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페인 시대에 맞서는 커피계의 변신
카페인이 싫으면 커피를 왜 마셔?
(8잔 마신 후) 디카페인 주시오... 제발.
대학생과 직장인의 인생은 '자판기 커피로 시작해 핫식스,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 가상화폐 시세보다 바쁘게 오고 가는 세상에서 커피, 그리고 카페인이 없다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아니 우리가 그동안 카페인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일지 모르겠다.
대중들이 디카페인 커피를 원하고 있다. 한때는 임산부들을 위한 가짜 커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소비자들이 디카페인(혹은 카페인이 적은) 음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음료계는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을까?
음료계의 호사꾼(?) 마시즘. 오늘은 저칼로리 음료, 무알콜 음료에 이어 디카페인 음료의 세계를 살펴보겠다.
디카페인 커피는 지난 <앙꼬 없는 찐빵, 디카페인의 탄생>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03년 독일의 상인 '루드빅 로젤리우스'가 제작한 것이다. 그는 커피 시음가였던 아버지가 과도한 카페인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커피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호시탐탐 일을 할 때(그도 커피 관련 상인이었다)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커피원두가 바닷물에 침수되었는데, 이걸로 커피를 내려 마시니 각성효과가 없어진 것. 이를 가지고 그는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냥 안 마시면 되지만, 원래 복수극이란 끝까지 가야 하는 법이다). 그 뒤로 기술이 발전하여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 같은 물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디카페인 커피를 온전한 커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2020년은 '카페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카페를 없애는 것' 같은 한 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카페의 출입이 대폭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카페인의 부담이 없는 음료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스타벅스의 사례가 전체 카페의 사례가 될 수는 없지만, 결산을 내보니 재미있는 점이 2가지가 발견되었다. 첫 번째는 매장이 아니라 집에서 커피를 즐겨야 하니 원두 판매량이 62% 증가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가 2020년 전체 음료 판매 순위 5위(1,000만 잔이 넘게 팔렸다)에 든 것이다.'
이는 디카페인 세계에 전례 없던 성과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이렇게 디카페인을 많이 찾는다는 사실은 커피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즐겁게 관전하는 부분은 페트병 커피 혹은 대용량 커피로 불리는 곳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살면서 편하게 들고 다니고 뚜껑을 덮을 수도 있는 페트병 커피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디카페인 열풍은 페트병 커피들을 어떻게 바꿀까?
지난해 칸타타 콘트라베이스에서는 '로스팅 보리'와 '로스팅 그린티'라는 제품을 내었다. 칸타타라는 이름 아래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차에 도전한 것이다. 보리는 약간 더 커피 느낌이 나도록 로스팅을 한 느낌이 나고, 그린티는 녹차라기보다 우롱차에 가까운 느낌이다. 소비자의 취향을 커피 안에 한정 짓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랄까?
매번 고퀄리티 병맛(?) 광고와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조지아 크래프트는 최근에 '조지아 크래프트 디카페인 오트라떼'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RTD로 구현이 힘들다는 디카페인을 적용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곡물의 구수함이 느껴지는 오트(귀리)라떼로 반격을 노린다. 숙명의 라이벌 관계인 두 제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지켜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라고 했는데 서울우유는 코로나 이전에 진즉 RTD용 디카페인 커피를 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까지 모두 냈었다(가벼운 느낌의 커피였지만 모자람 없이 맛있었다). 다만 시대를 너무 앞선 탓이었을까, 유통의 벽이었을까, 점점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슬픈 소식이.
맥심이 디카페인을 처음 출시한 것은 1996년도의 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카페인 라인을 관리했기 때문에 최근에 뜨는 '디카페인 열풍'의 붐에 크게 변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물론 맥심 디카페인 제품의 주요 소비자(이 제품은 커피가 마시고 싶은 임산부와 환자를 위해 만들어졌다)와 현재 디카페인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누가 출동하면 어떨까?
홈카페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 '카누'는 공격적인 라인업 확장을 자랑했다. 카페의 아메리카노와 견주기 위해 만든 시그니쳐 모델도 있었고, 티라미수라떼나 민트초코라떼 등의 이색적인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디카페인 라떼가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카페에 가고 싶지만 집에서 즐길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커피는 마시고 싶지만 카페인은 줄이고 싶은' 복잡 다난한 심경을 해결해준 제품이라고 할까.
맥심 디카페인, 맥심 디카페인 커피믹스, 카누 디카페인 라떼의 4종은 지난해 19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대비 38.7%가 늘어난 것이라고.
페트병을 넘어 인스턴트커피를 다루고 이제는 컵커피다. 컵커피계는 점점 매일유업의 '바리스타룰스'가 천하통일을 하고 페트병 커피로 넘어가려는 모양새다(누적 10억 개를 판매했다고 한다). '바리스타가 지키는 룰을 따라가겠다'는 브랜드 이름처럼 카페에서 내놓을 법한 메뉴들을 내놓았는데 디카페인이 빠질 수 없다.
지난해 4월 바리스타룰스에서는 '디카페인 라떼' 제품을 내놓았다. 심지어 모델이 우리 엄마가 아들보다 좋아한다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다. 이거 완전 대세와 대세의 만남 아니냐?
... 라기에는 바리스타룰스의 엄청난 라인업들이 역으로 방해가 되는 느낌이랄까? 모카프레소, 벨지엄 쇼콜라 모카, 마다가스카르 바닐라빈 라떼, 민트라임라떼까지(...). 바리스타룰즈의 면면이 화려하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디카페인 라떼'가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인다고 할까? 시험 점수 85점 맞아서 좋아서 집에 왔는데 누나와 형이 다 100점 맞은 것 같은 기분이야.
디카페인의 열풍이 부는 것은 분명하다. '특수한 상황에서 마실 법한 커피'라는 인식에서 이제는 '나의 취향과 건강에 따라 고려해볼 수 있는 커피'정도로의 발전을 한 것 같다. 맛이나 풍미도 진짜 원두에 가까워지면서 나중에는 카페에서 얼음이나 시럽을 추가하듯 바꿀 수 있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점점 발전할 디카페인의 미래가 기대된다. 적어도 그날이 오면 마시즘은 커피 조사를 위해 커피를 많이 마셔도 잠을 잘 잘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