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시간을 지배한다

매일 새벽, 나만의 흐름 속으로

by 델리러브


문을 연다. 그날의 기류에 따라 바람은 이 앞에서 멈추거나, 간헐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있는 이곳은 안방과 화장실 사이 붙박이장 통로이다. 이곳에서 글을 쓴 지 4개월째에 접어든다. 작은 상을 펴고, 노트북을 올려놓자마자 시작되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만의 흐름이 생긴지도 4개월째다. 방 저편 한쪽에선 두 아이가 자고 있다. 글을 쓰다 가끔 둘째가 칭얼댄다. 바로 달려와 아이를 달래기에 딱 좋은 거리다.



원래는 부엌에 놓은 6인용 테이블에서 글을 썼다. 나의 키친 테이블 시간이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 간혹 남편을 마주했다. 어느 순간,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게 불편해졌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숨어있기 좋은 곳을 찾았다. 대한민국 평균적인 평수와 구조 속에선 옛날 다락방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결국 나는 이곳으로 흘러왔다. 홀로 머물기엔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 공간도 좁아 집중하기에 좋다.



무엇보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좋다. 새벽이라 더 조용하다. 마치 밀폐용기 안에 들어간 기분이다. 그곳에선 난 무균상태가 된다. 어떤 반응에도 예민해진다. 촉수 끝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물들에 감정을 심는다. 어쩌면 감정의 발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게 말을 건다. 온갖 사물들과 시간들과 어떤 사건들이 다시 내게 와서 말을 건다. 나는 좋음과 나쁨, 슬픔과 기쁨, 고통과 평온 그 사이, 관조자가 되어 바라본다. 이곳은 바로 나의 세계이다. 이곳에산 내가 세상의 주인이다.



그 어떤 밀접촉자를 찾을 수 없다. 이 용기 안에 나와 가장 맞닿아있는 자는 바로 나 자신. 나의 나와 내가 가장 가깝게 등을 맞대고서 숨을 쉰다. 숨은 고르지 않다. 이곳은 지금 내 생의 연대기 중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다. 아프다. 지나온 모든 것들이 상처가 된다.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평온해진다. 울고 나니 이 밀폐된 공간은 고요만 흐른다. 누구도 나의 감정을 확인할 수 없다. 매일 새벽에 깨어 나를 보면, 어느 순간 홀로 서서 나의 감장을 헤아린다.



오늘도 마음 이론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마음을 감지한다. 뇌는 외부 세계의 모형을 구축하듯이 마음의 모형도 만든다.

우리의 사회생활 무기고가 들어있는 중요한 이 기술을 "마음 이론"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며 어떤 모의를 하는지

그들이 앞에 없어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 윌 스토 저서 "이야기의 탄생" 중 발췌


지난 하루, 아이의 마음을,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짐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은 사실 20퍼센트 정도 맞고, 친구나 연인 등 가까운 사이는 35퍼센트 정도 맞는다고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솔직히 내가 나를 모르는데, 정말 남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저 짐작만 하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나의 경험치도 있다. 내가 아팠으니 너의 마음도 편친 않을 거야, 내가 좋았으니 너에게도 긍정으로 다가오길... 이런 것들을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다는 아니더라고 일부의 퍼즐만 맞더라고 그게 어딘가. 서로가 서로에게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행위는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무언의 힘이 되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은 추억이다. 나는 여전히 아주 오래전, 안나푸르나를 등정했던 기억을 가끔 현재 시간으로 끄집어낸다. 척박한 현실에서 나를 웃게 만드는 시간이 된다. 안나푸르나를 말로 타고 달리던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 밀폐 용기 안에서 매일 새벽, 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기록한다. 유의미한 기록의 시간으로 나의 한 시절을 장식한다. 오래도록 내 안의 나를 비쳐보는 시간은 이 공간 안에 흐른다. 결국 공간이 시간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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