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새해 혹은 새 학기가 되면 항상 다짐하지만 실패하는 결심이 있습니다. 바로 ‘술을 (조금) 줄이자’라는 결심입니다. 결심만 하고 행동은 할 수 없는 마법 같은 구호죠. 매번 실패하다 보니 술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인간의 숭고한 의지’로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술을 모르고 태어났다면, 혹은 국가가 음주를 금지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어요?
… 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랍니다. 바로 음료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시기. ‘미국의 금주법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전국민적으로 13년(1920~1933년) 금주를 시킨 법이니까요. 오늘은 취할 일 없는 꿈과 희망의 나라! 술은 구매할 수 없지만 기관단총 구입은 문제없는 자유의 나라(?)를 간접 체험해보며 ‘금주 다짐’을 한층 더 높여보겠습니다.
미국에서 ‘금주법’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금욕을 추구하는 ‘청교도주의’의 영향이었다. 식량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혹은 미국 내에서 양조업에 종사하는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등의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냥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미국인들은 눈을 뜨고 나서부터, 끼니마다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나태함, 폭력과 빈곤 등의 문제가 따랐지만 무엇보다 ‘가정폭력’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기혼 여성들이 금주운동에 앞장을 섰습니다.
작은 모임 단위로 시작된 ‘금주운동’은 곧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알콜중독 때문에 임금을 탕진한 남자들은 금전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이들의 목소리를 막을 명분이 없었죠. 심지어 무력으로도 밀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 손에 도끼를 들고 술집을 깨부수는 도끼의 여왕, 금주계의 관우(그녀는 키가 180cm나 되었습니다)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같은 분도 활발하게 활동을 했으니까요. 까불면 도끼의 심판을(아닙니다)
결국 이런 분위기가 고조되어 1919년에 수정헌법 18조 일명 ‘볼스테스 법(The Volstead Act)’이 통과됩니다. 이로써 1920년부터는 미국 전역의 알코올 농도 0.5% 이상의 음료는 불법이 되었습니다.
여러 단체들과 정치인들은 이를 ‘고귀한 실험’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술을 빠져 살았던 이들조차도 금주법 시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제 술에 의존하지 않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이구나. 전국민적인 새해 다짐인 것이죠.
그리고 1920년 1월 1일이 왔습니다. 문제는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되었는데, 으, 음력으로 하면 안 될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강력한 금주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술을 구할 길 없는 가난한 알콜중독자는 화장실에 숨어 공업용 알코올부터, 페인트, 향수 등에서 술 비슷한 음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알콜중독자보다는 양조업자가 나으니 잘 된 것 아니겠냐(?)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만 금주법이 시행된 13년 동안 3만 5천명 이상의 시민이 이런 술을 마시다가 사망했다는 게 슬픈 일입니다.
그나마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교회나 약국에 가서 알콜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금주법 시대지만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와인과 의료용 알콜은 불법이 아니었거든요. 덕분에 교회에 와인을 납품하던 와이너리들은 문을 닫을 일을 피하게 되었고, 1922년 214만 갤런이었던 미국 내 성찬식 와인 소비량은 1924년에 300만 갤런으로 급증하게 됩니다. 뜻밖의 전도(?)랄까요.
금주법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이 놈... 아니 이들은 파티와 술을 즐기느라 정신없습니다. 다른 영화나 소설만 봐도 위스키, 와인, 칵테일을 즐기던데, 소설만 보면 금주법 시대에 향수에서 술을 뽑아 마셨다는 보릿고개 같은 썰이 오히려 더 소설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금주법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돈을 가진 이들은 웃돈을 얹어 밀주를 구입했거든요(개츠비의 주요 수입원 역시 밀주를 약국에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밀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불법을 도맡아(?) 할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미국 내의 갱들이 대규모로 조직화가 되었고, 마피아들이 불법 주류산업의 거물이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알 카포네는 금주법 시대에 밀주로 돈을 버는 것은 물론, 판사를 포함해 각층의 관료들을 매수해 ‘밤의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이러한 밀주를 파는 술집들의 모습도 변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고, 간판이 사라졌습니다. 단골들만이 가서 시크릿 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의 탄생인 것이죠.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스피크이지 바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음악 ‘재즈’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금주법 시대의 숭고한 뜻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술에 대한 갈증만이 더 커져버렸죠. 1927년까지 시카고에는 음주운전이 금주법 이전보다 476% 증가하고, 알콜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600%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술은 없어야 하는데 모두가 다 취한 시대라니!
금주법 때문에 미국 내의 주류산업(양조산업)이 후퇴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또한 술은 농산물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농가들의 피해가 있었고, 술에서 확보할 수 있는 세금들이 불법이 되자 모두 마피아의 호주머니에 넘어가게 되었죠.
하지만 술이 사라진 공백을 이용해 떠오른 음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1886년에 만들어진 ‘코카콜라’입니다. 1906년에 코카콜라는 ‘위대한 비알코올음료(The Great National Temperance Beverage)’라는 슬로건으로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는 음료가 됩니다.
포도주스 브랜드인 ‘웰치스’도 금주법 이후로 명성을 떨칩니다. ‘토마스 웰치Thomas Bramwell Welch)’는 1869년에 음주의 시대가 끝나야 함을 예견하며 ‘발효되지 않는 와인(Welch ‘s Unfermented Wine)’을 만들었는데요. 당시에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는데요, 금주법이 이후에 터진 것이죠. 와인을 팔던 이들이 황급하게 포도주스를 만들게 되었을 때 ‘웰치스’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금주법은 1933년이 되어서야 막을 내립니다. 워낙 특이점이 온 시대라 이때의 이야기는 술자리 속 괴담처럼 과장된 부분들이 많습니다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일상의 무언가를 강제로 막아두었을 때 터져 나오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도가 선하더라도 결과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전 국민들에게 술을 줄이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쓸 것 같나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맥주 한 잔 마시고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