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들의 주머니에는 언제나 증류주가 함께했다
술이라고는 소주나 맥주 아니면 소맥이 전부였던 나에게 양주는 교통사고였다. 친구들과 술에 취해 용기 있게 들어간 어두운 바(Bar). 바텐더인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건네준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간 순간, 너무 놀라서 술이 깨버렸으니까. "크합! 이게 뭐예요?"
그렇다. 위스키, 보드카, 럼... 외우기도 귀찮아서 우리가 양주라고 부르는 증류주다. 역사 속에서 증류주를 처음 들이킨 이들은 하나 같이 충격에 빠졌다. 그때의 와인이나 맥주는 아무리 높아도 알콜도수가 15%를 넘지 않았거든. 증류주는 기본이 40%다.
증류주를 마신 이들의 세계는 부서졌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물론 이는 단순히 맛의 취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마시즘은 증류주를 들이켠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알콜(alcohol)이라고 부르는 말은 아랍어에서 유래했다. 증류주또한 아랍지역의 연금술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연금술사들은 물질의 순수한 성분을 찾고 싶어했다. 그 과정 중 하나는 와인에서 알콜성분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들의 증류방법은 향수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주전자에 와인을 담아 끓인 뒤 물보다 빨리 수증기가 되는 알콜을 모아 따로 응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물질은 기존 와인보다 알콜성분이 높았다. 그들은 이 액체를 다시 증류하고, 증류하고, 또 증류했다. 순수를 향한 그들의 집념은 음료계의 축복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아랍의 연금술사는 증류된 와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심지어 음료수로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약품이나 소독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들의 최종 관심사가 쇠를 금으로 바꾸는 것이라지만, 한번쯤 마셔봤으면 가치를 알았을텐데. 범생이들이란.
연금술사의 비밀인 증류주가 유럽에 넘어온 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였다. 그때 역시도 증류주는 음료보다는 신비한 약품으로 구분되었다. 증류주는 '생명의 물'이란 뜻인 아쿠아 비테(aqua vitae)라고 불렸는데, 앞서도 이야기 했듯 자연상태에서 있을 수 없는 15%의 알콜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쿠아 비태가 젊음을 보존 시켜주고, 기억력을 개선시켜주며 더 나아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다. 사실 증류주를 처음 소개한 유럽의 연금술사들이 오래 살아서 생긴 오해다(...) 하지만 스페인 지역의 작은 나라 '나바레(Navarre)'의 독재자 찰스 2세는 자신의 병을 아쿠아 비테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쿠아비테를 마신 찰스는 목에서 타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크헉! 이것은 마치 신의 심판 같구나!" 하지만 목만 타는 게 아니었다. 시종의 실수로 촛불이 아쿠아비테와 국왕의 옷에 옮겨 붙은 것. 참고로 증류주의 또 다른 이름은 아쿠아 아르덴스(aqua ardens)로 '불타는 물'이란 뜻이다. 저승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찰스에게 안부를.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바다에 표류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게 무엇일까? 바로 술이다.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난 유럽의 탐험가들은 음식 보다 물보다 한 모금의 술이 고팠다. 하지만 오랜 항해로 상해버릴 염려가 큰 맥주나 와인을 대신에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고, 빨리 취하는 증류주, 브랜디를 마시게 되었다.
당시의 유럽은 여러 국가가 앞다투어 세계를 떠돌아 다니며 깃발을 꽂는 시기였다. 그들은 발견한 대륙에 대량의 사탕수수 밭을 만들어 설탕을 만들었고, 부족한 인력을 노예로 충당했다.
아프리카 노예상들은 물물교환 형식으로 노예를 제공했다. 옷감, 그릇 등 다양한 물품 들 속에서도 그들이 원한 것은 술이었다. 그것도 강한 술. 이미 아프리카인들은 야자열매로 담은 와인 그리고 다양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화끈한' 브랜디는 그들이 가져보지 못한 가치있는 음료였다.
아프리카 노예상은 유럽인과 협상을 할 때 많은 양의 브랜디를 원했다. 심지어 노예들은 급여로 브랜디를 받았다. 그들의 식민시대는 술, 노예, 설탕으로 대표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설탕을 생산하는 와중에 남은 폐기물을 증류함으로 새로운 술이 만들어진다. 바로 '럼'이다.
사탕수수 밭에서 만들어진 럼은 글로벌한 술이 되었다. 생산지가 중요했던 와인과 다르게 어디에서든 만들 수 있었으며, 다른 술들보다 훨씬 저렴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한 미국에서 럼이 유행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때의 미국은 와인도, 맥주도 형편없는 불모지였으니까. 모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새파란 아이들까지도 연간 15리터의 럼을 마셨다.
미국에서 만드는 럼은 주로 프랑스 지배하의 지역에서 난 당밀을 수입해 만든 것이었다. 영국 입장에서는 자신의 멀티기지가 다른 곳과 거래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1733년 당밀조례를 통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당밀에 세금을 매겼다. 하지만 미국의 증류업자들은 이 법을 무시하고 당밀을 밀수해 럼을 만들었지만 주민들의 영국을 향한 원성은 자자했다.
1764년 영국정부는 당밀조례를 더욱 강화시켜 세금을 모두 거둬드리기로 했고, 밀수업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미국주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1765년에는 인쇄물에 세금을 붙이는 인지조례, 1773년은 그 유명한 차 조례가 생기자 지역주민들은 보스턴 항구에 들어온 3척의 선박에 있는 차들을 바다에 빠뜨렸다. 역사는 차를 미국독립운동의 씨앗으로 보지만, 그 이전에 럼이 있었다.
목이 타는 듯 뜨거워 졌다가, 기분이 곧 좋아진다. 나의 세계를 파괴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알의 껍질을 깨준 느낌이랄까? 증류주들을 즐기기 시작한 후의 음료의 세계는 미지의 대륙 같았다. 어쩌면 신세계를 찾아 떠나던 탐험가들의 음료가 럼과 브랜디였던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비록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변화 중심에는 강한 증류주가 있었다. 크흡, 모험의 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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