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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Jan 28. 2020

맥주를 몰래 마시는
가장 완벽한 방법

#월요병을 극복할 마지막 방법은 사무실 맥주뿐이야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맥주는
몰래 마신 맥주였다 


방문이 닫힘과 동시에 외투에 넣어둔 맥주를 꺼낸다. 누군가는 성인이 다 되어서 당당하게 마시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맥주를 마시다 보면 가족들의 눈에 우리는 캔 쓰레기 배출기처럼 보일 수 있다. 결국 캔을 따는 소리마저도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미어캣의 느낌으로 가족의 동태를 살피며 캔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딸꾹질이 날 것 같은 맛이다. 너무 맛있어. 


"맥주는 양조장 굴뚝 그림자 안에서 마셔야 맛있다"라는 독일 속담은 아직 몰래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영화관에서(물론 판매하지만 모른 척 몰래 마심) 집 앞 벤치에서(재활용 쓰레기장과 가까움) 마셔보았지만 최고의 경지는 역시 술을 부르는 공간. 사무실이다. 


오늘 마시즘은 사무실에서 맥주를 마시기 위한 방법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수년을 연구해 보았다고! 



1. 액자에 맥주 숨기기

장점 : 마치 실사 그림 같은 맥주

단점 : 근데 왜 액자 속 그림이 3D야?


철학자 미셸 푸코는 한 파이프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다. 액자 속에 있는 것은 파이프 그림이지 파이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깨달았다. 그냥 액자에 그림 말고 파이프를 넣으면 완전 실사 그림 아니냐? 


그래서 맥주를 넣어봤다. 액자 안에 공간을 만들어 그림 같은 맥주를 넣어두는 것이다. 누구도 이 액자 안의 맥주가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겠지! 


... 그때까지는 몰랐다. 시선에 따라서 액자 속 맥주가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만들어놓고 손모가지가 날아갈(?) 뻔.  



2. 테이크아웃 컵에 맥주 숨기기

장점 : 완벽한 숨김 가능

단점 :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괴리감


다음은 '맥주날드'라고 불리는 테이크 아웃 콜라컵에 맥주를 숨기는 방법이다. 평소 햄버거를 자주 먹는다면 미리 컵을 잘 씻어둬서 맥주를 숨길 때 사용하자. 숨겨진 맥주는 뚜껑으로 닫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보아도 맥주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마치 양의 탈을 쓴 맥주랄까?


심지어 남는 공간에는 얼음을 집어넣어 냉각을 유지할 수 있다. 거의 뭐 콜라 테이크아웃 컵은 맥주를 몰래 마시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괴리감만 벗어난다면 말이다.


 


3. 콜라 캔 껍데기로 위장하기

장점 : 완벽한 사기를 친 것 같은 뿌듯함

단점 : 내가 맥주를 마시려고 만들기 숙제를 하다니


기존의 음료 캔을 가지고 있다면 껍데기를 덧씌워 맥주를 숨길 수 있다. 다 마신 음료 캔의 위를 통조림 따개로 돌려서 딴다. 캔의 아랫부분 역시 잘라서 캔의 옆면을 두루마기처럼 만든다. 


이 음료 껍데기를 맥주 캔 위에 씌우면 완성. 다른 사람들 눈에는 캔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맛은 캔맥주인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음주계의 타짜가 된 기분이랄까? 마실 수록 성취감이 느껴진다. 


문제는 콜라캔 위를 따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맥주를 마시나라는 자괴감이 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만하고 음료 캔 껍데기를 잘못 들었다가 아래와 같은 사단이 날 수 있다.


(아... 안 돼... 잘못 들었다가)

4. 맥주 호스 만들기

장점 : 호스를 통한 완벽한 숨김과 스릴감

단점 : 다 마실 때까지 움직일 수 없음


다음은 다이소에서 산 어항 호스와 힙색을 이용한 맥주 숨기기다. 힙색에 맥주를 놓고, 호스를 캔 안에 넣는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 호스를 잡고 겉옷을 입는 완벽한 맥주 터널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힙색을 그렇게 숨기면 배가 나와 티가 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맥주를 마실 사람은 힙색을 차지 않아도 술배가 나와있을 확률이 높다(아니다).



팔목으로 들어오는 완벽한 맥주 터널. 빨대처럼 조금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콸콸콸 맥주가 쏟아진다. 하품을 하는 척, 고뇌를 하는 척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호스에 남아있는 맥주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맥주를 마시려다가 내가 망부석이 되어버리다니.



5. 맥주 멀티 제작하기

장점 : 언제나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단점 : 냉장고를 어떻게 사


맥주를 몰래 마시기 전에, 어디에서 신선하고 차가운 맥주를 보관하냐가 더욱 문제다. 작은 냉장고와 택배(혹은 복사용지) 박스만 있다면 이를 흔한 상자로 위장을 시킬 수 있다. 그 안에 맥주를 넣는다면? 잠깐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기회에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냉장고를 살 욕망으로 차라리 퇴근 후 곱게 맥주를 마시는 게 좋다는 것.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맥주를 마시려 했는가. 짧은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맥주는 몰래 마시는 게 맛있으니까.



우리의 맛은 제품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를 보면 실전 영상을 볼 수 있다, 구독을 하면 사랑...쓰)

혼자 마시면 맛있다, 함께 마시면 즐겁다, 몰래 마시면 짜릿하다. 맛있는 맥주는 단순히 제품뿐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마시는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맥주, 아니 음료는 하나의 이야기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맥주를 어떻게 마시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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