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면 실패하지 않는다?!
자가발전하다 사그러진 실패라는 꽃 한 송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게임 방송에서 일하던 있던 시절, 당시 한 피디가 나에게 게임 시나리오 제안을 한 것이다. 아는 게임 홍보사 형인데 지인이 온라인 게임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찾는다고 했다. 나는 지긋지긋한 게임 대본을 쓰는 일에 지쳐있던 차, 그 제안을 수락했다. 함께 일할 작가가 있으면, 같이 일해도 좋다고 했던 바, 당시 잡지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친구와도 함께 일하게 됐다.
첫날부터 기이했다. 강남역 뒷골목에 있던 사무실은 고요했다. 직원도 몇몇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회사인지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렀다. 그날 우리는 두 명의 40대 초반 덕후와 미팅을 했다. 그들도 어디서 제안을 받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일을 하게 된 친구는 마치 정규직이라도 된 듯 사무실에 방석과 컵, 파일 등을 갖다 놨다. 자신의 자리를 인증이라도 하듯 그 자체를 즐겼다.
두 명의 덕후와 친구까지 합쳐 총 4명이 모여 게임 시나리오 회의를 시작했다. 최지우가 일본에서 지우히메라 불리며 인기를 구가했던 시절 출연한 영화를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 아시아 전역에 서비스를 하겠다는 방대한 계획 하에 우리는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
물론, 시나리오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내용들은 식상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었다. 고착된 틀에 맞춰 예견된 얘기들만 가득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 최선을 다해 얘기를 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열심히 마인드맵처럼 보드판에 그려가며 일을 했다. 나는 대표의 인상부터가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 일 자체에서 될 성싶은 떡잎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기본적으로 당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기저에 깔고 살았다. 두 번째, 실제로 이 방대한 사업을 이끌기엔 대표의 자본력이 부족해 보였다는 것. 어디서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뭐 이런 뉘앙스를 듣고 나니 불안했다. 워낙에 게임판이라는 게 잘 뒤집히기 십상이라 하루아침에 문 닫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투자라는 게 진짜 돈이 들어와야 성립되는 것이기에 입으로만 왔다갔다한 돈은 돈이 아니다.
한 달 정도 걸려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대략이었지만, 덕후들도 어느 정도 만족했다.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리고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월급이 나와야 할 시점이었다. 그날 아침, 출근하지 마자 사무실은 간 밤에 도둑이라도 맞은 듯 뒤숭숭했다.
" 그냥 튀었어, 전화도 안 받아"
경리 쪽 업무를 보던 직원의 말에 나는 사기를 당한 것임을 알게 됐다. 나는 담담하게 친구에게 얘기했다. 친구는 절망했다. 울먹였다. 사무실에 자신이 남겨둔 증표를 찾으러 왔는데 아끼던 컵이 안 보인다며 절망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는지, 그 이유가 자신의 간당간당한 통장 잔고 때문이었으며, 이것이 나락에서 벗어나게 해 줄 동아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절망의 최대치를 찍은 자신의 상태를 나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화살받이마냥 친구의 푸념을 다 받아들였다. 하지만 온전히 받아주진 못했다. 다 듣고 나서 한 마디했다.
"돈 떼어먹은 일이 처음이니?"
친구는 버럭 하면서 자신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떼어먹기 직전까진 있었도 떼어먹진 않았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리는 생에 처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실패의 영역 중 사기는 뼈저린 후회와 아픔만을 남긴다. 그런데도 나는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살다 보면 이런 일 부지기수로 많아"
당시 나는 친구에게 절대 위로가 되지 못할 말들을, 나아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말들을 하지 않았다. 일하는 내내 친구로인해 불편했던 나의 심정이 이런 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친구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불편했다. 적당히 좀 하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무슨 에너지를 이렇게 다 쏟아부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이 일을 받아들였다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친구가 불편했을까?
먼저 나는 다른 일을 찾았고, 그것이 글을 쓰는 창작과 더 깊은 인연이 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나의 희망사항이다. 막연하게 상상해온 그런 일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덥석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회사에서 작업을 했어도 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비 없이 너무 큰 제안은 오히려 나를 집어삼킨다. 그 기운에 쪼글라들어 나는 기도 제대로 한번 펴지 못한 채 시들어갔을 것이다. 여하튼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의 데뷔는 명백한 실패를 안겨줬다.
그렇다면 친구의 행동이 왜 불편했을까? 친구의 상상력과 친화력, 뛰어난 언변은 주변을 사로잡았다. 아무도 불평 가득한 나와는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친구의 태도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도 나는 외면했다. 나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보다 한수 아래라는걸. 덕후력을 따져볼 때 대학 시절, 나는 최고치를 못 찍었지만 중상 레벨은 됐다. 친구와 별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비슷비슷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5년째 하고 난 후, 달라졌다. 친구의 창장력은 상위 레벨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하위권으로 추락 중이었다.
나와 친구의 실력은 점점 더 큰 차이를 보였다. 일을 하는 내내 나에게 찾아온 열등감의 민낯을 확인했다. 그러다 우린 둘다 결과적으로 게임 작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일상의 도피를 계획했고. 이 계획은 단기간에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실패하고, 친구를 실패하지 않았다. , 친구에게 그 일은 실패로만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상상의 나래를 점점 더 펼치게 되었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 묵묵히 목표로한 외길을 걸었다. 일을 일만으로 바라볼 수 없던 나와 일 그 자체를 즐기던 친구. 결과적으로 우리 둘 다 겉으론 실패했지만, 친구는 친구의 가능성을 보았고, 나는 나의 열등감을 확인했다.
패배감과 열등감을 꽁꽁 끌어앉은채 한 달 만에 나는 인도로 떠났다. 왜 인도였나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는 최악의 상태를 온몸으로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고생의 밑바닥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란 존재가 어느 정도 되는 그릇인지 확인하기에는 날 것 같은 인도가 제격이다 싶었다.
다행인 건 여행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행이 실패할 이유가 있을까? 자잘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또 다른 길을 바로바로 확인하는 여행은 실패가 없다. 진정한 여행의 실패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행위 때문에 발생한다. 움직이면 실패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경험도 할 뻔했지만, 그런대로 잘 버텼다. 결국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의 일상은 붕괴됐다. 20대 나의 청춘의 1기가 그렇게 저물었다. 하지만 기회는 뒷문으로 온다고 했던가. 여행 이후, 나의 기존 질서는 대부분 붕괴됐지만, 일복이 넘쳐나 일에만 열중하는 시기를 보냈다. 불운과 액운과 그런 암흑의 기운들이 버무려진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좋고 나쁨의 판단이 불과한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고만고만한 글로 먹고사는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친구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있었다. 친구가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촬영차 있던 이탈리아에서 듣게 됐다. 피렌체 가죽 상점에서 소가죽 노트에 친구 이름을 새겼다. 어찌 됐든 이건 무조건 축하해줘야 하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물리적인 그 실패가 친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인정 안할 것 같다) 한 쪽문이 닫히면 한 쪽문이 열리는 것처럼, 아팠지만 견뎌야 했던 시절을 지나야한다. 나 역시 어둠의 터널 속에서 몇년째 배회 중이다. 그리고 지금 나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이것은 분명 좋은 징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