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음악] Brahms: Symphony No. 4 in E Minor
‘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이 문장은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의 마지막 글 제목으로 머리속에 남아 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 이 코너를 읽어왔다. 신문의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그 짧은 칸만큼은 한 사람이 자기만의 문장을 밀어붙여 세운 견고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록을 살피니 1983년 3월 1일, 「이완용의 집 고목」으로 시작된 그 컬럼은 6,702회라는 거대한 숫자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규태 선생님은 별세 이틀 전까지도 마지막 원고를 올렸고, 2006년 2월 25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매일 썼다는 사실이 죽음과 함께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을 보며 나는 묘한 전율을 느낀다. 첫 글부터 고증의 문제나 해석의 논란이 뒤따랐고, 한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의 시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사랑한 이유는 글의 종착역이 늘 ‘한국인의 일상과 습속(習俗)'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지하 서재에 가득했다는 책들만큼이나 글에서는 풍부한 식견의 냄새가 났고 문장은 정갈했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특유의 온기가 있었다. 그는 마지막 칼럼에서 “많고 빠른 변화가 칼럼을 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으며, “변하지 않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고자 했다”고 고백했다. 이는 매일 쓰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독하고 힘든 일이다. 나 또한 1년 넘게 매일 ‘아침음악’ 코너에 글을 올리고 있다. 짧은 에세이와 노래 소개, 그리고 갈무리의 형식을 지키려 애쓰지만, 음악적 지식이 부족해 검색창에 의지하거나 인공지능의 도움을 빌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고민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덧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다독가도 아니고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은 내게 서문을 채우는 일은 때로 괴로움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발끝에 채이는 일상의 조각들에서 소재를 찾으려 골몰한다. 직원들과 가벼운 농담을 나눌 때도, 손님과 식사를 할 때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문장 하나를 건져 올리려 애를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의 시선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버겁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아침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한 조각의 글을 마무리한다. 비록 이규태 선생님의 거대한 기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뚜벅뚜벅 적어 내려가는 이 걸음들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로 인도해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고독한 문장 끝에 만나는 선율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제 오늘 우리가 함께 들을 음악,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마지막 교향곡 4번에 얽힌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브람스가 예순을 바라보던 나이,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고즈넉한 휴양지 뮈르추슐라크(Mürzzuschlag)에서 탄생한 이 곡에는 노거장의 고뇌와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브람스는 이 곡을 쓰면서 친구에게 참 재미있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곳은 날씨가 안 좋아서 체리가 익지 않아 아주 시큼하다네.
내 음악도 이 기후를 닮아 시큼한 맛이 날까 봐 걱정이야."
당시 대중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에 열광했지만, 브람스는 반대로 아주 차갑고 엄격하며 고독한 음악을 쓰고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이 '시큼하고 어두운 음악'을 외면할까 봐 얼마나 고민했는지,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초연 전, 지인들 앞에서 피아노로 이 곡을 먼저 들려주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곡이 끝나자 당대 최고의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릭(Eduard Hanslick)이 당황하며 외쳤습니다. "세상에, 악장 내내 아주 똑똑한 사람 두 명에게 뭇매를 맞는 기분이군!" 음악이 너무나 치밀하고 논리적이어서 한 번에 소화하기 벅차다는, 브람스다운 지적인 완벽함에 대한 투정이었죠.
브람스는 이 곡에 자신이 평생 존경했던 유산들을 숨겨두었습니다.
바흐의 그림자: 바흐(J.S. Bach)의 칸타타 150번 ‘샤콘느’ 선율을 가져와 4악장의 거대한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구축했습니다. 옛 형식을 빌려 현대적인 슬픔을 표현한 것이죠.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 작곡 당시 그는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을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 정서는 여기서 기인합니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25일 전인 1897년 3월, 암 투병 중이던 그는 공연장에서 자신의 4번 교향곡을 다시 만납니다. 관객들의 기립 박수 속에서 자신의 '시큼한 음악'이 비로소 대중의 마음에 깊이 익었음을 확인한 노거장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숙명을 완수한 뒤에 흘린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가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듣는 1악장은 그 지독한 '고독의 시작'입니다.
한숨의 선율: 첫 시작, 바이올린이 3도씩 툭툭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마치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는 고독한 뒷모습이 떠오른답니다.
지적인 긴장감: 악기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만들어내는 리듬은 브람스 특유의 치밀한 지성을 보여줍니다. 멍하니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정교한 그물망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느끼죠.
숙명의 종결: 마지막의 강렬하고 단호한 마무리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생의 무게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지휘: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연주: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Berliner Philharmoniker)
https://youtu.be/onwEcAR3DV0?si=HJMV7D2k6iR4nMSo
오늘 아침 창밖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습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밤새 땅과 풀, 그리고 나무 위에 내려앉은 서늘한 이슬을 투명하게 비추는 아침입니다. 산책길에 마주한 쌀쌀한 기운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맑은 풍경 덕분에 마음만은 무척 상쾌합니다. 오늘 낮 기온이 15도까지 오른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옵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그의 산문집 《여름(L'Été), 박해연 번역, 출판사-휴머니스트》에 수록된 에세이 〈티파사로의 귀환(Retour à Tipasa)〉에서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적었습니다.
카뮈가 이 글을 쓸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시대를 겪으며 정신적인 겨울을 통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젊은 시절의 찬란한 기억이 깃든 북아프리카 알제의 해안 도시 '티파사(Tipasa)'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쏟아지는 지중해의 햇살과 바다를 마주하며, 고통과 허무라는 겨울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희망이라는 여름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함을 깨닫고 쓴 문장이라고 합니다.
브람스의 이 4번 교향곡 역시 겉으로는 쓸쓸한 겨울의 맛을 낸 듯 보이지만, 그 정교한 선율 아래에는 삶을 향한 뜨거운 의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규태 선생이 매일 아침 차가운 원고지 앞에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발견했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가운 아침의 사색을 지나 포근한 한낮의 볕이 깃든 지금, 브람스의 선율이 마음속에 숨겨진 ‘굴복하지 않는 여름’을 깨웁니다. 오늘의 고단한 숙제를 기쁘게 내려놓으며, 뚜벅뚜벅 오늘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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