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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Dec 12. 2020

엄마의 등을 보며 자는 첫째

첫째의 취학통지서 받던 날, 울컥했던 새벽


어젯밤, 서럽게 울다 잠든 첫째의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려온다. 동생이 자신이 구축해놓은 자칭 게임장을 망가트렸다는 이유로 화가 나있었다. 화가 나있다기보단 서러웠나 보다. 자신이 힘들게 만든 게임장을 망친 동생에게 주먹으로 응징하고 울기 시작한다. 엄마와 내일 치우기로 약속했지만, 자신은 좀 더 두고 싶다고 한다.



거실 한 복판에 둘째가 노는 장난감까지 동원된 게임장이다. 집 안에 있는 탈것들을 줄자로 동여맸다. 둘째는 당연히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싸움이 된다. 반복적인 싸움이다. 둘을 동시에 달래야 하는 엄마만 속 터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게임장을 치울 수 없으니 주말 동안 둘째의 기습이 이어지면, 거실은 간헐적인 게릴라전이 펼쳐질 것이다.

정체불명의 게임장. 중간중간 미션도 클리어해야한다


일단락 정리됐다고 생각했는데 첫째가 뭔가 서러웠지 계속 칭얼대며 운다. 옆에 누워 첫째를 안아준다. 놀고 있던 둘째가 달려온다.


"엄마 배꼽"


둘째는 엄마 배꼽에 붙어 잔다.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 배꼽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착한다. 똑바로 누워 양팔 하나씩 뻗어 아이들을 안아준다. 둘째는 자신을 두 팔로 꼭 안아달라고 요구하다. 나는 모로 누워 둘째를 안고 잔다. 그러다 보면 첫째를 등지고 자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첫째가 끼어들면, 둘째는 울기 시작한다.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울어댄다. 결국 첫째는 매번 아쉽지만 포기하는 듯 엄마 옆에서 따로 잔다. 옆에서 나는 한 손을 겨우 뻗어 손을 잡거나 어깨를 토닥인다. 이마저도 둘째의 방해로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다행히 첫째는 금세 쓰러져 잠을 잔다. 그러다 서서히 우리셋 모두 잠에 취한다.


그런데 새벽녘, 누군가 내 배위를 올라탄다. 둘째인가 봤더니 첫째다.


"갑자기 왜 그래? 꿈꿨어?"

"아니 엄마가 멀리 있어서"


엄마가 너무 먼 것 같아 가까이 왔다고 한다.


일순간 갑자기 내 뱃속에서 처음 만난, 그 의식하지 않았던 어느 시간대로 돌아간다. 우리 둘만이 있던 그 시간들로 둥둥 떠간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어떤 인연을 맺었길래 이렇게 모자 관계로 다시 연을 맺게 된 걸까. 아이가 내 배를 뻥뻥 치던 어느 날, 나는 내 안의 작은 우주가 마냥 신기했다. 내 뱃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나의 주인행세를 하던 아이를 다시 생각한다.


이어서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온 그 시점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처음 세상을 접하면서부터 아이는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리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 뱃속에서 한 몸이었던 우리에겐 좁힐 수 없는, 적당한 거리가 생겼다.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임으로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매번 아이는 내 시야에서 멀리 있는 작은 소실점이 되었다.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달려가면, 또다시 멀어지는 아이. 어쩔 수 없다. 아이는 아이에게 주어진 길을 헤쳐나갈 것이고, 엄마는 엄마 인생 속에 주어진 길을 찾아갈 것이다.


어제, 첫째의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를 받았다!


드디어 진정한 학부모가 되는 건가



이제 내년이면 좀 더 멀리 항해를 할 것이다. 아이는 더 큰 돛을 달고, 더 넓은 바다로 떠날 것이다. 엄마는 부둣가에서 하염없이 아이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심정으로 망부석처럼 서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크고, 엄마는 늙어간다. 울컥한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깊은 밤,

둘째가 자는 사이 달빛 사이로 나와 첫째가 있다.

나는 첫째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첫째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 새벽녘, 우리는 잠시 별이 되었다.

따뜻하게 빛나는 두 개의 작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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