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의 유영 (feat. 계피)

날씨는 어떤 방식으로 내 시절들을 소환하는가

by 델리러브

https://www.youtube.com/watch?v=0ZahYvqyGls

가을방학 계피의 동요집을 듣는다. 동요집 '빛과 바람의 유영'은 제목부터 맘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빛, 바람, 구름, 비, 눈, 햇살, 폭풍(태풍보단 폭풍, 같은 풍인데도), 천둥과 번개, 무지개. 이런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그 자체가 상징 같다. 더 이상의 수사가 필요없는 말들이다. 발화되는 순간, 표현이 완성된다.


햇살을 더 이상 뭐라고 표현할 것인가. 어떤 햇살이란 표현이 있을 수 있지만, 햇살은 그 자체에서 온도가 느껴진다. 차가운 햇살, 뜨거운 햇살, 그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내게 햇살은 따스함이 깃들어있다. 바람은 단어 자체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대기의 유영들이 유령처럼 떠다닌다. 속삭이듯 내 피부에 와닿는 촉감이 좋다. 그래서 나는 바람을 좋아하나보다.


그 어떤 자연현상 중에서도. 비와 눈은 어떤 시절이 깃들여있다. 비가 오면, 눈이 오면, 우리는 그 풍경과 그 풍경을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어쩌면 홀로 지켜온 시간들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방바닥에 귀를 대고 자가다 소나기 소리에 놀라 깨어 가족 중 누가 올 시간인지 헤아려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 또는 길목 어귀에서 언니와 나와 서성대며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들도. 그 시절의 온도들은 적당한 상온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 춥지고 덥지도 않던, 내가 기생하며 살기 좋았던 기후라도 해도 좋겠다. 쌍무지개에 대한 기억이 있다. 달동네 꼭대기는 하늘과 같은 높이이다. 무지개는 내 눈높이에 맞춰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파노라마이다. 조용히 떠나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어떤 화려함, 그에 대한 기억이다.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앨범이다. 계피의 목소리에 맞게 역시 내가 좋아하는 동요들이다. '노을', '섬집 아기'. '구름', '꽃밭에서', '과수원길', '반달' 등. 이런 동요넘버들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학창 시절의 음악수업 같다.


노래 자체가 주는 위안은 경제적으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돈 들여 여행을 가지 않아도, 쇼핑을 하지 않아도, 내 삶이 지칠 때 귀로 오는 감각들이 나를 위로해준다.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기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면, 음악은 내게 어떤 말을 하듯 찾아와 평온함을 준다. 나는 그 평온함을 해먹 삼아 긴 낮잠을 잔다. 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생의 감각이 살아난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던 시절은 내게 없다, 이제. 음악과 언어가 주는 위로들이 전부인 시절이 곧 올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날씨에 더더욱 민감해진다. 그 시기에 어떤 작물이 나는지도 관심이 높아진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무각감해진다. 그러다 과일가게에서 수박이 나오면, 아 이제 여름이 오구 있구나를 깨닫는다. 요새는 하우스 작물이 많아 그마저도 경계가 사라졌지만, 과일과 채소는 계절 감각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꽃들도 마찬가지이다. 꽃은 가장 정직한 계절의 언어이다. 꽃은 날씨에 따라 어김없이 피고 진다. 가끔 발생하는 오류는 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래서 개화를 통해 내 지점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 지표에 따라 올해는 몇 달이 지났는지, 내가 지금 내 남은 생에서 어디까지 왔는지를 깨닫는다.


인생이란 어떤 자극에 의해 새로운 감각이 탄생한다. 탄생의 주기는 매우 불규칙해 나 자신이 예민한 감각을 세우지 않으면, 모르고 스쳐간다. 나는 무심결에 생이 주는 메시지를 자주 지나쳐왔다. 그마다 날씨와 계절감각이 나에게 어떤 상징처럼 다가왔다. 매번 다 해석에 성공하진 않지만, 직관으로 판단한다. 나는 이제 000을 할 때라고 말이다.



불현듯 스치는 생각...

좋은 사람, 좋은 엄마 되기가

얼마나 머나먼 길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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