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일레븐의 콜라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인파가 사라진 편의점을 홀로 떠돈다. 굿즈 같은 한정판 콜라보를 사는 게 아니다. 힙스러운 뉴트로 제품을 구매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세상에 없던 컨셉의 인상파 신상음료다. 오늘도 실망을 하고 나가려는 찰나 편의점에 제품을 넣으러 온 기사님은 외친다.
당신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 혹 이 제품을 봤는가?
두 눈을 의심할 정도의 비주얼. 머거본의 커피땅콩을 캔커피로 만들어버리다니, 거기에다 유동 골뱅이 통조림을 맥주로 만들어버린 기개에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골뱅이 맥주를 마셔볼 기회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거기에다가 커피땅콩라떼 저 디자인은 뭐야!
확실히 세븐일레븐의 콜라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한껏 꾸미면서 ‘레트로’라 부르는 다른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테면 판소리가 유행이라며 R&B창법을 섞어서 부르는 게 요즘의 레트로라면, 세븐일레븐은 판소리계의 전설 임방울 선생님을 다시 세상에 데려온 것 같은 모습의 제품을 선보인다. 무... 물론 그게 요즘에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흐흠. 하나씩 검거를 해보자.
음료계에 '마시즘'이 있다면, 견과류계에는 '머거본'이 있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맥주 안주의 본좌. 아마 단군신화가 요즘 나왔다면 쑥과 마늘이 아니라 머거본 아몬드와 땅콩을 주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정도로 간편하고 맛있고, 중독성 있다.
그중에서 땅콩에 커피시럽을 묻힌 커피땅콩은 커피를 먹지 못해 본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던 마성의 안주였다. 그것이 바로 라떼로 태어난 것이다. 설마 이거 땅콩에 묻은 커피를 녹여서 만든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불길한 예감은 다시 한번 적중을 하게 되었다.
커피땅콩라떼는 정말 커피땅콩에 묻어있던 커피시럽의 맛이 제대로 전달이 된다. 오히려 땅콩의 고소함은 살짝 뒤에서 잔잔하게 몰려오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머거본 특유의 짠내 나는 땅콩 느낌이면 더 좋았을 텐데. 살짝 땅콩캬라멜 라떼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뭐랄까. 헤드뱅잉 할 줄 알고 공연장을 찾아갔는데, 호키포키 댄스를 춰서 당황스러운 느낌?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쁘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 내가 너무 자극적인 것만 찾아다니긴 했었지.
커피땅콩의 의외로 무난한 맛(칸타타 우도땅콩 크림라떼 느낌)에 자칫 교화될 뻔했다. 하지만 '유동 골뱅이 맥주' 너만은 나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넣을 수 있겠지?
곰표 밀맥주를 찾고, 치맥을 공식처럼 외우는 사람은 모른다. 맥주에는 골뱅이 소면이 진짜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단순히 튀어 보이려는 무리수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조합에서 맥주를 정말 사랑하는 찐들의 진심을 느꼈다... 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보기 전까지.
유동 골뱅이 맥주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골뱅이 통조림을 길쭉하게 늘여놓은 모습이다. 담뱃갑에 그려진 경고문 마냥 '지나친 음주에 대한 경고문'을 유독 튀게 그린 것까지도 취향저격이었다. 이렇게 힙스터들의 접근을 방지하면서 진짜 골뱅이+맥주 조합을 원하는 사람만 원하는구나!라고 말이다.
하지만 노란색으로 써진 글씨를 보지 못한 것이 나의 함정이요, 패착이요, 난독증이 도진 것이었다. 문제의 한 단어 '에는'을 못 보고 산 것이다. 풀네임을 보니 '골뱅이 맥주'가 아니라 '자연산 골뱅이에는 맥주'였던 것. 아니 이럴 거면 묶음상품으로 팔던가(...라는 말이 나왔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골뱅이 맥주는 골뱅이 맛이 아니다. 하지만 골뱅이 안주와 어울리는 맛을 가지고 있다. 맥주 자체가 달달함이 강한 '비엔나 라거(붉은 색깔 때문에 엠버라거라고도 불린다)'라서 짜고 매운 안주와 잘 어울린다. 시원한 느낌만이 강한 보통 라거와 차별화를 짓고 싶다면 이런 맥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라기엔 비주얼이 너무 강력한 게 문제지만.
강력한 외모(?)와 달리 반전 있는 맛이 나는 신상음료를 만났다. 우리가 만나는 마트와 편의점 매대에 있는 모든 음료들은 모두 대중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기 위해 나온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떻게든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 강박과, 맛에서는 절대 후회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책임감이 만든 결과물들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런 음료들이 점점 많이 나왔으면 한다. 우리가 마시는 것들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골뱅이란 글씨가 아니었으면 비엔나 라거를 언제 마셔보겠어.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 언젠가 골뱅이 맛 맥주도 나오고 그런 게 아니겠는가. 세상에 없는 음료의 맛들을 찾아서. 오늘도 음료계의 신상털이는 편의점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