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by 델리러브

https://news.v.daum.net/v/20200528210416693


공감이 간 어떤 댓글

"신이 선하다는 건 인간의 욕심이다"



차마 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어떤 말들은 인공 첨가제 같아서 일부러 인위적으로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의 평준화된 맛을 따라가기 위해 자꾸만 토를 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다. 언어가 내 생각을 100%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상황을 100% 언어로 구사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그것이 감정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세상의 전부라 치부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졌지요. 그것은 어느 순간, 내 팔다리가 잘려나간 기분입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요며칠간 나는 팔다리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유난히 그 부위들이 내게 주는 통증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환지통이라고 하죠. 내 팔다리는 이미 잘려나갔는데 계속 그 부위들이 저려왔어요. 나는 순간 내가 몽상가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꿈 같아요, 지금이. 지독한 악몽이죠. 눈을 감으면 그래서 무서워졌어요, 시간이, 공기가, 그리고 세상이.



나는 발을 디디며 걷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발은 보이지 않아요. 나는 팔을 뻗어 당신의 뺨을 만져주는데 내 팔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멈칫 하며 나를 보내요. 그리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집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요? 이 세계 역시 눈에 보이는, 실재계일까요?



길을 걸어요.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만들어줍니다. 나 자신이 바이러스라고 느껴졌어요. 세상의 공기는 그대로예요. 공기는 항상 일정양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지요. 적당한 무게감은 삶에 적당한 긴장감을 줍니다. 그런데 최근 내 주변의 공기들이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대기상태가 마치 소나기 쏟아지기 직전 상태예요. 삶이 무거웠습니다. 내 삶의 무게가 저 먹구름 낀 하늘이랑 동일해지고 있다는 건, 내가 머금고 있던 눈물들이 폭발 직전이란 의미일 거예요. 나는 항상 안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습니다. 맛은 짜고, 농도가 짙고, 마치 고름처럼 누런 빛깔로 보이기도 해요. 머리까지 가득차서 더는 채울 공간이 없어요. 지금이 쏟아낼 떄인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내게 건네준 말들을 아직 다 기록하지 못했어요. 기억 속에서 온전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산재되어있고, 나는 붙들어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은 뭘까요? 눈앞에서 사라진 이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내 앞에 없지만, 지금은 사라졌지만, 안녕이라고 하는게 어떤 의미인가. 그들의 삶에 안녕을 고하고, 내 삶에 안녕을 취하는 어떤 의식 같은 것. 눈으로 하는 매일매일 작별을 해야한다. 떨쳐버려야할 것들을 떠올린다. 눈을 감는다. 틈새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뺨으로 느껴지는 온도가 꽤 높다. 닦지 않고 그래도 말린다. 조금 지나 따끔따끔한 느낌이 든다. 지난 기억들이 짠 맛으로 느껴지는건 이런 이유일까? 생이 좀 달달하면 좋으련만, 아니 쓴 맛이 아니어서 다행인건가. 나는 어설프게 생의 맛을 상상한다. 어떤 맛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감각 너머의 또 다른 감각만이 생을 재단할 수 있다. 지금 나는 그저 눈물을 흘려보낸다. 어떤 바다로 내보는지도 모른다. 내 생의 안위를 위한 임시방편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눈물이 바다와 만나는 그날을 나는 볼 수 없지만, 미리 작별을 고한다. 나는 눈으로 너에게 애석함을 표한다. 너는 그 감정을 받아가 바다로 흘려보낸다. 나는 점점 가벼워지겠지만, 바다로 향하는 너의 발걸음이 무겁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날들이 있다. 너무 무거워서 하루 종일 누워 천정만 보낸 시간들. 내 20대를 지배하던 감정들이다. 가장 가벼워야할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무게감으로 나는 종일 아팠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약으로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내 안에 돌풍이 불고 있고, 쉽게 멈춰지지 않았고, 그것이 지진과 화산폭발과 이러저러한 재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문득 그때의 아픔이 나의 몽상에 지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으나 어디로 갈지 몰랐다. 길을 걸었고 당신을 만났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길거리를 배회했다. 소소한 일상들이 지금 내겐 없다. 지극히 보편적인 시간들이라고 치부했지만, 얼마나 특별했던 시간인가. 이제서야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 모든 것들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슬픔의 시간이 알고보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아직 세상을 모르고, 세상 역시 내게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도 나는 너를 돌려보내고 길을 걷는다. 안과 밖 중에서 어디를 선택할 꺼냐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밖이 좋다고 할 것이다. 밖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 연대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안에서는 더 이상 자가발전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밖의 기운을 받아 에너지원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길을 나서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다. 모르는 길로 가거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는 걷는다.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눈물을 짜낼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외롭다는 것. 외로움을 몰랐던 시절에 내 주변을 둘러쌌던 군더더기들이 다 떨어져나갔다. 왜 많은 것을 갖고도 외로웠을까. 오히려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어쩜 나는 앞으로는 인공눈물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애써 눈물을 짜내진 않을 것 같다.




괜찮아지는 세상, 좀더 나은 세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숨을 쉬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숨을 이어가길 바랄 뿐.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나는 고민한다. 고로 존재할 것이다.



터키의 작은 마을, 괴뢰메 인근에 우치히사르에 갔을 때였다. 높은 봉우리 위에 오르면 카파도키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상상의 세계를 눈으로 만난 것이다. 현실이 아닌 상상 속. 셀피를 찍으려다 뒤로 넘어간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때 이탈리아 여행자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한 순간이다. 경계의 폭은 좁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안녕을 고한다. 얼마나 많은 작별을 해야하는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하는가. 하지만 무서운건 그 회수는 늘어도 눈물의 양은 더이상 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의 면역력이 가동되면, 눈물도 말라버릴지 모른다. 그 전까지만 실컫 울기로 하자, 우리.




*눈으로 하는 작별 - 룽잉타이의 산문집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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