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음악] Tartini - Devil's Trill Sonata
“저의 얼굴에 있는 웃음을 만들어 준 사람은 어느 왕입니다. 이 웃음은 온 세상을 덮는 절망을 상징합니다. 증오와 강제된 침묵, 강렬한 노기와 절망을 의미합니다. 고문이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이 웃음은 세력의 웃음입니다. 사탄에게 이 웃음이 있다면 신을 단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소멸되는 것들과 다릅니다. 절대적이므로 정의롭습니다. 그래서 신은 왕들의 행위를 증오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서 그윈플렌이 귀족들을 향해 토해낸 일갈이다. 영국의 귀족 클랜찰리 공작을 증오한 왕의 지시로,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귀 밑까지 찢겨버린 그윈플렌. 그는 평생 웃는 얼굴로 살아야 하는 기형의 몸으로 세상에 버려진다.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이 공작의 정당한 후계자임을 알게 되고, 하룻밤 사이에 낮은 곳의 광대에서 상원 의원의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귀족 사회의 심장부에는 탐욕과 위선만이 가득했다.
영국 여왕 남편의 세비를 올리려는 법안 앞에서 그는 홀로 반대를 외친다. “여러분께서 표결하는 세금을 누가 내는지 아세요? 죽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비웃음의 벽에 부딪히고 법안은 통과된다. 실망한 그가 다시 옛 동료들에게 돌아갔을 때, 연인 데아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윈플렌 역시 그녀를 따라 차가운 바다로 몸을 던지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1802년 오늘 태어난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 『레 미제라블』을 통해 당대의 모순을 고발해온 작가다. 특히 『웃는 남자』는 화려한 외면 뒤에 잔인함을 숨긴 귀족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법 현실과도 서늘하게 맞닿아 있다.
최근 전직 대통령의 내란 재판을 지켜보며, 사법의 잣대가 지위에 따라 얼마나 가변적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란을 주도한 고위 공직자와 군인들에게 내려진 관대한 처분은, 과거 800원과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 기사들에 대한 판결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법원은 기사들에게 ‘신뢰 위반’이라는 엄격함을 보였으나, 국가의 근간을 흔든 이들에게는 고령이나 증거 배제라는 논리로 상식 밖의 관용을 베풀었다.
예일대 법학 교수 대니얼 마코비츠는 저서 『엘리트 세습』에서 이를 “법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고, 권력을 가진 자에게만 변형되어 적용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사법부의 판결 불균형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화된 엘리트 편향, 즉 ‘민주주의의 위장된 해체’에 가깝다. 법이 강자의 웃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될 때, 그 사회는 거대한 '콤프라치코스'가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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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의 탐욕을 가린 엘리트들의 매끄러운 얼굴에서 나는 그윈플렌의 찢긴 웃음을 본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웃음 뒤에 숨은 절망의 크기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다르지 않기에 마음이 무겁다.
1770년 2월 26일,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바이올린의 거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입니다. 세상을 떠난 날, 그를 기억하며, 음악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일화를 가진 곡, <악마의 트릴(Devil's Trill)>를 감상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이 곡이 수백 년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타르티니가 직접 밝힌 기이한 작곡 배경 때문입니다. 1713년의 어느 밤, 수도원에 은신 중이던 젊은 타르티니는 기이한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겼고, 악마는 그의 하인이 되었죠.
타르티니는 악마의 실력을 시험해보고자 자신의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난생처음 듣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연주를 듣게 됩니다.
"악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완벽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과 감성이 담겨 있었죠.
나는 그 숨 막히는 선율에 매료되어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그 환상적인 선율을 잊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오선지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악마의 트릴>입니다. 하지만 그는 훗날 이 곡을 두고 "내가 쓴 곡 중 최고지만, 꿈에서 들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음악 외에 다른 생계수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바이올린을 부수고 음악을 포기했을 것"이라며 평생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이 곡의 백미는 단연 제4악장에 등장하는 초인적인 기술입니다. 일반적인 연주와 달리, 연주자는 한 줄에서 긴 멜로디 음을 끌면서 동시에 다른 줄에서는 끊임없는 '트릴(Trill: 두 음을 빠르게 교차하는 기교)'을 연주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믿기지 않는 연주를 보고 "타르티니는 사실 손가락이 여섯 개일 것이다", 혹은 "정말로 악마가 뒤에서 활을 대신 그어주는 게 아니냐"며 경악했습니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이 기교가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하여 자연스럽게 '악마의 트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타르티니의 삶 자체도 이 곡만큼이나 드라마틱합니다. 1692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법학도였으나, 음악과 펜싱에 미쳐 있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전역에서 알아주는 펜싱의 명수였죠.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사랑'이었습니다. 21세 때 엘리자베타와 비밀리에 결혼했으나, 그녀의 보호자였던 권력자 추기경의 분노를 사 체포령이 내려집니다.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어 아시시의 수도원에 숨어 지내게 된 그는, 그곳에서 참회 대신 바이올린 연마에 몰두합니다. 검객의 날카로운 손놀림이 바이올린의 정교한 기교로 변모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죄를 사면받고 파도바로 돌아온 그는 성 안토니오 성당의 수석 주자가 되었고, 1728년에는 바이올린 학교를 세워 유럽 전역의 인재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는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결합음(Combination Tone)' 현상을 발견한 과학적인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z7rxl5KsPjs?si=NOyL3W76UNECwWm5
음악적 전개: 우아함 속에 숨겨진 광기
이 곡은 어려운 바이올린 연주기법 외에도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시대를 앞서간 드라마틱한 감성이 네 개의 악장에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제1악장 (Larghetto affettuoso): G단조 특유의 애절하고 우아한 선율로 시작됩니다. 마치 악마가 꿈속으로 부드럽게 침입하여 속삭이는 듯한, 서늘하고 매혹적인 유혹의 단계입니다.
제2악장 (Allegro moderato): 분위기가 반전되어 절도 있고 강렬한 리듬이 등장합니다. 타르티니 특유의 화려한 테크닉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며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제3악장 (Andante):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악장입니다. 이어질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 속에서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며 청중의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제4악장 (Allegro assai - Andante - Allegro assai):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자 정점입니다.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가 숨 가쁘게 교차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다가, 마침내 그 악명 높은 '악마의 트릴'이 등장합니다. 한 줄로는 주선율을 켜고, 동시에 다른 줄로는 멈추지 않는 트릴을 쏟아내야 하는 이 기괴하고도 찬란한 음향은, 위선적인 세상을 향한 그윈플렌의 절규처럼 압도적인 전율을 선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악장 구성을 세밀하게 나누어 정리하니,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특히, 마지막 4악장에서 템포가 숨 가쁘게 변하는 모습은, 거친 파도와 같은 삶의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주인공 그윈플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서문에서 다룬 『웃는 남자』의 비극적인 운명과 이 치열한 선율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잘 어우러져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김없이 새벽 산책을 나섰습니다. 얼굴에 닿는 햇빛이 기분 좋게 따사롭고 하늘은 유난히 맑은 것이, 영락없는 초봄의 날씨입니다. 5킬로미터쯤 되는 동네 한 블록을 크게 돌다 보니, 계절이 바뀐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반려견과 함께 활기차게 뛰는 분들도 보이고, 산책을 나오신 어르신들의 걸음걸이도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아파트 뜰에 서 있는 목련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봉오리들이 아직은 열릴 생각이 없나 봅니다. 하지만 저러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환하게 꽃을 피워내겠지요.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말했습니다. “잠자고 있는 괴물은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정의는 깨어 있어야 한다.”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들었던 완벽한 선율을 지상에 옮기려 필사적으로 매달렸듯, 우리 역시 현실의 비틀린 판결 속에서 진정한 정의의 음표를 한 줄씩이라도 다시 써 내려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선곡한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을 듣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 고통스러운 트릴의 소리가, 마치 위선적인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그윈플렌의 외침처럼 들리는 아침입니다.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오늘, 우리 시대의 정의도 저 목련 봉오리처럼 머지않은 시간에 기형적인 웃음이 아닌 온전하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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