있는 아이의 볼에 올렸다. 뽀얗고 토실토실한 뺨에 연분홍 꽃잎이 물들 것 같았다. 손에 쥐어준 꽃송이는 구강기인 아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햇살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 얼굴은 벚꽃과 대조적으로 초라했지만 아기는 벚꽃 사이에 피어있는 왕겹벚꽃 같이 탐스러웠다. 남편은 끌려 나왔다고 티를 내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성의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했다. 봄이 주는 향긋한 선물을 느껴보려는 순간 남편이 또 초를 쳤다.


“집에 가자. 추워. 애기 감기 걸려.”

햇살은 따듯했지만 바람이 좀 불었다.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아이를 눕혔다. 생각할수록 남편의 태도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다.


“쿵쩍!”

어디선가 수박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차! 아이가 뒤집기를 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내가 미쳤지.’ 소파에서 뒤집기를 하다 맨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매트라도 깔아 놓을걸.’ 아이가 자지러지듯 울었다. 방에 들어갔던 남편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하며 차 키를 쥐었다. 토요일이라 소아과 문 연 곳이 없었다. 한 시간 반 거리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한참을 울더니 조용해졌다. 가는 내내 별의별 생각을 하며 훌쩍거렸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훌쩍거리는 내 자신이 더 싫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1시간 넘게 기다리다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나요?”

“무릎정도요.”


“아이가 토를 했나요?”

“아니오.”


“눈맞춤을 못하거나 처지나요?”

“눈 잘 맞추고 아직 처지지는 않아요.”


“골절이 의심되어 CT를 찍는 것은 보호자의 선택입니다. CT를 찍어서 머리가 골절되었다 하더라도 자연적으로 붙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찍으시겠어요?”


“아직 어린데 방사선 괜찮을까요?”

“당연히 안 좋죠. 아기 머리는 아직 말랑해서 골절되지는 않았을 거에요. 3일 정도 지켜보고 혹시 구토하거나 처지면 다시 오세요.”


돌아오는 차 안은 정적만 흘렀다.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아이를 보며 또 눈물 바람이었다. 하필 머리를 다쳐서 잘못되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는 사흘이 지난 후에도 구토하거나 처지지 않았다. 하지만 발달이 늦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한동안 계속 있었다. 아이가 떨어질 때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죄책감이 들었다. 몸은 육아는 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만 했다.

얼마 전, 벚꽃길을 걸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고백할 거 있어.”

“뭔데?”


“너 아기 때 이렇게 엄마 아빠랑 벚꽃 구경하고 집에 가서, 엄마가 소파에 너를 올려두었는데, 네가 뒤집기를 해서 쿵 떨어졌었어.”

“진짜? 난 기억 안 나. 괜찮아. 엄마! 나한테 미안하지?”


“응”

“그럼, 나 저 솜사탕 사줘.”


올해도 벚꽃은 아름답고, 아이는 여전히 해맑다. 사소한 일로도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현재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벚꽃이 만개하던 찰나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벚꽃같이 흩날려 버린 아이의 어린 시절이 점점 기억나지 않아 서글퍼진다. 오늘은 아이와 더 눈 맞추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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