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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Feb 04. 2020

내 생애 첫번째 푸딩이 음료라니

#음료 신상털이_디어푸딩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성공을 부르는 편의점 신상 음료뿐이다. 이 맘때쯤이 되면 편의점 하나는 인수할 줄 알았는데 편의점이 나를 인수하는 게 빠르겠다. 딸랑. 문이 열리자 사장님은 말한다. "알바 지원 오신 분이죠?" 


아니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근데... 시급이...



내 생애 첫 푸딩이 음료라니

(음료 이름에 영어를 전면 배치하다니... 용기 있는 선택이다)

한동안 잠잠해 보였던 GS25가 다시 활개를 치려고 하는 듯하다. '디어푸딩', 이런 녀석을 만나게 될 줄이야. 세 가지 부분에서 놀랐다. 첫 번째는 음료 이름이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되어있는 것. 두 번째는 다른 소재도 아닌 푸딩을 쓴 것. 마지막으로는 내가 푸딩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푸딩은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먹은 기억이 없다. 뭔가 최소 귀족, 아니면 왕가에서 먹을 것 같은 분위기잖아. 6두품도 못 되는 나는 젤리뽀(이건 푸딩 아니죠?)를 사슴벌레와 나눠 먹으면서 이다음에 엄마는 에르메스, 아빠는 벤츠, 그리고 나는 푸딩을 사겠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때문일까? 푸딩을 먹게 되는 순간 엄마와 아빠에게 줘야 할 게 커지기 때문에 나는 푸딩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뜻밖에 성공의 상징을 만나게 된 마시즘. 오늘은 이 녀석이다. 얼마인가요? (2500원입니다). 역시 이름답게 Flex 하군 주십시오. 오늘 마시즘은 성공... 아니 이 푸딩 음료의 정체를 탈탈 털어본다.



마시는 젤리도 아니고

마시는 푸딩

(왜 프롬 푸딩이 아닌, 디어푸딩이었을까)

푸딩 입장에서 이것만큼 무서운 녀석이 있을까 싶다. 햇빛이라도 들어오는 창살이 아닌 알루미늄 캔 안에 갇혀있다. 햇빛을 보고 싶다고? 그렇다면 음료가 되어야만 나올 수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음료도 아니고 푸딩도 아닌 것. 영화로 치자면 자기 마음대로 고체와 액체를 오가는 터미네이터 2의 액체 인간 같은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멋진데. 


사실 이런 형태는 젤리파에서 많이 나왔다. 초등학생 때 소풍을 가면 사마셨던 액체젤리로 시작하여, 환타 쉐이커, 쉐이킷 붐붐까지. 하나같이 상큼한 녀석이었는데 이 녀석은 달달함과 부드러움을 내세워서 왔다. 



흔들어 드세요

근데 덜 흔들어도 됨

(팔이 힘들다는 점만 빼면 아주 완벽한 음료다)

과거 <여우와 두루미 그리고 마시즘>에서 워터젤리를 마실 줄 몰라서 낑낑대던 내가 아니다. 이런 녀석은 흔들어야 액체로 변한다. 다음에는 제대로 액체로 만들게 하기 위해 새해에 헬스장을 끊고 상체 위주의 훈련을 해왔지. 


이전의 워터젤리류들은 음료가 나오는 입구가 작았기 때문에 몹시 흔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입구가 큰 예비군 수통 모양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흔들어 따라보면 콸콸콸 쏟아지는 음료와 함께, 도토리묵처럼 떨어지는 푸딩을 볼 수 있다. 이럴 거면 조금 덜 흔들고 푸딩도 같이 먹어볼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음료 리뷰어가 감히 숟가락을 드는 일만은 있을 수 없다. 



추억의 맛이 나요

달달한 스카치 캔디의 맛이

(보이시나요 저 푸딩 덩어리)

먼저 향기를 맡아본다. 크리스마스나 추석 혹은 아빠의 로또복권 4등 당첨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종합과자선물세트에서 맡아본 향기가 난다. 정확히 품목을 따지자면 그중 '스카치 캔디'의 향이랄까.


디어푸딩을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말캉말캉한 푸딩 덩어리가 입 안에 가득 들어온다.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달콤함 아래 말랑말랑한 푸딩이 혀 위에 사르르 녹는 느낌이 좋다. 오물오물해도 즐겁다. 단지 씹는 맛을 추가했을 뿐인데도 한 층 더 고급스러운 카라멜 마끼아또가 느껴진다. 양도 많아서 책상에 두고 계속 마실 수 있다. 



2020년 푸딩도 음료로

성공적 변신을 하는 이때에


비록 엄마에게 에르메스도, 아빠에게 벤츠도(두 분이 안 보시면 좋겠다) 사주지 못했지만 푸딩은 먹어봤다. 성공의 맛에 한 발짝 더욱 다가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입맛에서 성공은 어릴 적 즐겼던 추억의 맛과도 닮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디어푸딩. 무리수가 아닐까 싶었지만 나름 대중적인 코드를 잘 타고 나온 녀석이다. 많은 녀석들이 음료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도전하다니. 경쟁심을 느낀다. 이대로 가다가 젤리와 푸딩에 이어 순두부, 도토리묵도 음료가 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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