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극과 극에 대하여
간간히 취한 밤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날이 더워지니 맥주가 생각났고, 지금 나는 약간 알딸딸하다. 술을 마시야만 작가가 되는줄 알았던 시절이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가는 으례 술을 잘 마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술과 그리 가깝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오히려 술이 방해될 수가 있으며, 글쓰는 루틴을 유지하는데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 소설가가 된 친구를 봐도 오히려 술이 줄어거나 거의 마시지 않는다. 체력 관리를 위해서 알코올은 멀리해도 괜찮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채 글을 써야한다. 꾸준히, 매일, 쉬지 않고. 하지만 문창과 아이들은 그 진실을 간과했다.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술과 함께 보냈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했고, 맥주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품었던 시절이다. 대학교 때 우리가 자주 가던 술집 이름은 '우리 곱창'이다. 우리 곱창에선 한 번도 곱창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홍합탕 하나 시켜놓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면서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모든 행위를 했다. 남도 출신 친구는 우리 곱창 테이블 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나는 졸다가 테이블에 여러번 머리를 찍기도 했고, 3명으로 시작한 술자리가10명 이상 늘어나, 어느 날은 우리과 동창회라고해도 무방할 정도도 익숙한 얼굴들이 가게를 가득 채웠다.
그날도 우리는 술을 마셨다. 과 친구들 중에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애들과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나 다들 거하게 취한 상태였다. 막차 시간에 맞춰 신촌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가 급정거를 하거나 코너를 돌 때마다 또르르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술에 취한 우리는 까르르 웃어댔다. 늦은 시각에 학교 앞에서 탄 차라 대부분 같은 술자리를 했던 친구들이었다. 까르르 웃을 때마다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난건지,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까르르 웃었던건지 잘은 모른다. 돌 굴러가는 소리의 정체를 알았을 때 우리의 까르르 소리는 더 커졌고, 다들 일어섰다. 운전기사님은 위험하니 학생들 앉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바닥에서 친구가 집은건 바로 소라껍데기였다.
우리는 눈물이 나도록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버스 정류장 앞 노점상에 산 소라. 작은 소라 껍데기를 입으로 쪽 빨아 먹다 버스가 오자 올라탔는데 술 취한 우리들은 도덕성을 상실한채 소라껍데기를 버스 바닥에 수시로 흘린 것이다. 누가 먹은 소라껍데기인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모두 공범이었으니까. 공범들이 우르르 버스에 내리자 다시 버스는 고요해졌을 것이다. 우리는 신촌에서 더 마셔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다 각자 집으로 갔다. 소라 껍데기를 집어다 다시 종이컵에 넣고 내렸는데 그 일부는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른다. 어떤 하수구에 빠져 바로 운명했을지도 모르나 분명한건 우린 너무 취해있었다는 것. 눈물과 웃움이 범벅된 어느 밤의 기억이다.
어떤 소리들과 어떤 기억들이 어떤 시간을 거쳐 내 머릿속에서 새로운 기억으로 복기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미 청춘의 시간을 지나왔고, 나는 진심 나이가 들었다. 슬플 때보다 행복할 때 눈물이 난다던 어떤 이의 말을 듣다가 요새 언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되뇌인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날들이 최근 나에게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 너무 슬프면 오히려 실소를 한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감정 상태가 어느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쏠리면, 우리는 그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감정의 균형과 삶의 조화는 우리 스스로 조절하고 또 만들어가고 있다, 무의식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