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퇴직 후 1년의 기록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정년이 되어서든 퇴직을 하게 되면 당혹스러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나는 먼저 생활의 절차부터 새로 마주하게 됩니다. 은행에 가서 통장을 새로 개설하는 일도 생기고, 국민연금과 지역가입자로 바뀐 건강보험료를 자동이체로 다시 설정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행정적인 일들보다, 같이 근무했던 동료나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더 당황스럽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는 표식이었던 명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임원까지 하다가 퇴직했고, 그 이후의 만남에서는 명함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최형은 요즘 무슨 일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답이 선뜻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순간이 잦아지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에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면 이름, 연락처, 하는 일까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인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책을 읽고, 그동안 못 가본 곳을 다니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하곤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아직 재취업을 못 했구나”라고 생각하는 듯하고, 걱정 섞인 눈빛을 보냅니다. 그 눈빛이 악의가 아니라 동정으로 비추어질 때, 나는 더 난감해집니다. 나는 그 순간에 명함이 사라진 것이 단지 종이 한 장이 없어진 일이 아니라, 나를 소개하는 유일한 방식이 사라진 것을 체감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예전에 개인 사업을 제작했던 명함을 100장 주문해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개인회사명으로, 직책은 CEO로 적었습니다. 다만 나는 이 사업을 실제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는 홍보대행 일을 하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바꿨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은 상대는 표정이 한결 편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나는 그 편안함이 관계에서 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나는 내 일을 찾아 제대로 일하면서 떳떳한 명함을 건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속히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도 함께 느낍니다.
생애 ‘첫 명함’의 기억
내가 명함을 ‘부속품’처럼 여기게 된 시작은 1992년의 첫 출근에 있습니다. 나는 1992년 입사했고, 6주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설날 연휴가 지나 배치된 부서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책상은 아주 깨끗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전화기 한 대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각 부서마다 서무를 보던 여직원이 있었고, 그분이 무심히 회사 사규, 부서 내 비상연락망, 조직도, 각 팀과 직원들의 업무분장표, 그리고 볼펜·연필·지우개·칼 같은 사무용품을 책상 위에 놓아주었습니다. 나는 책상 위에 물건들을 보며 ‘회사 생활의 시작이구나’ 하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장이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부 선임과장이 나를 잽싸게 데리고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학력을 확인하고, 결혼여부를 확인한 다음,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듣고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어서 선임과장은 이리저리 다른 부서까지 부장, 과장, 직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오전이 그렇게 지나가고, 내가 속한 부서 과장이 나와 선배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과장은 식사를 하면서 회사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회장님을 뵐 때 행동요령은 이렇다, 임원·부장·과장에게 인사하고 보고하는 방식은 이렇다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내 책상 위에 명함이 두 통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난생처음 회사 명함을 받았습니다. 명함 통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내 이름이 조직 안에서 어떤 자리를 갖게 된다는 소속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첫 명함을 보관하고 계셨습니다. 이후 내 명함이 바뀔 때마다 아버지는 그것도 함께 보관하셨습니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그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은 그대로인데, 회사명과 부서명과 직책이 바뀐 명함이 차곡차곡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 묶음이 단순한 종이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지켜본 내 시간의 흔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이해합니다.
내 첫 명함에는 “투자기획부 기획 3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베트남어를 전공한 나는 당시 베트남 투자사업 기획을 하는 부서로 배치된 것입니다. 그 이후 나는 친구를 만나도, 업무 관련 외부 관계자를 만나도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주)대우, (주)선경, 삼성물산 등과 관련된 자리에서도 나는 명함을 먼저 꺼냈습니다. 그때부터 명함은 내게 ‘소중한 부속품’이 됐습니다. 나는 명함을 내밀며 내 역할을 설명했고, 상대는 그 한 장으로 나를 이해했습니다.
퇴직 이후, 아쉬운 '명함'
퇴직 이후에도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 알고 지낸 기자, 업체 사람, 지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명함의 부재가 아쉬웠습니다. 나는 퇴직 전에 회사 명함을 좀 더 만들어서 가지고 나올걸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퇴직을 부정하는 행동처럼 느껴져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자책이 “이제 나는 무엇이라고 소개해야 하지?”라는 것을 얄팍한 거짓으로 모면하기 위한 부끄러운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퇴직을 한다면 직장이 없어도 명함 한 통은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당분간 여행하는 사람” 같은 문구가 조금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지금의 생활을 한 줄로라도 적어두면 사람을 만날 때 어색함이 없어집니다. 서로 명함을 보며 웃으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명함을 건네는 순간 조금 덜 위축될 것이고, 상대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아도 되니, 명함 하나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을 권합니다.
다만 나는 명함을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명함은 시작을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결국 남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멋진 퇴직 이후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는 베트남어를 전공했습니다. 1995년 고 김영삼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때 손명순 여사를 통역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 나는 장관, 부총리,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을 위해 통역을 했습니다. 베트남어 통역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 관련 통역 지원도 나간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베트남어 통역이 가능한 현지 전문가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30년 가까이 기업홍보 업무를 하며 언론과 소통해 왔습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대응 홍보를 고민하고 실행해 온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수많은 보도자료를 쓰고 다듬으며, 조직이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우고 반복해 왔습니다. 내가 지금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시간이 내게 남긴 습관과 훈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서, 영화, 음악, 여행, 공연을 좋아합니다.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서 콘서트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좋아해 독학도 했습니다.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과 2018년 한국경제신문이 하노이에서 개최한 베트남 인재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했고, 2017년 매일경제신문의 포럼, 2018년 화성시 여성기업인협회 하노이 포럼 등도 진행했습니다. 나는 행사의 주제를 설정하고 내용을 정하여 주제연설, 연사 등 전문가들을 연결하며, 참석자들을 모집하는 일을 해 온 경험을 갖췄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동안 많은 경험과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방황 중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지 정한 것 같다가도, 구체적인 단계에 들어가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곤 합니다. 나는 기획을 한다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지만, 많은 날은 음악을 듣고 유튜브를 보거나 책만 보다가 하루를 보냅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딱 맞지 않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이로 인해 방황을 길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나는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해보기도 하지만, 막상 다음 단계로 옮기려 하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춥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벌써 1년이 됐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전부 아무 가차 없이 보낸 시간이라고만 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조직이 대신 써주던 ‘소개 문장’을 이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것을 서둘러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거짓 없이, 과장 없이, 내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나만의 업(業)을 만들고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일에 자부심을 갖는 명함을 갖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큰돈을 벌겠다거나 큰 역할을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비용을 벌면서, 내가 행복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을 원하게 됐습니다.
나는 이 일을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이름 옆에 붙일 한 줄이, 나를 과장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게. 지금 이 순간도 '퇴직 이후에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