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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Dec 10. 2018

사이다에 빠져버린 녹차

#음료신상털이_마차콜라

칼바람이 부는 겨울을 걷는다. 히트텍을 입지도, 핫팩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추위를 뚫고 난 뒤에 마시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이다. 찻집의 종소리가 울리자 점원은 말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탄산음료털이 마시즘이다! 여긴 콜라 안 팔아요!



녹차 X 탄산음료

환장의 콜라보

(맥심과 현미녹차는 주방 찬장의 필수요소)

나에게 녹차는 땅 속의 겨울잠 같은 것이다. 다른 계절에는 콜라를 마시느라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녹차는 언제나 따뜻한 품으로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 향긋함과 고소함을 한 해가 끝날 때쯤에야 깨닫다니. 


하지만 문제가 있다. 녹차가 몸과 마음을 데워주면 나의 마음이 다시 탄산음료로 간다는 것이다. 이쯤 따뜻해지면 시원한 사이다나 콜라를 마실 때가 되었는데. 나의 마음은 녹차와 사이다, 사이다와 녹차를 오가는 메트로놈 같은 상태가 되었다.


... 녹차와 탄산음료 그냥 한 번에 마시면 안 되나?



그래서 만들어봤다

현미녹차콜라

(녹차 +2강 중)

한국에는 제법 많은 탄산음료가 있었다. 보리탄산도 있었고, 우유탄산도 있었다. 커피탄산도 있었지만 녹차맛이 나는 탄산음료는 없었다. 녹차콜라, 동양의 대표적인 음료인 '녹차'와 서양의 대표적인 음료인 '탄산음료'의 조화. 이는 곧 어느 지역에서도 통할 음료라는 것이다. 


녹차콜라를 만들기 위해 집 찬장에 있는 현미녹차를 꺼냈다. 따뜻한 물 약간에 녹차액기스를 우려내었다. 1개 팩으로는 진한 엑기스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다른 티백 한팩을 더했다. 그렇다. 녹차계의 스팀팩인 것이다. 이렇게 우려낸 녹차엑기스를 사이다에 넣으면 세상 초록한 콜라가 나오는 것이다.



사이다에 현미녹차를 넣었는데

맥콜이 왜 나와

(멘토스콜라의 뒤를 잇는 녹차사이다)

5분 동안 우려낸 녹차액을 무색투명한 사이다에 부었다. 초록초록한 색깔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형광색 마운틴듀 컬러가 나와서 당황을 했다. '녹차 에너지가 부족한 것인가!' 해서 티백을 넣었다. 그랬더니 발포비타민처럼 탄산 거품이 부르르 올라왔다. 이게 바로 탄산음료지! 


그때 불안함을 느꼈어야 했다.


녹차콜라를 마실 때가 되었다. 기존 사이다의 레몬라임향은 현미녹차의 향기로 둔갑했다. 마치 한복을 입은 외국인을 볼 때의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아직도 부글부글 거품이 오르는 녹차콜라를 마셨다. 어? 달콤하다가 끝맛에 나는 구수함. 어 이거는? 맥콜??


이상했다. 녹차와 사이다를 섞었는데 왜 곡물 맛이 나는 것일까? 이유는 배합이었다. 현미녹차에는 볶은 현미가 70%, 녹차가 30%였던 것이다. 나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마셨던 게 현미'녹차'가 아니라 녹차맛 '현미차'였다니. 


이래서는 그냥 초록맥콜정도 밖에 되지 않잖아. 에잇 실패다. 녹차콜라 따위가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 있었다 

일본의 말차콜라

(소주가 아닙니다 말차콜라입니다)

녹차 덕후의 나라 일본에는 녹차맛 콜라가 있다. 일본에 다녀온 마시즘 요원님이 사주신 말차콜라가 떠올랐다. 탄산음료가 초록색이라 마시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 표절이었구나. 말차와 콜라의 만남. 이걸 생각하고 실제로 만들어 팔다니 일본... 무서워.


말차콜라를 잔에 따랐다. 투명한 초록색의 탄산음료는 내가 원하던 그 색깔이었다. 향은 고소하기보다는 풀내음이 났다. '녹차스럽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어 말차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생각하는 꿈의 콜라다. 물론 생김새만)

말차콜라에서는 정말 진한 녹차 느낌이 난다. 이 기분은 뭐랄까. 집에서 로즈마리만 키워본 내가 식물원 한가운데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게 풀내음이구나. 마치 생풀을 갈아 넣은 듯한 초록의 맛이구나. 신기하다. 


사실 녹차와 콜라의 교집합 같은 음료는 아니었다. 말차와 탄산음료의 특징이 들어간 음료지만, 말차콜라는 말차콜라만의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내 성적표를 두고 서로 당신을 닮아 이모양이 났다고 부정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런 친구에게 녹차답기를, 혹은 콜라답기를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닐까. 


탄산음료의 자연주의

종착지는 녹차다?

(코카콜라 플러스 그린티, 펩시 시소)

녹차와 탄산음료의 만남은 일본에서는 낯선 조합은 아닌 듯하다. 코카콜라는 녹차버전인 '코카콜라 플러스 그린티'를 낸 적이 있었다. 녹차는 아니지만 펩시는 시소 향을 첨가한 초록콜라를 낸 적이 있다. 모두 나와 같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섞었는데, 전혀 다른 음료가 나왔다. 


이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실망'이 아닌 '진보'다. 우리가 마시는 많은 음료들은 처음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의 특수성을 인정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 말차콜라는 녹차와 사이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를 위한 짬짜면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말차콜라가 마시고 싶을 때 녀석을 찾기로 했다. 이렇게 찾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면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탄산음료의 미래가 녹차가 되지 않을까? 그것은 그거 나름대로 영화 같은 미래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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