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았나

장소와 추억의 연관관계에 대하여

by 델리러브


우리곱창의 인테리어는 평범하다 못해 별게 없었다. 탁자와 의자가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었고, 브랜드 소주나 맥주 포스터가 의례적으로 붙어있는 동네 술집 분위기였다. 학교 정문 바로 앞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안쪽으로 들어자면, 건물 1층에 있던 술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연대라는 감정과 이해불가한 공감대 형성, 또는 알코올이 주는 어떤 긍정의 효과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 반복적으로 느꼈던 감정은 충만함이다. 여고생 정서에 둘러싸인 그룹 안에서 내가 느끼지 못한 파괴적인 감성 같은 것이다. 극적인 파괴는 극적인 만족감과 평행이론을 이룬다. 그때 만난 k와 s의 스토리는 나를 귀 기울이게 했다. 특히 s의 연애담이라든가 k의 현학적인 철학사 강의는 당시에나 대화의 주제로 쓰일 수 있는 소재 꺼리들이다. 게다가 문학에 대한 진지한 담론 역시 다른 곳에서는 끄집어낼 수 없는 대화주제이다.



대화를 할 땐 일단 미끼를 잘 던져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걸 잘 받아먹어야 한다. 이런 핑퐁 게임에는 또 관중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대화 극장에 리액션을 해줄 관중들이 필요했다. k의 학회 후배나 우리 과 후배들 또는 과 선배들이 제물로 받쳐졌다. 어느 정도 관중이 채워지면, 제우스 신전에 제를 올리듯 우리는 밤마다 우리곱창에서 제를 올렸다. 제사상엔 소주와 홍합탕. 기본 안주인 오이와 당근이었지만, 풍족했다. 왜냐하면 다양한 의식이 펼쳐졌고, 우리 셋 중에 한 명씩 돌아가며 제사장이 되었으니까. s가 제사장이었을 땐 테이블에서 올라가 남도의 걸쭉한 판소리를 연상케하는 '청계전 8가'가 울려 퍼졌다. (천지인은 록밴드인데 s버전은 트로트에 가깝다)



우리곱창 기저에는 분명 '청계천 8가'가 있었다. 천지인의 민중가요 중에 여전히 회자되는 이 노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빈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다. 드라마 ost로도 쓰였다니 놀랄 따름이다. 물론 난 천지인 버전이 좋다. 사실 그보다 더 좋은 건 s의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IWLYozHiQ



자본에 대한 과한 욕망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시기이다. 당시 우리 과에는 유명한 시트콤 작가가 편입을 했다. 대학 졸업장이 없던 그분은 중태 했던 지난 시절을 만회하기 위해 우리 과로 대학 4학년에 편입했다. 어찌보먄 예능 작가로도 유명했던 그분에게 잘만 보이면, 방송 작가로 어렵지 않게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출연에 대해 동기들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각자가 마이웨이를 걷는 예술 종자들은 자본가의 등장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 부분이 여전히 놀랍고도 대단하다 싶었다. 연대가 불가능했던 동기들은 각자 마음속에 어떤 심지를 굳히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k는 자신만의 친화력으로 그분과 친해졌다. 그분 역시 과의 마당발인 k의 인맥이 필요했다. k는 그분과 친해졌고 일밤에 유승준과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나는 못 봤지만, 당시 내가 속한 여고생 마인드 부류 멤버 중 한 명이 깜짝 놀랐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k는 방송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저 다른 세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는 와중에 그분과 k도 연락이 끊겼다. 오히려 우리 과 공주파들이 그분과 친해졌다. 그중 한 명은 소설 창작 시간, 본인 발표 때가 되면 블랙 롱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티셔츠와 청바지, 베이직한 점퍼를 주로 입던 내 무리들은 과한 프릴 달린 드레스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그 옷을 입으면 몇 미터 전방에서도 그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 일반 대학생들과는 다른 실루엣으로 캠퍼스와 강의실을 누비던 그녀는 어쩜 관심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동기라는 애들은 각자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있어 자신의 존재를 들춰봐주지 않음에 대한 항거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물론 확인된 바는 없다.



20년이 지난 후, 나는 드레스를 입는 그녀를 tv 화면으로 다시 만났다. 잘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 중이었다. 더 놀라운 건 연말 연예대상 때 방송작가 상을 수상한 것이다. 단출한 강의실 탁자에 선 그녀가 아닌, 화려한 무대 위 마이크에서 소감을 말하는 그녀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다. 20년 전으로 복기해보니 그녀는 유명한 방송 작가라는 그분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졸업 후, 들어가기 어렵다는 본사 예능국으로 취업이 됐고, 그 뒤 한 우물을 판 결과 상까지 받은 쾌거를 이룩했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일관된 목표가 있었야 함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녀의 수상은 내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우리가 더 이상 우리곱창을 떠올리지 않게 된 어느 순간, 그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다시 우리곱창 시절로 옮겨놨다. 그녀가 그분과 친분을 쌓는 동안, 우리가 연대했던 건 소주와 맥주라는 알코올의 힘이었고, 결의 장소는 변함없이 우리곱창이었다. 우리의 우정은 세월에 따라 적당히 균열도 가도, 멀어지기도 하면서, 적당함과 멀어짐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녀는 상이라는 유형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세월의 수순에 따라 우리곱창도 없어지고, 우리의 우정도 적당히 흐릿해졌는데 그녀의 트로피만은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제 무형의 우정이 여전히 힘이 세다라고는 말 못 하겠다. 우정은 각자의 가정을 설립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사실 이미 연애사에서 우정은 적당히 소외된 감정 상태였다. 우리곱창은 분명 우정과 연대와 삶의 지조, 나아갈 방향에 대한 꿈을 실은 공간이었는데 이제 우리에겐 그런 장소가 없다. 장소가 없어졌기에 우리도 각자의 길 위에서 적당히 방향을 잡고 사는 걸까? 아니면 각자의 길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다보니 우리만의 장소를 잃어버린 것일까.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상태는 육아와 밥벌이, 여전히 꾸는 꿈과 그 꿈을 이룬 친구를 바라보는, 여러 감정 상태가 뒤섞인 정체불명의 폭탄주 같은 상태이다.



1년에 한 번씩 만날 경우, 누군가의 집이 특별한 장소로 제공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사를 가버리면, 특별한 장소라는 꿈은 붕괴된다. 여러 차례 붕괴를 맞으면서 지금의 장소에 각자 발목이 묶여버렸다. 더는 다가갈 수도, 더는 멀어질 수도 없는 그 상태에서 정물화처럼 서로에게 풍경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 각자의 거실에는 지난 시절을 담은 추억의 그림이 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이 구축된 시발점이 된 장소가 우리에겐 우리곱창이었다.



졸업 후, 사회라는 영역으로 확장된 우리들은 서로의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교통의 결절지 한곳을 찜했다. 그곳은 바로 종로! 매년 생일 때면 어김없이 조촐한 생일 파티를 열었던 인사동의 '조각하늘'이나 종각역의 '더맛존'도 2000대 초반, 우리의 감성을 담은 특별한 장소이다. 그때 우리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사회생활의 고단함은 500cc 잔에 담아 단숨에 삼켜버렸다. 다음날 토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 밤, 우리는 맥주를 마셨고, 가끔 고된 출근바스에 몸을 싣기도 했다. 나아가 언젠가 자유로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오면, 함께 반드시 이스탄불(이곳에서 s의 기억은 지분이 없다)로 떠나자고 했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과 함께, 다시 새로운 장소로 만들어가는 작업은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란 인간이 추억을 먹고살기 때문이며, 내 기억 속에서 기생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 삶을 이완시키는 특별한 작업이기도 하다.



덧불이는 글!


2013년 2월 어느 날, 종로 육미 집이 불탔다. 정종 대포 한 잔의 허세를 안겨주던 육미 집. 방화범의 소행이라고 밝혔던 것 같은데 아쉽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육미라는 간판으로 을지로 쪽에 술집이 하나 있던데 같은 주인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허나, 메뉴 구성이 비슷해 짐작 건데 재영업을 하는 모양이다. 언제 k와 s가 자유로울 때 꼭 한 번 가봐야겠다.(사실 s의 기억은 이곳에도 지분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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