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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Nov 21. 2019

딸기라떼와 오디에이드 사이에서

#사장님,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딸기라떼를 좋아한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크게 자른 딸기. 설탕 한 스푼. 다시 수저로 딸기를 도톰하게, 조심스럽게 으깬다. 우유를 가득 붓는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질 것 같은 맛. 카페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곧장 ‘딸기라떼 주세요’ 말했다가, 그런데 어쩐지, 오늘은 멈칫했다.


“저 사장님,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여기서 꼭 마시고 갔으면 좋겠다는 거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안 좋은 습관이 몇 가지 있다. 가령 하고 싶은 일이나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꼭 그 자리에서 하거나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옆을 보지 않고 돌아갈 줄도 모른다. 오로지 직진이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싶다 생각하고 나가면 미용실에서 제안한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더라도 ‘에라, 모르겠다’하고 ‘네. 그렇게 해주세요.’ 말한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원래 가려고 했던 미용실이 망해 문을 닫았는데, ‘난 오늘 꼭 미용실을 가야겠는데...’하고 아무 미용실이나 들어갔다. 결국 원하는 스타일은커녕 생각지도 못한 머리스타일이 나와 한동안 거울을 못 봤다.


미용실뿐이랴. 도무지 참을 줄 모르는 성격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창 무릎까지 오는 ‘반스타킹’이 유행이었다. 어느 날은 당장 그 양말이 신고 싶었는데 그 양말을 미리 사놓지 않았으니 신지 못할 수밖에. 급한 대로 언니한테 양말을 빌려달라고 하니, 동생을 상대로 천상 장사꾼 체질인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2만원 주면 양말 팔게!’ 5천원짜리 양말이었는데, 헌 양말을 내가 2만원에 샀다.  


말하고 나니 쑥스럽다. 나 같은 사람(고양이다)이 또 있을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 한 번 만나보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다른 것은 보지 않고, 그 순간 생각대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가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었나. 즐겁고 재밌는 건 언제나 순간이다.


딸기라떼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딸기라떼는 딸기라떼일 뿐이고 미용실도 그곳에 있을 뿐이고 양말도 옷도 사람도 그냥 있었을 뿐이다. 다만 내가 일을 다 벌여놓고 뒤늦게 ‘뭐야.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지.


사장님은 오디에이드를 추천해줬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썬 레몬이 동동 얹어져 있다. 톡 쏘는 맛이 없다. 에이드라지만, 김 빠진 사이다처럼. 그래도 좋다. 오디와 톡 쏘는 맛은 어울리지 않아. 그보다 오물거릴수록 입안에 차오르는 달짝지근한. 얼음에 담겨 있지만 따뜻하다. 한여름 햇볕 가득 받고 자란 과일답다. 입안에 햇볕이 차오르는 거 같아. 


‘역시 좀 더 차분하게, 끈덕지게 세상을 바라봐보는 게 좋을 것 같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내가.’ 빨대를 오디에 겨냥하고 쪼로록 빨아들인다. 어느새 입가가 보라색이다.


Editor by 도란이(도란도란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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