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가 말고 작가

누가 중년의 꿈을 짓밟겠는가

by 델리러브

태초부터 잘못 단추가 끼워진 직업들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방송작가라고 생각한다. 타이틀만 그럴싸했지 하는 일은 온갖 잡다한 일을 해치워야 한다. 특히 막내작가의 감정노동은 실로 어마어마하다.(s 본부에선 실제로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대부분의 직업이 그러하듯, 이 일 역시 영혼을 파는 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노심초사해야 한다. 온몸의 에너지를 피스톤 안에 주입해야 제대로 주삿발이 먹히는 일이라고나 할까. 대충 얼버무리고 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영혼을 탈탈 털고, 밤도 지새울 만큼 세야 겨우 한 편 제작한다.



한때 나는 무려 한 달에 10편을 제작해야 했다. 5분에서 10분 분량의 생활정보, 의학. 시사 등을 총망라한 주제의 코너를 다른 작가와 돌아가면서 제작했다. 공장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한 달 기준으로 한주는 3편, 한 주는 2편씩 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주는 3일을, 한 주는 2일씩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보통 한 달에 4편 제작을 기준으로 삼으면, 한 달에 근 두 달 반치 일을 한 셈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갔고, 보통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거나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한 달이 꼭 두 달 같았고, 시간은 과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달력 한 장 넘기는 시간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바쁜 와중에 나는 방송 사고도 냈다. 000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방송이었다. 포름알데히드 성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방송인데, 단신 기사를 참조해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방송 후 엄청난 항의로 인터뷰해 준 교수님도 잠적했다. 6분이 채 안 되는 분량이 전국 000협회인들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엄청난 내용이었나 보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방송사에, 제작사에 항의 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폭탄 터지듯 걸려왔다. 실핏줄이 터질듯한 곡성으로 항의 전화를 하는데, 정말 10초마다 전화가 왔다. 전화통에 불났다는 표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지옥에서 허우적대는 나와는 달리 사무실 분위기는 담담했다. 방송은 끝났지만, 다다음날 방송을 준비하는 팀원들에겐 시답지 않은 소음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동일했다.



1. 전화가 온다.

2. 나에게 돌린다.

3. 다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상대가 겪을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한 연대의식은 절대 없다. 그들에겐 아직 두 번의 방송이 남아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눈앞의 방송 제작이 시급하다. 백 리도 못 보는 신세이 돼 버린 노동자의 비애다. 과도한 감정 소비로 인한 시간 낭비는 금물, 다시 미싱을 돌려야 한다. 공장은 쉴 수 없다. 그 어떤 고난이 밀려와도 내일 방송을 나가야 한다가 방송쟁이들의 신조이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며 이직을 해도, 다시 복귀하는 회귀본능 99%를 자랑하는 직업이었다.(이건 나 때고, 요즘 애들은 그렇진 않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지금 하는 일이 썩은 동아줄인 줄 알면서도 놓지 못했다. 혹여 이것이 역시 방송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것이 바로 방송 뽕이다. ( 폼생폼사라고나 할까?)



이직의 더 큰 장애물은 출퇴근에 대한 개념이다. 일이 프리 하다 보니 정해진 출근시간에 맞춰 일상을 조율하는 게 힘들다. 가끔 출퇴근을 지적하는 곳도 있지만, 많은 제작사에서는 과도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프로덕션 사장들도 피디나 작가였고, 그들도 아침 일찍 출근 가능한 종자가 아니다.



나는 떡 진 머리를 하고, 전국 000협회 회원들의 고성에 가까운 항의를 온몸으로 들어야 했다. 수화기로 전해진 소음에 가까운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와, 실핏줄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고성이 높아질수록 내 몸이 헬스장의 진동 마사지 기구가 된 기분이다. 나는 전화받는 로봇인가, 전화기인가? 그 와중에 나를 위로해 주는 피디 덕에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장작가가 써준 촬구는 참 보기 좋아. 일목요연하고”


이에 나는 속으로 외친다.


- 이 진상아 그게 지금 할 소리냐. 나는 지금 지옥불에 온몸이 타들어간다 이놈아



내 상황을 보고 하는 말이냐. 자기 세계에 갇히면 공감능력도 상실된다. 이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자다. 자라는 과정에서 변이가 된 이 종자들은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란다. 황소개구리 못지않은 생명력을 자랑한다. 덕분에 토종 개구리들만 죽어나간다. 같이 일하는 팀들과 대화가 불가하니까.

며칠 전 길거리에 받은 풍선이 시간의 경과로 쪼그라들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상태. 당시 내 모습이었다. 결론적으로 외부의 압력으로 곧 터질 것이다. 나는 팀장에게 불려 가 어떤 수모를 겪게 될까?



자 이제 난 이 사무실에 방송 사고를 낸 사고뭉치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시작한 것도 나이고 해결해야 할 주체도 나이다. 사실 나의 방송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요즘 시대였다면 악플러의 공격도 받았을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피디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촬영한 영상을 편집에 썼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나 역시 공모자처럼 몰려 본사 부장의 취조를 당했다. 하필 영화의 엔딩을 편집 영상으로 끼어 넣은 걸까?



당일 밤으로 기억을 복기해봤다. 피디는 당일까지 촬영을 하고 왔다. 늦은 밤 10시부터 시작된 편집은 오전 7시 안에 7~8분 내외 편집을 마쳐야 한다. 오전 7시가 아침 8시 반 방송에 맞추기 위한 데드라인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피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를 많이 내고, 편집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더러운 똥을 피한다는 심정으로 편집실 밖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안에선 계속 개가 짖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피디가 대략의 편집을 하면, 한 번 보고 재정리한 후, 대본을 썼다. 그게 끝이었다. 나의 죄라면, 그에게 영상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공범은 아니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외면으로(개가 너무 짖잖아), 방송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최초의 목격자였으나, 이를 막지 못한, 즉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죄가 성립된다.



사고를 낸 후 정신 차려 다시 일을 했다. 당시 이 프로덕션에 막내 작가는 무경력 초짜였다. 사학을 전공한 아이인데 유물을 발굴하는 연구소에 갔다가 스스로 그만뒀다. 발굴된 유물을 깬다거나 유적을 잃어버리는 등 연구소뿐 아니라 우리나라 한국사에 민폐를 주는 것 같아 그만뒀다고 한다.



“J가 그 일을 그만둔 건 한국사 발전에 기여하는 위대한 선택이었어”



모두들 일동 기립박수를 쳤고, 우리는 그녀의 첫행보에 갈채를 보냈다. 그 이후 사무실 사람들은 동네 개 이름 부르듯 매번 J를 찾았다.



- J야. J야

- JJ야



아마도 이선희 이후에 가장 많이 J를 입에 달고 산 건 당시 작가진이 아니었을까. J야를 입에 달고 다니는 서브 작가들 등쌀에 그녀는 매일매일 혼이 제대로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방송 전날, 다들 신경이 머릿 끝에서 꿈틀대는 밤 12시. 그녀도 결국 나약한 인간을 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서브작가들이 막내에게 간식 심부름을 시켰다. 다들 요구 사항이 복잡했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외울 수 없을 정도다. 일에 매여 욕망을 억제해온 서브작가들은 다양한 취향의 소유자로, 더불어 입맛도 제각각이었다. 중국집에서도 감 놔라 배 놔라 메뉴가 산으로 가서 팀장이 자장면으로 통일해 시킨 경우도 있었다.


사무실 옆 편의점으로 떠난 J가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사무실의 공기는 내내 J가 아니 J가 사러 간 간식들을 기다리느라 긴장감이 더해졌다. 기다랗게 목을 뺀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거대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들 같았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브라키오 한 마리가 거동을 시작했다. 하루에 7톤 가까운 풀들을 뜯어먹어야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식욕을 지녔던 브라키오는 순한듯하지만 큰 덩치 탓에 육식동물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아파트 7층 높이의 키 때문에 느림보라는 별명을 지닌 그가 사무실에 있다. 브라키오 조연출이 한 마디 내뱉었다.



“아 씨바, 왜 이렇게 안 와”



그제야 서브 중 가장 연차가 어린 작가가 몸을 움직였다. 한 20분쯤 후였다. J는 눈이 퉁퉁 부은 채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녀가 사무실에 발을 내딛자마자 다들 득달처럼 달려와 비닐봉지 안에서 자신이 시킨 간식들이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했고, 무사히 안착하는 순간 빈 봉지만 테이블 위를 뒹굴었다.



순식간에 정수기 옆 테이블엔 컵라면이 줄지어 대기 중이고, ‘천하장사’ 소시지도 제 주인을 찾느라 바빴다. 그렇지만 아무도 J가 왜 늦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J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제 자리에 앉아 노트북만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넌지시 이유를 물어봤다. J는 그때 그 감정이 다시 올라온 듯 울먹이면서 말했다.



"다 사고 나니 제 것 사 먹을 돈이 부족했어요"



세상 가장 억울하고 분하다는 J는 그 이후로 방송일을 계속했다가 관공서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내게 알바 일자리를 주기도 했지만, 전화번호를 바꿨는지 연락이 끊겼다.



다시 사무실엔 노트북 자판 소리만 다다다~ 울려댔다. 밤새 운영되는 이 공장은 이틀에 한 번, 또는 3일에 한 번 문을 연다. 간혹 조는 이들도 있지만, 다들 좀비처럼 버틴다. 시간의 흐름은 비규칙적이다. 편집 속도에 따라 작가들마다 대본 작업의 속도도 빠르게 또는 느리게 흐른다.



사무실 책상 밑으론 차가운 강이 흐르고 있다. 나는 발목까지 찰랑대는 물결의 파동이 거슬렸지만, 무심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밤샘이 지속될수록 온몸으로 한기가 강렬하게 번졌다. 대본을 완성해야만 물을 건널 수 있다. 발목까지 찼던 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왔다. 대본이 완성되면, 무릎까지 오는 물을 헤치고 나와 생방 스튜디오로 달려간다. 온에어 불이 켜지고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떻게든 방송은 나간다. 바빠도 방송은 나간다. 사고가 나도 방송은 지속된다.



그날 방송을 마치고, 우리는 s 본부 지하 식당에서 짬밥을 먹었다. 일의 기복은 심하지만, 방송 후 풍경은 매번 똑같다. 붕어빵 틀 기계처럼 우리는 매번 같은 붕어빵을 만들고 있다. 매번 시청자들에게 슈크림이나 딸기 크림이 아닌, 팥 붕어빵만 만드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청률이라는 호된 매를 맞아야 하므로 우리는 매번 반복한다. 그 와중에 사고도 친다.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같이 일을 했던 친구와 통화를 했다.


"나 다시 방송일을 해야겠어"


오 마이 갓.... 너는 그동안 방송일을 그만두고 결혼과 함께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무려 2년간 강의를 듣고, 과목을 이수하며 복된 시간을 보내기 않았는가. 그런데도 다시 방송일이라니? 자격증이 이제 곧 나오는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내가 다시 방송일을 시작하려면, 방법은 하나야. 기획안을 써서 공모에 통과하는 거야"



생각해보니 너는 한때 방송일이 싫다고, 강남 어느 성형외과 홍보팀 직원으로 1년간 일을 한 전적이 있구나. 일이 힘들다고 20대 후반엔 1년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갔다 왔었지.



설마 다시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다시 방송작가로 열과 성을 다했던 그 시간들이 올 거라고 말이야.

그냥 나는 요새 밥보다 꿈이 더 중요해졌어.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자. 우린 방송일을 하기엔 이제 너무 노쇠해졌고, 아무도 우릴 반겨주지 않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차디찬 커피를 들이키며 내 지난 시간의 궤적이 꽤나 깊었구나 싶었다.

근데 어쩜 나의 꿈이 친구보다 더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야, 말은 안 했지만, 나야말로 다시 꿈을 꾼다.

작가가 되는 꿈, 잡가 말고 작가.


이전 13화그날 내가 마주한 어둠의 실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