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낯선 하루가 시작되다

황혼 육아라는 덫 아닌 덫에 걸린 엄마의 노년

by 델리러브

엄마가 장사를 접고, 어제 오빠네 집으로 갔다. 새언니가 직장에 복귀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일을 대충 정리하시고 가셨다. 오전에 전화하니 윤아의 온라인 수업을 구경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 수업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늘 그렇듯 밝은 목소리로 응대한다.



마치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살아. 나는 괜찮아"



억센 두 아들을 키운다며 막내딸이 고생이라고 내심 걱정하던 엄마. 엄마가 오빠네 집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까 걱정이 앞섰다. 엄마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다. 애지중지하던 오빠가 과연 그 집안에서 어떤 입지인지 눈으로 확인할 텐데 그러다 보면 새언니에게도 별다른 말을 못 할 것이다.



사실 시누이와 새언니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세월의 힘을 빌어 순화될 뿐이다. 나 역시 새언니와의 관계는 어색하다.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편하게 대화가 가능한 관계는 아니다. 가끔 새언니의 언사가 불편했고, 그건 새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온 방식과 환경이 너무 다른 건 차치하고, 일단 관계 설정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은 관계 선상에서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다.



엄마가 오빠네로 가는 날, 엄마에게 찾아갔다. 엄마가 일하던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엄마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늘 그렇듯 왜 왔냐는 식이었고, 나도 대충 얼버무렸다. 아마도 엄마는 주말엔 집으로 와서 아마도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옆자리에 이모가 장사를 하곤 있지만,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른다. 주변에 장사하던 분들이 다 놀랜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진짜?"

"애 보러 간다며. 진짜 안 와?"



엄마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야 했다. 엄마가 이 자리를 지킨 지 30년째이다. 30년간 같은 일을 해왔다. 30년간 같은 일로 가족을 부양했다. 자식들이 커가면서 그 무게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집안의 가장으로 일해왔다. 그 사이 몸도 야위고, 체력도 약해졌다. 나이 들면서 하나씩 생겨난 지병으로 약을 달고 산다. 그러면서도 새벽까지 나가 일을 하고 밤늦게 들어온다. 엄마의 일과는 해가 길어지면 덩달아 길어지고, 해가 짧아지면 덩달아 짧아진다. 엄마의 일생은 집에서의 시간보다 이곳, 이 자리에서 버틴 시간이 더 길다. 엄마의 일은 시대가 바뀌면서 굴곡도 많았다. 지금은 엄마가 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젊은이들이 없다. 고된 노동은 기본, 온 시간을 장사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대비 가성비가 적다. 그래서 주변을 보면 다 나이 든 사람들이다.



한 관리인이 엄마가 안 오면, 이모가 할 텐데 장사를 잘할까 우려했다. 이모는 "일 있으면 빠지기도 하지 어떻게 여기에만 집중해요."라고 한다. 그분은 "장사하는 사람은 하루도 쉬면 안 돼. 장사에 빠져서 미쳐야 돼". 다들 장사의 노예가 사람들이다. 모든 시간을 이곳에 투자한 사람들이 버틴 곳이고, 그만큼 악착 같이 생을 살아온 분들이다. 엄마의 모든 시간 역시 이곳에 기록됐다. 엄마의 기억은 대부분 이곳에서 시작해서 이곳에서 끝이 날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자리를 지키면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확실한 건 엄마는 이곳에서 삶의 지루함과 심심함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식들 모두 다 떠나도, 엄마는 출근할 곳이 있어고, 말동무들이 있었다. 삶을 의지할 공간이 있었고, 생을 견디게 해주는 일이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이를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쉬엄쉬엄하라고 부탁했다. 결국 엄마는 타의에 의해, 타인의 욕망에 의해, 일을 그만두게 됐지만. 그 욕망을 손가락질할 수 없으나 다만 황혼육아가 엄마에게 얼마나 고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70이 훌쩍 넘어 7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과연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딸로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안부 전화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엄마의 입장을 알고, 새언니의 입장을 알고, 오빠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아쉽다. 노년에 아픈 엄마가, 자꾸만 말라가는 엄마가, 평생 일이 인에 박힌 엄마가 잘 버틸 수 있을까. 다만 바라는 건 엄마가 더는 아프지 않기 바라는 것, 엄마가 우울해지지 않길 바라는 것. 그것뿐이다. 엄마를 버티게 해 줬던 공간의 상실과 일의 공백이 엄마의 남은 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가 우려하는 만큼 부정적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왜 걱정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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