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시끄럽고 때론 요란한

오래전, 콜카타에서 보낸 20일

by 델리러브

S는 인도만 세 번째인, 전형적인 인도 여행자이다. 많은 곳을 다니지 않고, 많이 움직이지 않다. 어느 날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내내 꼼짝도 하지 않아 침대 위 칸을 툭툭 치니 아프단다. 허리가 삐긋해서 옆 게스트 하우스 한의사 언니가 침을 놓았지만 호전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대만 친구 제시가 의사 친구를 데려왔다. 의사 친구는 심각하게 S의 허리를 만지다가 갔다. 만지는 느낌이라기보단 두드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진료를 한 후, 마사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남기면 유유히 사라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애니멀 닥터, 즉 수의사였던 것. 애니멀 닥터는 대만에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한다. 동물들에게 통했을지 모르는 두드리기 신공이 인간에겐 통하지 않는 듯하다. S는 그날 밤 내내 허리가 아프다고 투덜댔다.



S의 허리에 문제가 생긴 건, 다르질링 가는 토이 트레인 안에서 넘어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물이 있는 걸 모르고 지나가다가 조리가 미끄러지면서 허리가 의자 손잡이 부딪쳤다. 자세히 보니 좀 부은 것 같기도 했다. 바라나시는 올 때마다 와서 볼 것도 없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왜 왔냐고 물어보니 모나리자 레스토랑의 닭백숙을 먹으러 왔다고 한다. 무슨 닭백숙을 돈 주고 사 먹냐며 나는 여행 중 닭백숙을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직접 요리를 방안을 제시했다. 인도 사람들이 무슨 닭백숙의 걸쭉한 맛을 알겠니라며 따지는 나를 S는 교묘하게 설득했다.



결론은 내 손맛을 믿지 않는 S와 함께 모나리자 닭백숙을 먹으러 갔다. 카레가 약간 들어간 것 같은데 아마도 닭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넣은 모양이다. 약간은 누런 닭백숙은 S 말대로 최고였다. 그리고 나는 닭백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라면을 시켰다.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이다. 외국 나가도 라면을 사 먹는다. 한국 라면이 없을 땐 베트남 라면이 좋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베트남 라면. 동남아 라면은 면이 가늘고 양이 적어 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접시 뚜껑으로 덮어두면 야들야들 면이 익는다. 유럽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파게티 만들어 먹는 외국 여행자들 사이에선 나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든든한 라면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한국 라면을 먹는게 어렵지 않다. 스타 레스토랑의 커리 정식에 물릴 때 가끔 모나리자에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은 항상 옳았다.



K는 디저리두 연주가가 될거라고 했다. 호주에 가서 애보리 진 원주민 밑에서 배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S와 나는 기계적인 반응을 했다. 이에 개의치 않고 K는 디저리두 연주가는 전 세계에 얼마 없다며, 그 이유가 자궁을 파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K는 어쩔 수 없이 임신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다 있나. 실행도 하기 전에 이미 결론 나버린 인생이란... 남자친구에게 그 말을 했지만 무반응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인도 여행이 끝나면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일단 우리는 자궁 파열과 관련된 그 말의 신빙성을 따지기 전에, 디저리두 소리에 놀랐다. 부르릉 내는 소리가 과연 연주라는 표현을 쓸 만한 악기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컸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여행이라 우리는 MP3나 CDP를 가지고 다녔다. K는 자신의 CDP에서 디저리두 음악을 들려줬다. 디저리두는 인간의 소음을 닮았다. 커졌다 작아졌다 멜로디가 있든 듯 없는 묘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디저리두만큼은 연주자의 능력치가 배 이상 중요한 것 같았다고.



사실 K의 연주는 우리의 귀를 괴롭혔다. 밖에서 싸우는 인도 현지인들의 소리에 오히려 귀가 이끌렸다. 그게 더 재밌다. 못 알아든 말로 싸우는데도 말이다. 외국 나가서도 제일 재밌는 게 쌈 구경이란 걸 깨닫는다.



바라나시 현지인처럼 살던 인도의 세 얼간이 여행자가 갑자기 바라나시를 뜨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그날. 우리는 뒤로 안 돌아보고 그 다음날 콜카타로 떠났다. 왜 하필 콜카타는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일상이 익숙해지자 주저앉기 싫었던 느낌이었을까. K는 펀자비를 맞추러 가다 치수를 재는 아저씨의 성추행에 기겁하며 바라나시를 뜨자고 했다. 그날도 나는 스타 레스토랑에서 커리 정식을 먹는데 갑자기 파리 시체를 발견해버렸다. 파리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고나 할까. S는 이날도 조리를 신다가 소똥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한 번 더 허리를 삐긋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바라나시를 뜨기로 하고 바로 표를 샀다.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바라나시의 마법이 깨졌다는 것이다. 이제 떠야 한다. 달력을 보니 근 한 달 동안 현지인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 다른 곳에서 다른 여행자 행색을 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기차로 10시간 걸려 우리는 콜카타 하우 라역에 도착했다. 나에게도 문명이 찾아온 느낌이다. 이곳은 바라나시와는 비교 불가한 대도시이다. 이제 여행자 거리인 서더 스트릿을 찾아가야 한다. 걷다가 길거리 포차에서 초면을 사 먹었다.



이런! 이곳에서도 파리를 만나다니. 면과 채소와 파리를 같이 볶았는데 맛까지 좋다니. 게다가 나의 접시는 거의 비워진 상태. 나의 튼튼한 장에 감사하며 자리를 떴다. 콜카타, 너도 만만치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