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기반으로 하는 육아의 자세에 대하여
며칠 전, 첫째가 BTS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고 했다. 막춤도 그런 막춤이 없다. 무용인지 무술인지 알 수 없는 아이만의 아방가르드함. 그때 남편이 일어서서 유튜브의 한 장면을 정지시키고, 이 노래에서 춤의 백미는 이 동작이라며 아이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다. 물론 아이는 고성을 내며 거부했다. 흥에 겨워 추고 있는데 아빠가 음악을 꺼버리는 아이는 기분이 상해버렸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으면 이런 유사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아이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는 결국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욕구인데 남편은 제대로 된 방법을, 보편성을 부여해 아이들을 교정시켜주려고 한다. 얼마 전 둘째가 컨디션 난조로 누워있는 나를 깨웠다.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게 해"
이유인즉슨, 초콜릿 과자를 먹을 때 초코를 먼저 찍고, 설탕가루 유사한 색색의 가루를 찍어야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둘째는 가루를 먼저 찍고, 초코를 찍어먹었다. 그러다보니 아빠는 가루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니 답답한 마음에 먹는 방법을 알려주려 했으나 둘째가 거부했다. 둘째는 그 과자를 먹을 때면 가루를 많이 흘린다. 식탁에 흘린 가루를 혀로 핥아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초코를 찍고 논다. 먹으면서 노는 거다. 그 과자는 먹으려고 산 게 아니라 놀려고 산 것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면 청소할 거리를 안겨주니 마냥 곱게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남편은 둘째의 행동이 불편한 것이다. 깨끗하게 먹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나는 누워서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은준이 먹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두세요"
둘째는 다시 식탁으로 올라가 온 가루를 바닥에 흘리며 놀면서 먹었다. 둘째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그래서 옆에서 이런저런 교정을 해도 잘 듣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경험에 대해 그냥 인정한다.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를 굳이 막을 필요는 없을 테이니. 물론 엄마는 피곤하다. 할 일들이 많아지고, 아이의 울분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둘이서 책을 만든다고 난리였다. 첫째는 배드맨과 스파이더맨 등 돌아온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쓴다고 했다. 둘째는 돌과 파도, 그들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형이 만드는 방식대로 책을 만들고 싶어진 둘째. 결국 몇 차례 실수를 거듭하고서야 스스로 완성시켰다. 물론 과정을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종이가 접혔다고, 구겨졌다고 울고 불고를 반복했다. 옆에서 내가 대신해주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온전히 제 힘으로 만들었다. 별거 아닌 종이와 풀로 만든 미니 책이지만, 아이는 완성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물론 잠들기 전,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한 권을 다 읽어주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사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어른의 재미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도 많다. 주로 들어줘야 하고, 같이 해줘야 하고, 해달라는 요구에 수긍해야 하니까. 적극적인 화자가 아닌 수용적인 청자가 되어 품어줘야 하는 부모에게도 이는 낯선 경험이다. 부모들도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얘기를 발산하는 입장에 오래도록 익숙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있을 때 자신의 욕망을 버려야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관심사도 다른데 어떤 자세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나 매번 고심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마냥 세상 만물에 신기해하던 그때를 복기해본다. 아이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려면 어린 시절의 나와 조우를 시도해야 한다. 최근 나의 밋밋한 상상력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이렇게 살다 간 시시한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시절들이 열쇠가 되어줘 자물쇠에서 풀린 나의 어린 호기심들이 툭툭 튀어나와 아이에게 노크를 시도한다. 아무 계산 없이 그저 즐길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깨닫는다. 호기심이란 본연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반면 부모의 간섭은 호기심의 싹을 자른다.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했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마냥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말을 늘어놓지 않게 될 것이다. 구름 한 점, 새 한 마리. 절기에 맞춰 피는 꽃들과 곤충들의 행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일상은 지루할 틈이 없다. 매번 자신들의 호기심이 발생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아이의 시선에 맞춰본다. 그러다 보면 이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를 저절로 감탄하는 순간이 종종 올 때가 있다. 엄마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나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생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길가다 만나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그래서 더욱 설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