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도 울고 갈 맥주 은신술
대학교 3학년 여름, 남들보다 늦게 맥주의 맛에 눈을 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매일 저녁 집에서 이 맥주, 저 맥주를 마셔보았다. 나야 즐거웠지만 엄마는 걱정이 많아졌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들 힘든 일 있어? 여자친구랑 헤어진 거니?"
"아... 아니 애초에 여자친구는 없었는데"
걱정하는 엄마를 생각해서 혼술을 끊었다. 그리고 엄마 몰래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해본 것인데 단언컨대 그때 몰래 마신 맥주보다 맛있는 맥주는 없었다. 한편의 스릴러 영화 같은 맛. 금단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기분. 긴장감을 안주 삼아 몰래 맥주 한 모금을 훔치면 안주 따윈 필요 없다.
오늘은 음료계의 다크템플러 마시즘의 맥주를 몰래 마시는 방법이다. 원래 나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시중에 파는 일반 음료수와 비슷하게 생긴 맥주를 구매한다. 코카콜라가 연상되는 색깔인 버드와이저와 술탄 오브 콜라를 주로 사용한다. 실제 코카콜라를 구매해서 옆에 놓으면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다. 나는 이 은신술의 이름을 '월리를 찾아라'라고 지었다.
단점으로는 진짜 찾을 수가 있다는 점. 안심하고 냉장고에 보관을 하고 있었는데, 콜라를 마시려는 엄마가 의문의 음주를 하셨다. 냉장고를 은신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이상 이 방법을 지속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가장 간편하게 몰맥을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다음 단계의 몰맥을 개발했다. 맥도날드 테이크 아웃 콜라에 맥주 355ml짜리를 넣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맥주날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맥주날드는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빛이 난다. 옆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내가 혼자서 영화를 보는 줄 안다. 아니 맥주와 함께 보는 건데.
맥주날드의 또 다른 장점. 빨때까지 완벽하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빨때는 맥주를 마시면서 주변에 날 수 있는 맥주 향을 차단을 해주기도 한다. 매너맥주! 맥주날드!
마지막 방법이다. 나는 데이비드 카퍼필드 마술을 빼면 이것보다 놀라운 변신을 본 적이 없다. 맥주를 손쉽게 다른 음료수의 포장으로 탈바꿈을 하다니 혁명이지 않은가. 식당의 간판갈이, 대학생의 리포트 표지갈이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양의 탈을 쓴 맥주(콜라 조끼)'라고 이름을 붙였다.
양의 탈을 쓴 맥주를 만드는 방법
355ml의 맥주와 콜라를 준비한다.
콜라를 모두 마신 후, 잘 씻는다.
콜라 캔의 위와 아랫부분을 자른다.
동그랗게 말린 통의 세로면을 한번 더 자른다.
맥주캔 위에 콜라를 덮어준다.
매번 맥도날드 콜라를 마셔야 하는 맥주날드보다 진보했다. 양의 탈을 쓴 맥주는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마실 수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욱 맛이 난다. 군중 속의 고독을 안주삼아 즐기는 일탈. 이것이야 말로 몰맥의 절정이자, 존재의 이유다.
맥주를 몰래 마시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뒤처리다. 최근 편의점, 공원 등에서 길맥을 할 때 나오는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몰맥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음주가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은 나만 알아야 하기에 분리수거와 쓰레기 처리를 철저하게 하자.
같은 맥주를 마신다고 해도 분위기와 즐기는 방법에 따라 감동의 양이 달라진다. 많이 마셔서 즐거운 시절은 안녕이다. 우리는 최고의 한 모금을 주는 순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몰맥을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