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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즘 Jul 31. 2017

도마슈노,
요거트의 왕이 되고 싶습니까?

정치꿈나무는 왜 도마슈노에 열광하는가

정치권에서 터져 나오는 뉴스를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일찍이 권력의 달콤함에 눈을 떴던 필자는 줄반장을 역임하며 대통령이 될 계단을 차분히 밟아가고 있었다.


현실정치... 그렇다. 반장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간단하고, 기억하기 쉽고, 피부로 느껴지는 공약을 펼치는 것이다. 다른 애송이들이 "깨끗한 교실을 만들겠습니다" 등의 연설을 할 때, 나는 내일 당장 간식을 쏘겠다는 말을 했고 이는 언제나 적중했다.


비록 지금은 야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편의점에서 '도마슈노'를 보는 순간 감춰왔던 정치적 욕망이 들끓어 올랐다. 나는 이 음료수에 조언을 하고 싶었다. 오늘 마시즘은 야심 가득한 음료수와 정치꿈나무들을 위한 정치선배의 조언이 되겠다.


"아무리 맛있어도 이름 서너 자가 그 음료의 전부야"

선거에서 이름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더구나 아직 압도적 지배자가 없는 요거트 세계에서 대중의 선택을 받은 요거트는 곧 그 산업의 대명사가 된다. 이미 요구르트라는 음료수의 종류는 야쿠르트라고 불리지 않는가? 요구르트도 야쿠르트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요거트는 요플레, 꼬모, 후레쉬 등 그들만의 상표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어필했다.


매일유업의 '도마슈노' 역시 그러한 전투에서 태어난 이름이다. 여기에는 슬픈 과거가 있다. 당초 불가리아라는 요거트를 야심 차게 출시했지만, 남양의 불가리스와 상표권 공방이 붙은 것이다. 패한 매일유업은 불가리아를 장수나라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 장수나라라는 이름은 정당 이름으로도 촌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바꾼 이름이 도마슈노다. 도마슈노는 불가리아 말로 '집에서 만든(Home mad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거트의 고장 불가리아의 유학파스러운 이름이지만, 한국에서는 도마노슈인지 도미슈노인지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 오브 단점이다.


"요거트의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맞는 말이다. 도마슈노는 제법 맛있지만 기존의 요거트 맛을 뛰어넘지 않는다. 백도 복숭아, 딸기와 베리, 블루베리 등의 종류는 우리가 친숙하게 예상 가능한 맛이다. 하지만 더욱 깔끔한 목 넘김을 자랑하는데, 이런 한 끗 차이가 도마슈노를 다시 찾게 만드는 요소다.


보통 요거트는 떠먹는 요거트와 마시는 요거트로 나눌 수 있다. 마시는 요거트의 경우는 마실 때 심심한 면이 많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변비 해결'이라는 공약을 들고 나와 뻔하고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마슈노는 마시는 요거트지만, 떠먹는 요거트의 느낌을 잘 살렸다. 빨대를 통해 올라오는 과일 덩어리는 도마슈노가 맛 자체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고급스럽지만 클라이맥스가 없다"

도마슈노는 고급스럽고 맛있다. 하지만 약점은 존재한다. 편의점 가격 1,800원이라는 가격은 기존의 요거트보다 비싸다. 거기에 180ml라는 프로필이 의심될 정도로 빠르게 바닥이 나는 용량이 그렇다. 하지만 이는 2+1 행사를 많이 하고 있기에, 한 번에 2개 이상 사면 해결되는 작은 문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뚜껑이다. 혀로 핥아먹는 요거트의 뚜껑이 없다는 것은 감정의 고조가 없는 예술영화와 같다. 보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뛰어넘는 강렬한 한 방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해결한 마시는 요거트는 아직 없어 보인다.


도마슈노는 그저 그런 마시는 요거트와 생김새부터 맛까지 다르다. 분명 마시는 요거트의 왕 자리를 두고, 혹은 한국 사람들이 요거트를 요거트라 하지 않고 도마슈노라 부르게 하게 만들게 하기 위해 나타난 음료다. 앞으로 할 일은 장점을 찾고, 단점을 보완하며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왜 도마슈노에 열광하는가?"

시간을 돌려본다. 반장에 당선된 나는 다음 날 공약을 지켰다. 내가 쏘았던 간식은 바로 요거트였다. 문제는 숟가락을 깜빡했다는 것이다. 도구 없이 요플레를 먹어야 했던 친구들은 난감했다. 하지만 한 친구가 뚜껑을 까고 혀로 요플레를 핥아먹었고, 하나 둘... 그리고 모두가 요플레에 코를 박고 핥아먹기 시작했다.


드르륵.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아연실색했다. 그녀의 말을 따르자면 마치 여러 마리의 애완견을 보는 것 같았다고.. 아니 사실 개판이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나는 교무실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고,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에서 강제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음료수 옆에 빨대가 달려있는 도마슈노를 보면... 숟가락을 놓고 왔던 그때가 떠오른다. 분명 10년 전에 만났으면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접혀버린 꿈을 떠올리며 도마슈노를 마셔본다. 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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