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추위

Beethoven - String Quartet - Cavatina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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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부터 날이 다시 추워졌습니다. 따뜻한 날이라 예상해서 옷을 가볍게 입었는데, 바람이 너무 차가웠습니다.


차가운 밤하늘의 별은 또렷하게 보였고, 그 또렷함 때문에 오히려 날이 더 추워 보였습니다. 스터디카페로 들어와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카페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늘은 이 이야기를 써볼까” 하며 메모장에 글을 썼습니다. 한 시간 정도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작위적이고 감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 지웠습니다.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신간이 무엇이 나왔는지 훑고 책소개를 읽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오늘 쓸 주제가 있는 것 같았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 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겨, 찬 공기를 덜 맞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귀가했습니다. 후다닥 씻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니 엄청나게 춥습니다. 봄이 오려다가 겨울이 시샘을 한 모양입니다. 마치 “나 아직 안 떠났어”라고 말하듯이 느껴집니다. 대기 질이 안 좋으니 마스크를 쓰라는 기사도 보이고, 한파주의보도 보입니다. 평소보다 짧게 산책하고 서둘러 들어왔습니다.


주말 내내 계속 추울 모양입니다. 오늘은 다시 끼어입고 일터로 나섰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립니다. 도착한 버스에 서둘러 올라타는 사람들, 추운 날 아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왼손으로 전화를 하다가 추운지 오른손으로 전화를 옮기며 통화하는 사람까지, 뜻밖의 추위에 놀란 표정들입니다.


Beethoven - String Quartet Op. 130 - Cava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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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을 들으면 겨울날 강원도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걷는 느낌입니다. 사각사각한 눈길을 밟으며 흰 자작나무를 양옆에 두고 그 사이를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 곡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현악사중주 제13번 내림나장조 Op.1305악장이고,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Cavatina(카바티나)’입니다. 악장 표기는 Adagio molto espressivo, 조성은 내림마장조(E♭ major)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youtu.be/yi1KZGIbpVw?si=dF23fZSOo30HsCAX

Op.130은 베토벤의 이른바 ‘후기 현악사중주’에 속합니다. 1825년 무렵부터 작업이 진행되어 1826년 11월경 완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베토벤은 청력 문제로 거의 듣지 못한 상태였고, 건강도 크게 흔들리던 때였습니다. 작품은 러시아의 귀족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니콜라이 갈리친(Nikolai Galitzin)에게 헌정되었고, 1826년 3월에 슈판치히 사중주단(Schuppanzigh Quartet)이 초연했습니다.


Op.130을 말할 때 자주 함께 언급되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래 이 사중주의 마지막 악장은 대푸가(Grande Fugue / Große Fuge)였는데, 초연 뒤 반응이 복잡했고 출판사 쪽의 요구도 겹치면서 베토벤이 새로운 종결 악장을 따로 작곡해 바꾸게 됩니다. 대푸가는 이후 Op.133으로 별도 출판됩니다. 이런 ‘바꾸어 끼운 결말’의 사정까지 포함해서 보면, Op.130은 단순히 “아름답다”로만 정리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Cavatina에는 베토벤 자필 악보에 “beklemmt”라는 독일어 메모가 적혀 있는 구간이 소개되곤 합니다. 이 단어는 대략 ‘가슴이 답답한’, ‘숨이 막히는 듯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음악이 평온하게 흘러가다가도, 어느 짧은 구간에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표정으로 바뀌는 이유를 이 메모가 암시한다고들 말합니다.


또 “베토벤이 이 악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자료마다 사실이 달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Cavatina가 단순히 ‘조용한 악장’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어떤 막힘과 떨림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악장은 시작부터 제1바이올린의 선율이 길게 주도합니다. 첫 소리 자체가 빠르거나 화려하지 않고, 천천히 숨을 고르듯 들어옵니다. 그 선율을 나머지 악기들이 전면에서 작은 소리로 받쳐 바이올린의 연주 음이 더 잘 들리게 만듭니다.


멜로디는 선율이 멀리 뛰지 않고 차분하게 이어지며, 조금 느리게 연주됩니다. 그래서 듣는 이는 음악을 감상하며 사색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겨울길에서도 바람이 잠깐 세졌다가 다시 잦아드는 것처럼, 변화가 생겼다가 다시 정돈되는 느낌입니다.


현악 사중주는 서로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완성합니다. 제1바이올린이 연주를 시작해 나아가면 비올라와 첼로는 낮은 음으로 들리는 듯 마는 듯 배경이 되어 줍니다. 제2바이올린은 중간 중간 함께 하며 곡의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래서 이 악장은 크게 드라마를 만드는 음악이라기보다, 조용히 마음을 안정시키는 듯 합니다.


이 곡은 추운 겨울 장작불 앞에서 불멍하며 명상하기 좋은 음악인 것 같습니다. 이 음악이 나를 조용한 공간으로 이끌어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도 줍니다. 소리가 크지 않은데도, 마음이 한 곳에 오래 머뭅니다. 다만 그 고요함이 단순히 편안하기만 한 고요함이라기 보다는 어느 순간에는 가슴 한쪽이 잠깐 막히는 듯한 멍한 표정(‘beklemmt’)이 스치듯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오늘 아침같은 다시 돌아온 추위에는 마음도 자꾸 움츠러듭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말수도 줄어듭니다. 이런 날에 이 Cavatina는 천천히 걷게 하고, 조용히 숨을 고르게 하면서 사색하는 것을 권하는 것 같습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걷는 상상을 한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지 않을까요? 나를 돌아보되, 나를 다그치지 않는 시간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리하지 않고 따뜻하게 보내길 바랍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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