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삶이라는 고단한 연대기 그리고 버티기

by 델리러브

여행을 하다 보면, 길 위의 음식들에 끌리기 마련이다. 배낭여행을 하면, 동전 한 닢도 아쉬울 때가 있다. 길거리 음식은 가난한 여행자들에겐 최고의 만찬이 되어주었다. 나는 항상 길 위에 펼쳐지는 음식들을 자양분으로 내 여행을 이어갔다. 우연히 넷플릭스를 검색하던 중 발견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의 셰프들:아시아'를 보았다. 태국을 시작으로, 일본 오사카, 인도 델리, 대한민국 서울까지 총 9개의 아시아 도시의 길거리 음식의 유명 셰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9편을 모두 본 건 아니지만, 공통된 구성이 있다. 메인 셰프 한 명을 선정해 그의 인생역정을 따라가는 스토리 위에 문화 평론가들의 인터뷰와 함께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길거리 셰프 2명의 음식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중 방콕으로 먼저 떠났다, 내 지난 추억이 깃든 곳으로.



언제가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10일간 빈둥거리던 나와 일행들은 이곳에서 어떤 재미를 붙여야 할지 고민을 했다. 예전에 방콕 여행을 하긴 했지만, 그때의 10일은 좀 달랐다. 다들 가장 싼 비행기 표를 얻어 인도 콜카타에서 방콕으로 왔다. 인도에서 만난 여행자들 몇 명이 모여서 다 쓰러져갈 것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방을 얻었다.


방콕에서 인천으로 들어가는 가장 싼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온 것이니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몇 달간의 여행으로 돈도 많이 날렸다. 숙소 천정에 팬 하나만 빙글 돌아간다. 온몸으로 더위가 흡수되는 기분이다. 결국 우리는 잠들지 못했다. 일단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얼음,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샀다. 나와 수호, 석현이, 보연이는 카오산로드 길거리에 앉아 얼음을 탄 맥주를 마셨다. 안주는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꼬치와 조각 과일. 보연이는 온종일 구아바만 먹었다. 구아바는 조금은 심심하지만, 왠지 모를 건강한 맛이 있었다. 여기선 흔해도 한국 가면 먹기 힘든 과일이니 많이 먹어두자는 마음으로 나도 같이 먹었다. 팟타이, 바나나 로띠 등을 줄지어 먹어도 가격이 저렴하니 부담이 가지 않았다. 우리는 길거리 음식으로 배도 채우고, 밤의 낭만도 즐겼다. 새벽녘엔 쪽으로 해장으로 하고, 다음날 아침엔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족발 덮밥을 먹거나 갈비 국수를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식욕, 그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그곳 상인들은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일단 말이 없다. 손님의 요구에 충실했다. 그리고 어느 시간 대가 되면, 수레를 옮긴다. 단속반이 뜨면, 피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았고, 다큐를 통해 다시 그 장면을, 그 상황을 조우하게 됐다.



문득 지난해 영등포역 앞 포장마차가 사라졌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마지막으로 영등포 한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사무실로 가기 전, 급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늙은 할아버지가 하는 포장마차였는데 이곳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서툰 손놀림으로 만든 떡볶이의 맛은 직감적으로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떡볶이는 잘 팔리지 않아 보였다. 중간중간 떡은 딱딱해져 있고, 너무 짰다. 어쩌면 어젯밤에 팔다 남은 떡볶이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온화해 보이는 할아버지 앞에선 그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떡볶이 양이 너무 많아 조금 덜어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양이 많아서다, 당신의 떡볶이가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라는 식의 뉘앙스를 깔고 정중히 부탁해 반을 덜었다.



문제는 이 맛이 기획된 맛이라는 점. 한때 유행했던 신전 떡볶이 맛과 유사했다. 고추장에 카레를 섞은, 젊은 맛이다. 고추장과 물엿으로 만들어낸 옛날 떡볶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으면, 할아버지 손에서 전혀 만들 수 없는 맛이다. 맛은 기억이다. 맛보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건 요리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일반인이 자신이 기억의 맛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맛이 있든 없든. 어쩌면 노력의 산물일, 이 떡볶이의 최후를 나는 맛보고야 말았다. 얼마 후, 인터넷에서 영등포 노점상이 정리됐다는 뉴스를 확인했다.



방콕이든 서울이든 그곳이 어디든 수레 하나 끌고 길거리로 나온 이들의 공통점은 가난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자본이 없는 이들은 결국 최후의 보류, 길에 나앉게 된다. 길 위에서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지는 당시의 환경과 손맛 그리고 약간의 운도 필요하다. 노력했으니 성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길 위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음식을 만들어내는 방콕과 델리의 길거리 셰프들의 공통점은 맛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 섰지만,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결과는 창대했고, 과정을 평범하지만, 그것이 진리임을 말해준다.



영등포역 근처 노점의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어쩜 근처 쪽방에 사시는 분일까? 어찌 됐든 도시빈민으로 어디선가 살고 계시겠지? 영등포역에서 아직도 길거리 수레에서 과일을 파는 할아버지도 계실까 궁금해졌다. 작년 봄, 그곳에서 딸기를 샀다. 카드 계산이 불가하니 늘 항상 그곳을 지날 때면 현금을 확인한다. 아주 작고 빨간 딸기들을 사 와 아이와 함께 먹었다. 늦은 밤까지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의 꿈은 어쩌면 다리 펴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하는 게 아닐까?



밤에 누워 생각했다. 영등포역 앞 과일 파는 할아버지의 꿈만큼이나 작고 소박한 꿈을 닮은 딸기. 그 딸기가 할아버지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아침부터 밤까지 할아버지는 길에서 보내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인 도시빈민들에게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뒤척이다 잠이 든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천양금에서 작고 새빨간 열매가 열리듯 아주 가끔은 우리 인생에 빨간 열매가 열렸으면 좋겠다.


벌써 여름이다.

날은 덥고, 병색이 짙은 계절이다.


마냥 아프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올 여름의 촉감은 따끔따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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