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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Dec 16. 2020

첫째가 물었다. 엄마 꿈은 뭐야?(feat.현재진행형)

덕후아들에게 배운 꿈을 성취하는 방법

곤충덕후 첫째의 원래 꿈은 공룡 박사였다. 3년간 공룡 탐구를 해온 첫째가 곤충에게 마음이 빼기면서 이제는 곤충박사되는 게 꿈이다. 내가 곤충에 대해 아는 게 많다고 하니, 첫째가 내게 곤충박사 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엄마, 곤충박사 되는 방법 궁금해? 내가 알려줄까?"


약간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식으로 화두를 던지 아이. 좀 더 정확하게는, '곤충을 키우지 않고, 곤충박사 되는 방법 5가지'이다. 아이도 미리 생각해둔 내용이 아니고, 갑자기 두서 없이 떠오른 생각이다. 듣던 중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생각하는 곤충박사 되는 방법

1. 곤충 책 많이 보기

2. 곤충 잡는 거 연습하기

3. 곤충에 대해 공부 많이 하기

4. 곤충 키우기 놀이하기

5. 곤충 책 만들기


실제로  5가지를 수행하고 있는 첫째는 오로지 머릿속에 곤충 생각뿐이다. 예를 들면, 참나무라는 단어만 나와도 거기 사슴벌레랑 장수풍뎅이가 많이 사는데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곤충과 연결해 지식을 확장하고 있다. 책도 벌써 여러  출간했다. 물론 자가출판이다(?). 필명도 지었더라. 필명 하리캉카. 무슨 뜻인지 물어도 내게 답을 하지 않았다.   내용은 곤충에 대해 정리한 '곤충도감' 곤충 대결이다. 대결책은 만화 형식을 빌려 만들었다. 물론 스토리는 어이없고, 그림 실력도  수준이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웃을 뿐이다.  내지는 않지만, 내용이 어이없다. 그러나 아이는 진지하다. 그게  웃기다.



어떤 유튜브를 듣다가 부모의 양육 관련 태도를 테스트하는 내용이 있었다. 크게 엄마가 주도하느냐, 아이가 주도하느냐. 우리 집은 아이 주도형이다. 일찌감치 이 아이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한 적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엄마는 NPC처럼 세워둔다. 솔직히 그래서 아이와 놀아주는 게 싫을 때도 많았다. 규칙이 많아서 피곤하다. 그런데 최근엔 7세 이상이란 토가 달린다. 동생은 끼워주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이다.


"이건 7세 이상이야, 은준이 못 해"



그러던 중, 아이가 4살 때쯤이었나 엄마의 꿈을 물어봤다.


"엄마는 꿈이 뭐야?"


 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이 질문은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과거형으로 치고 들어온 게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게 함정이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된 나의 꿈은 지금 무엇인가? 그때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육아에 지쳐있었고, 재택으로 하는 소소한 알바는 그저 알바에 불과했다. 꿈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꿈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는 꿈을 꾸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하루는 지루했다. 아이는 4살 때도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다. 4살 후반기에 어린이집에 처음 갔으니 그전까진 매일매일 엄마와 놀았다. 아이와 온종일 밖에서 또는 온종일 집에서(한번 나가면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번 안 나가면 종일 집에서만 노는 아이) 놀았다. 당신 아이가 하나였으니 종일 이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아는 언니가 하는 라디오 콩트 알바를 썼다. 처음엔 익숙지 않아 오래 걸렸는데 나중엔 아이템이 없어서 서치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꿈을 꿀 여유도, 꿈의 필요성도 몰랐던 시절이다.



그러다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꿈을 키우는 게 나이와는 상관없다는, 흔한 말도 내게 와닿지 않았는데 갑자기 쓰기 시작하면서 꿈이 생긴 것 같다.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친구가 너는 뭐가 될 거냐고 물었다.


"글쎄 뭐가 될까?"

"방과 후 교사, 글짓기 교사 이런 거 좋겠다"

"난 관심 없는데"


그때 그 친구의 말이 비수로 꽂혔다. 나의 자격지심으로 인해 더 크게 아팠다. 애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뭐 하는 거냐?라는 뉘앙스였을 것이다. 자기 딴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조언해 준 것일 거다. 근데 나는 친구가 말하는 어떤 직종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한 가지가 글쓰기였다. 꿈을 딱히 있다고 떠벌리고 다닌 적은 없지만, 글을 쓰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그림이와 근황을 나누던 중, 요즘 블로그에 글쓰기 중이야라고 했더니 그때도 언니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랬었구나. 글을 쓰는, 무엇을 쓰든, 여하튼 작가라는 꿈이 있었고 나라며 나의 과거 꿈을 건져올렸다. 물론 직업상 방송작가. 작가라는 직책이 붙지만, 나는 매번 나의 직업을 '잡가'라고 치부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지만, 나는 그 일을 하면서 상처만을 부각시키면서 즐거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1년 넘게 글을 꾸준히 쓰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덕후 아들에게 배웠다.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몰입'이 중요하다는걸. 아이에겐 몰입이 곧 놀이이자 꿈을 키우는 방법이다. 그 노하우를 내게 쉽고 간결하게 알려줬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방법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저 몰입하며 그 일에 빠져드는 것뿐이라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꿈을 위해 작은 실천을 이어간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 자기계발이든 자기발전이든 그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상관없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직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미래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나의 미래를 꿈꾸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꾸준히 가장 열심히 몰입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꿈꿔본다. 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일이 '잡'이 된다면, 그 또한 고충이 있겠지만.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울까.


나는 그저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일도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자기 주도형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꿈이자 미래와 연결 짓는 가장 단단한 고리가 되길 바랄 뿐이다. 실천하면서 꿈을 좁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좀 더 구체적인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니까. 시작 전에 로딩이 너무 길면, 길을 잃어버린다. 처음 품었던 생각과 다짐을 잊고 만다.


움직이고 생각하라


나는 지금 실천의 힘을 더 믿는다. 덕후 아들을 통해 배운 삶의 교훈이다. 아이가 사슴벌레덕후에서 곤충 덕후로 자신의 덕질을 확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그저 열심히 쓰면 된다. 쓰다 보면 글감이 나온다. 쓰다 보면 장르도 보인다. 그런데 쓰기 전, 나는 어떤 글을 쓸까, 나는 어떤 장르를 택할까를 미리 고민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게 썼기 때문이다.


아이가 곤충박사가 되든 무엇이 되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아이가 즐거워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 그만이다. 나 역시 대단한 작가를 바라는 게 아니니 일단 쓰면서 나의 꿈과 미래를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 처음부터 대가는 나오지 않고, 그들도 고통의 과정을 거쳐 대가가 된 것이니 말이다. 꿈은 크게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큰 꿈에 짓눌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큰 꿈보다 작은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는 곤충 책을 보며, 곤충 대결 놀이를 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갈 것이다.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이에겐 시간이 많다. 이것이 나와 아이의 가장 큰 차이이다. 그러니 나는 매 순간 꿈을 잃지 않기 위해 좀 더 부지런히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이 지고지순한 논리를 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잊지 말자,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


자세히 봐도 모르는 아이의 만화 ㅎㅎ엄마는 너의 꿈을 지지한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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