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besleid - Acoustic Cafe

[아침음악] 흐린 아침,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의 눈물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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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어제보다 무척 포근해졌다. 이제 봄이 오려는가 보다. 접이 우산을 하나 챙겨서 나가야겠다.


어젠 스노보드에서 첫 메달이 나왔다. 2014년부터 4번째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37살의 김상겸 선수가 은메달을 땄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는지, 유튜브나 점심에 찾는 식당의 TV에도 경기 장면을 볼 수가 없다.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하면서 동계올림픽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상겸 선수가 8강전에서 이번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의 개최국 이탈리아 롤란드 피슈날러 선수를 따돌린 것은 대회 최고의 이변으로 소개된다. 16강전과 8강전에서 상대 선수가 모두 완주하지 못하는 행운도 섞였지만, 김상겸 선수는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으로 당당히 결승 진출과 은메달을 땄다. 김상겸 선수가 37세로 운동선수로는 고령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결승에서 맞붙어 금메달을 목에 건 오스트리아 베냐민 카를 선수는 40세이며, 8강에서 격돌했던 이탈리아의 피슈날러 선수는 45세다.


4번의 올림픽 도전 끝에 메달을 딴 김상겸 선수는 그동안 비인기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자 막노동을 해야 했고, 서른 살이 넘어서야 실업팀에 들어가는 등 빛을 볼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김상겸 선수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장면에서 그간의 설움과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참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세월을 보낸 김상겸 선수에게 응원을 보낸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종목의 메달을 확실히 딸 것으로 예상된 선수가 있다는 점이다. 2018 평창 대회 은메달리스트인 ‘배추보이’ 이상호 선수(넥센윈가드)다. 이상호 선수는 불운으로 토너먼트 첫판에서 탈락했다.


올림픽은 이렇게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그동안 묵혀 있던 훈훈한 이야기도 터져 나온다. 경기 결과뿐 아니라 크고 작은 미담도 쏟아지는 올림픽인데, 실시간으로 경기를 볼 수 없고 감격스러운 장면을 함께 못해 아쉽다. 중계권에 대한 구조적 문제라는데, 그것도 결국 ‘함께 보는 시간’이 사라진 문제다.


Liebesleid - Acoustic Cafe


https://youtu.be/HZTHxRGjh0E?si=xAjeYztmZ_VhugRL


「Liebesleid」는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Fritz Kreisler가 1910년 무렵 발표한 살롱음악입니다. 제목은 독일어로 ‘사랑의 슬픔’을 뜻합니다. 원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쓰였고, 크라이슬러 특유의 빈풍(빈 왈츠 계열) 정서가 담겨 있어 짧지만 선율이 또렷합니다. 달콤함보다 아쉬움이 먼저 남는 곡으로, 크라이슬러 자신의 연주에서도 과장 없이 노래하듯 흐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곡은 이후 수많은 편곡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기타, 피아노 독주, 실내악 편성 등으로 옮겨지면서 ‘연주자의 해석’을 담기 쉬운 레퍼토리가 되었고, 선율 중심의 구조 덕분에 편성만 바뀌어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커서 속도·호흡·터치에 따라 인상이 크게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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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Kreisler(프리츠 크라이슬러, 1875–1962)는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작곡가였고, 무엇보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성격을 대중에게 가장 우아하게 전달한 인물입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비엔나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신동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빈 음악원과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파리 음악원 콩쿠르에서는 당시 최연소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연주 기교만 놓고 보면 동시대에도 뛰어난 연주자들은 많았지만, 크라이슬러가 특별했던 이유는 소리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과시적이지 않았고, 속도나 음량으로 압도하기보다 노래하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음색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완벽하게 아름답다기보다 인간적으로 매혹적인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작곡가로서의 크라이슬러 역시 중요합니다. 「Liebesleid」(사랑의 슬픔), 「Liebesfreud」(사랑의 기쁨), 「Schön Rosmarin」 같은 짧은 곡들은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바이올린 소품의 정전처럼 많은 음악인들에 의해 연주되곤 합니다. 이 작품들은 구조적으로 복잡하지 않지만, 비엔나 왈츠의 정서와 살롱 음악의 친밀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한때 그는 일부 곡을 “고전 작곡가의 발견 작품”이라고 발표했다가, 훗날 자신의 창작임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 일화는 그가 과거 양식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기 언어로 흡수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가까이서 전하는 악기’로 들리게 만든 음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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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ustic Café의 「Liebesleid」는 바이올린이 선율을 먼저 꺼내는 연주입니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피아노가 받쳐 들어오고, 곧 첼로가 자리를 잡습니다. 세 악기가 한 번에 소리를 밀어붙이지는 않는데, 리듬이 정리되면서 왈츠 같은 걸음이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잡고 가는 구간을 지나면, 어느 순간 피아노가 앞쪽으로 나옵니다. 그때부터는 바톤을 이어받은 듯 피아노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고, 음악은 잠깐 ‘춤’에 가까운 표정을 띱니다. 소리가 화려해지기보다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쪽으로 변합니다.


그러다가 바이올린이 다시 들어오면 속도가 한 번 가라앉습니다. 빠르기가 느려지면서, 춤을 추던 두 사람이 박자와 선율에 맞춰 천천히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사랑의 슬픔’이라는 제목보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을 조용히 되돌려 보는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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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ustic Café는 우리나라에도 팬층이 두텁습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결성된 어쿠스틱 인스트루멘털 트리오입니다. 바이올린·피아노·첼로라는 고전적인 편성 위에 재즈와 팝의 감각을 절제해 얹는 방식으로 알려졌고, 말 그대로 ‘카페에서 흐르듯 듣는 음악’을 표방해 왔습니다. 과장된 기교나 강한 다이내믹보다, 선율의 흐름과 앙상블의 균형을 중시하는 팀입니다.


이들의 음악은 처음부터 “연주를 보여주는 밴드”라기보다, 공간과 시간을 정리하는 앙상블에 가까웠습니다. 바이올린이 선율을 시작하면 피아노가 리듬과 화성을 정리하고, 첼로가 바닥을 잡아 주는 구조가 반복되는데, 각 악기가 튀지 않으면서도 자기 성질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Liebesleid」처럼 원곡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비극적이지 않게, 춤의 리듬과 회상의 온도를 동시에 남기는 연주가 가능합니다.


최근 근황을 보면, Acoustic Café는 대중적인 대형 활동보다는 안정적인 연주와 재발매, 공연 중심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소극장·라이브홀·문화공간 중심의 공연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과거 음반들이 꾸준히 소비되고 있습니다.


버틴 시간의 무게와 같은


흐린 아침입니다. 하늘을 보니 눈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어제보다 포근해진 공기를 느끼면 비가 올 것 같기도 합니다. 접이우산을 챙겨 출근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 좌석에 앉아 있다가 동계올림픽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37세 노장인 김상겸 선수가 땄다는 소식에 마음이 기쁩니다. 비인기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막노동을 했다는 이야기, 서른이 넘어서야 실업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 떠올리면, ‘메달’이라는 결과보다 그가 버틴 시간이 먼저 보입니다. 수상 소감을 말하며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잠깐 울컥했습니다. 올림픽은 늘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의 시간을 한 번에 드러내 줍니다.


오늘 아침에 선곡한 「Liebesleid」 · Acoustic Café는 이런 날씨와도, 이런 소식과도 어울리는 곡처럼 느껴집니다. 바이올린이 선율을 시작하면 피아노가 곧 자리를 잡고, 첼로가 들어오며 리듬이 정돈됩니다. 왈츠처럼 기쁨이 번지는 순간이 있다가도, 첼로가 중심으로 들리는 구간에서는 제목 그대로 조금 더 가라앉는 표정이 보입니다. 악기들이 번갈아 주선율을 맡아 걸어 나오는 방식이어서, 한쪽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감정의 속도를 바꿔 줍니다. 그래서 이 연주는 올림픽 경기처럼, 기쁨과 긴장, 그리고 버틴 시간의 무게와 같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창가에 서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오늘 날씨가 가진 정서가 더 또렷해질 것 같습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오늘은 우산 하나로 충분히 지나갈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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