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에서 인싸되는 휴대용 맥주 거품기
친구 모임, 작년에 진짜 재밌었어
올해는 너도 꼭 와야 해!
여름휴가시즌을 알리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온다. 우리는 여름마다 만나곤 한다. 남쪽 바다부터 계곡과 섬까지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지난해 산장에서 태풍을 만나 라면을 끓여먹은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사진으로 남기고 책도 만들었다. 다만 녀석들의 기억에 내가 없을 뿐이다. 나도 같이 갔다고!
산장 라면보다 못한 존재감. 안타깝게도 나에게 입담이란 장롱면허 같은 것이다. 분명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오래 사용하지 않아 잘 쓰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말을 걸 수 없다면, 너희들이 말을 걸게 만들겠다. 바로 이 아이템으로 말이다.
모임에 맥주가 빠질 수 없다. 문제는 모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맥주 선택지는 좁아진다는 점이다. 바로 예산 총량의 법칙이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모두가 취하려면 평범하고 값싼 맥주를 마시기 때문이다. 맥주가 평범하다면 이야기도 분위기도 김이 빠진다. 하지만 살려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은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맥주의 맛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맥주 거품기다.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에서 마시즘은 맥주 거품기에 대해 소개를 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휴대용이다. 지난 도쿄에 갔을 때 구매를 했다. 모두가 지인들을 위해 토끼주걱을 쓸어 담을 때, 나는 남은 엔화를 긁어모아 이것을 샀다. 언젠가 빛을 볼 거라 생각했는데 바로 그날이 온 것이다.
물론 휴대용 맥주 거품기는 이제 맥덕들에게 익숙한 장비다. 하지만 대부분 맥주캔에 헬멧을 씌우는 느낌이라 여간 멋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그냥 헬멧도 아니고 '병모양의 헬멧'인 것이다. 캔맥주에 씌워놔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아니 애초에 병맥주인 것처럼 둔갑한다. 이거 완전 닌자 아닌가.
정해진 맥주 안에서 맛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법은 '거품'이다. 일본에서는 '맥주 따르기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있을 정도로 같은 맥주로도 환상적인 맛을 내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비결은 언제나 거품이다. 거품은 맥주의 맛과 향, 탄산을 보호할뿐더러 부드러운 목 넘김을 만들어주니까.
적정량의 거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잔을 대는 각도와 시간, 낙차 등 다양한 기술이 요구된다. 하지만 맥주 거품기를 이용하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밀한 거품이 생긴다. 보고 있나 이세돌? 이게 바로 기계의 힘이다.
체코에서는 '맥주의 영혼은 거품'이라고 부른다. 또한 같은 맥주라도 맥주 원액과 거품을 따르는 방법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붙인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먼저 따른 후 거품을 올리는 방식은 '크리스피', 거품을 먼저 따른다음 맥주를 뒤이어 흘리는 방식은 '스무드'다. 마지막으로 거품만 100% 따르는 것을 '밀코(Mlíko)'라고 부른다.
밀코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거품이 꺼지거나, 맥주로 변해버리기 전에 빠르게 먹는 것이 매너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과자봉지에서 질소만 먹는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마셔보면 색다른 특징이 있다. 질소 말고 거품 이야기다.
여행이 특별한 것은 일상에서 갈 수 없는 공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시는 맥주가 일상이라면, 맥주 거품기로 만든 크림맥주는 여행 같은 맛이 날 것이다.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게 아니라, 맥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와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은 내가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출발이다.
... 하지만 이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많지 않다. 낮부터 살짝 취기가 오른 녀석들은 이게 캔맥주인지, 병맥주인지 구분을 못했다. 이것은 '맥주 거품기가 달린 병맥주처럼 생긴 캔맥주'라고 말하기에는 나의 입담은 시동도 걸지 못하고 꺼졌다.
인기란 한낱 맥주 거품 같다더니 이렇게 꺼져가는 것일까. 하지만 맥주는 맛있으니 행복했다. 그거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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