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이_유제품을 털어보자
흰 우유를 주시오, 제발...
친구들이 목욕탕에 갔다가 바나나맛 우유를 마실 때, 나는 멜론 우유를 마셨다. 친구들이 제티와 네스퀵을 타서 마실 때 나는 (미출시된) 검은콩을 탄 우유를 마셨다. 엄마와 아빠가 우유회사에 다닌 덕분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실험우유(?)들을 쉽게 접한 덕분이다. 다양한 제품을 마실수록 내 안에는 '우유는 하얀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다음에 크면 매일 하얀 우유만 마시고 살리!
... 를 외쳤던 우유순수론자는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신다는 마시즘 에디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신상은 특이함을 넘어 독특한 영역에 가고 있는 유제품(요구르트를 포함했으니)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흰 우유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같은 게 아닐까?
역시 실험정신의 푸르밀(?)이다. 지난 가공유들 리뷰에서 '쑥우유'와 '홍시우유'로 감탄사를 나게 만들었던 푸르밀이 이번에는 '새싹보리 우유'를 냈다. 볶은 보리부터 새싹 보리까지 보리를 긁어모아 만든 듯.
다소 충격적이었던 초록색 비주얼과 달리 고소한 검은콩 우유가 떠오르는 맛이다. 거기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가벼운 풀내음이 봄을 알려주는 듯하다. 충격의 컨셉에 그렇지 못한 착한 맛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 빼고는 모두 좋다.
마시즘은 푸르밀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니다. 단지 새싹보리 우유를 샀을 때 신상이 하나 더 있었고. 둘 중에 하나만 고르자는 마음으로 새싹보리우유를 골랐으나. 1+1의 함정카드에 걸려 '블랙보리우유'까지 가져온 것이다. 아니 블랙보리는 그 보리차 이름이잖아!
검은색 비주얼에 맛까지 '검은콩우유'가 떠오르는 담백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검은콩우유나 새싹보리우유 보다는 더 무겁고 담백한 느낌이 나는 듯하다. 새싹보리우유가 어린이도 즐길 수 있는 가벼움이라면, 블랙보리우유는 으른(?)도 좋아할 무거움이랄까?
덴마크 우유의 신상은 (민트초코빼고)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번에 나온 제품은 '덴마크 시나몬초코우유'다. 시나몬에 초코에 덴마크우유라니 절대 놓칠 수 없는 조합이잖아!
이 맛은 보통 초코우유라기 보다는 '초코 츄러스'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밀이 섞인 듯한) 단 맛이 난다. 초코 초코 하지 않고 어딘가 낯선 향미가 어우러진다. 이름과 달리 시나몬 향이 살짝 적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 하지만 시나몬도 초코도 우유도 놓치지 않으려는 덴마크의 놀라운 균형감각이 아닐까?
덴마크 우유만큼이나 많은 팬을 가진 믿고 마시는 '덴드요'도 신제품이 나왔다. 딸기나 복숭아부터 민트까지 별의별 맛을 내더니 이젠 아이디어를 외주화(?)했다. 소비자들에게 마시고 싶은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 맛을 제안하게 한 것. 그 우승작이 '푸룬(Prune)'이다. 맛이 없어서 철근 같이 씻어야 한다는 그거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맛있다. 이것은 푸룬 덕분이 아닌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의 기본적인 맛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유산균이 들어 장을 널뛰게 하는 요구르트에, 막혀있는 장 속에 KTX를 놓아준다는 푸룬이 만나 버렸다. 어설픈 내장을 가지고 있다면 화장실 직행열차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아니다).
다음은 서울우유다. 서울우유는 호박고구마 우유도 내고, 살롱 밀크티도 내더니 이번에는 '너티초코'다. 그런데 초코우유면 초코우유지 왜 '너티'라고 쓴 거지?
마셔보고 알았다. '아 이건 자유시간, 핫브레이크... 뭐 이런 맛이구나!' 기존의 초코우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짭조름한 단 맛. 그리고 땅콩이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의 담백함이 느껴진다. 단짠단짠을 좋아한다면 초코우유보다 이쪽 너티초코를 마셔볼 법 한 듯.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살짝 실망했다. 오디맛 우유, 귤맛 우유 등으로 절대 우유가 될 수 없는 맛으로 우유를 만들던 빙그레가 이젠 너무 대중성을 챙기는 것 아닌가(원래 대중적인 회사다)! 하지만 이 녀석을 마셔보고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밀크티가 아니다. 바나나맛 우유를 밀크티화 시킨 맛이 난다.
음료를 가득 채운 달콤한 맛은 바나나맛 우유의 풍미를 닮았다. 거기에 홍차의 향을 살짝 곁들인 맛이 난다. 바나나맛 우유식의 밀크티 해석이라고 봐도 좋을까? 정통적인 밀크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게 무슨 어린왕자 보아뱀 그리는 맛이냐고 투덜댈 수 있으나, 나처럼 밀크티 초보자들에게는 딱 맞는 달콤한 느낌의 밀크티다.
지난해는 여러모로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들이 기를 펴지 못하다고 느꼈던 한 해였다. 코로나를 견디고 이제는 소의 해다. 소하면 우유가 아닌가? 비록 앞서서 '흰 우유파'임을 말했지만, 우유가 하얗게 생기면 어떻고, 초록색이면 어떠한가(는 잘 살펴보고 마셔야 한다). 올해는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컨셉의 우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2021년은 유제품의 해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