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시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시즘 May 22. 2020

제주맥주 3천병 완판의 비밀,
맥주가 오크통을 만나면?

#줄 서서 사봤다 '제주 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 에디션'

인파가 가득한 생활맥주를 혼자 누빈다. 누구를 만나지도, 건배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새로 나온 특별한 맥주를 얻는 것이다. 요즘 매일 같이 카스테라(카스와 테라)를 마셨더니 독특한 맥주가 그립더라고. 맥주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눈치챈 사장님은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음료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는 무슨 어서 줄 서요!!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이폰 신상보다 귀하다는

완판맥주를 만나러 가자

(혁신은 멀리 있지 않아요. 맥주에 있어요)

맥덕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 에디션(이하 줄여서 제주임스)'을 구하기 위해서다. 한정판으로 나온 이번 맥주는 3,000병이 조기 완판 되어서 예약자만 살 수 있는 녀석이다. 가격은 750ml 한 병에 2만원. 수입맥주 8캔, 필라이트 24캔과 맞바꿀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맥덕들은 가격이 착하다고 하는 게 반전. 왜냐... 바로 '배럴 에이징'이 된 맥주이기 때문이다. 이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맥주야! 



맥주와 위스키의 경계를 허물다

베럴 에이징


(맥주를 오크통에 숙성시키다니, ⓒDaniel Vogel on Unsplash)

맥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설렘주의보와 같은 베럴 에이징(Barrel-Aging). 베럴 에이징은 간단히 말해 '배럴(오크통)'에 맥주를 숙성시켜 맥주에 깊은 풍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만화로 치면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 게임으로 치면 '아이템 강화'와 맞먹는 녀석이다. 맥주를 초월한 맥주의 느낌? 


배럴 에이징은 오크통이 어떤 주종을 만들었는지, 나무는 무엇인지 등에 따라서도 그 풍미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위스키를 만든 오크통에 숙성을 시켜서 복잡한 풍미를 내거나, 와인을 만들었던 오크통에 맥주를 숙성시켜서 과일느낌을 내기도 한다. 


(공영방송이 아니다. 베럴 에이지드 맥주) 

만드는 방법과 시간도 들지만, 무엇보다 귀해서 가격대가 일반적인 맥주를 초월한다. 한 병에 6만원, 7만원을 해도 없어서 못 마시는 맥주도 많다. 그걸... 제주맥주가 만들었다고? 



맥주와 위스키의 콜라보

제주맥주X하이랜드 파크

(하팍형이 여기 왜 나와?)

그런 녀석이 제주맥주에서 나온다. 하지만 김장독에 김치 담그듯이 오크통에 맥주를 넣는다고 짜잔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렘 포인트가 더 있다. 이번 녀석에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의 위스키 배럴(싱글몰트 12년 배럴)이 왔다는 것이다. 하이랜드 파크 자체가 이미 균형감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이를 제주임스가 아니라 '하팍임스(하일랜드 파크 임페리얼 스타우트)'라고 부르는 분도 있다. 


여기에 제주맥주의 양조자들, 배럴 에이징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때문에 제주임스 병에는 익숙한데 새로웠던 로고가 있다. 바로 '브루클린 브루어리(Brooklyn Brewery)'다. 뉴욕 갔을 때 마셨던 그곳이잖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세계관 최강자들의 콜라보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제주임스   거야

(덕후와 인싸를 나누는 기준은 단지 비주얼이었던 것인가...)

제주임스를 받았다. 일단 눈으로 한 번 취한다. 보통 임페리얼 스타우트 하면 떠올랐던 무서운 괴승 이미지라거나, 상상 속 동물이라거나 같은 라벨 디자인이 아니다. 깔끔하고 세련된 병 디자인은 이를 마시는 사람을 '맥주빌런'이 아닌 '맥주인싸'로 만들어 준다.


특히 검은 병에 이 센스 있는 민트 색깔 포인트다.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게 만드는 비주얼이다. 물론 '민트초코술'이냐는 답변이 온 것은 함정(다행인 점은 다크 초콜릿 풍미다. 민트는 아님).


(3중으로 귀찮았지만, 고오급 술이니까)

기다리고 기다려서 산 맥주답게 개봉도 새롭다. 코르크 마개로 막아놓다니. 병따개를 챙기지 않아 숟가락을 써야 하나라던 나의 걱정이 무산이 되는 봉인이다(손으로도 딸 수 있다). 이 정도로 가치 있는 녀석은 그냥 톡 따서 종이컵에 벌컥벌컥 마셨다간 맥주의 저주를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강한 맥주가 극단의 부드러움이라고?

(엄청 부담 있을 줄 알았는데, 부담없게 만들었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맑고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가 아니라 뜨겁고 걸쭉하고 달콤한데 마실수록 시럽이 추가되는 듯한 던전 엔 드래곤 맛이 날 것이라고 말이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맛뿐만 아니라 도수도 10% 내외를 자랑한다. 예전에도 몇 번 마셨다가 게임오버된 적이 많았기에 각오를 했다. 


임스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잔에 제주임스를 따라봤다. 역시나 포스 있는 검은 맥주가 흘러나온다. 다크 초콜릿 향과 함께 위스키의 향기가 어우러진다. 자 향기를 맡았으니 이제 시작이다. 


사실 야심 차게 시작한 제주맥주의 첫 임페리얼 스타우트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필살기스러운 맛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커피 풍미를 넘어선 석탄 풍미... 이런 것을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폭력적(?)이지 않다. 요즘에 마신 임스들은 달달함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추세였던 것 같은데, 제주임스는 단맛이 절제되어 있는 '다크 초콜릿'의 풍미가 난다. 그리고 목 넘김이 끈적끈적함 없이 가볍다. 


13.5%라는 알콜도수는 잘못 만들면 알콜향이 너무 튄다거나, 혀가 너무 화할 수 있는데 그런 게 많이 없어서 놀라웠다. 밸런스가 좋아서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다가갈 수 있는 녀석인 듯하다. 


물론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맛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보스 몬스터인 줄 알았더니, 튜토리얼이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캐릭터를 주려고 무리수를 던지는 것보다, 모난 점 없이 완성도를 높게 낸 점이 좋았다. 맥주는 황금색 라거만 아는 사람에게도 어필할만한 선물 같은 맥주다.



새로운 맥주의 등장

맥주는 맥주의 벽을   있을까?


'맥주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맥주의 세계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사실 맥주가 깨려고 하는 것은 맛뿐만이 아닌 듯하다.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등장은 맥주가 하나의 공예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물 마시듯 마시는 맥주 문화가 아니라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선물하고, 한 잔 한 잔 정성 들여 즐기는 주류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맥주. 세계맥주의 시대가 '이렇게 다양한 맥주가 있다(그리고 싸다)'였다면, 그다음 수제맥주는 '이런 맥주도 만들 수 있다'였다. 이제는 마시는 대중의 시대다. 우리는 어떤 맥주를. 어떤 시선과 맛으로 즐기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은 왜 스타벅스의 진격이 통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