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쑥국, 고향 둑방의 쑥 향기 기억 품은 봄의 음식

[아침음악] Procol Harum - A Whiter Shade of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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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서 이맘때면 어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시냇물 흐르는 둑으로 나가셨다. 두어 시간 지나 돌아온 어머니의 바구니에는 연한 쑥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내륙에 위치한 조치원에서는 쑥에 된장을 푼 쑥국을 끓여 저녁 상에 올렸다. 또 쌀가루를 쑥과 함께 섞어 쑥버무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 집에서는 이를 '쑥떡'이라 불렀다. 마땅한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그 투박한 떡은 가장 기다려지는 간식이었다.


어제 스터디카페에서 책을 읽다 점심시간을 넘겨 밖으로 나왔다. 근처 일식당 앞 안내 칠판에 적힌 '도다리쑥국'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아, 봄이구나' 싶어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4인용 탁자에 앉아 도다리쑥국을 시켰다. 잠시 후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나온 국물은 향긋한 쑥 내음으로 코끝을 자극했다. 국물은 익숙한 된장 베이스였다. 도다리 살 한 점과 쑥을 건져 밥 위에 올리고 크게 한 입 넣었다. 쑥의 쌉싸름한 맛이 도다리 살의 달큰함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봄을 깨웠다. 올해 나의 첫 봄 음식은 그렇게 도다리쑥국이 되었다.


도다리는 예로부터 남쪽 바다에서 어부들이 쉽게 잡는 바닷물고기였나 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1년 신유박해로 경상도 장기(長鬐, 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지은 '추회(秋懷)'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꽃게의 붉은 발이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아침마다 대하는 것은 가자미국뿐이네.”


대게와 홍게의 고장인 포항까지 와서 게다리조차 맛보지 못하고 가자미국만 먹는 신세를 한탄하는 글이다. 다산에게는 지겨운 유배지의 음식이었을 가자미국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찾아가서 먹는 별미가 되었으니 세월의 변화가 묘하다.


고향의 어머니는 생선이 들어간 쑥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신다. 평생 내륙에서만 사신 탓인지 생선을 즐기지 않으셨고, 할머니와 아버지도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더 선호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의 봄은 늘 된장 쑥국, 냉이국, 냉이무침, 그리고 쑥버무리였다.


나 또한 도다리쑥국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서야 처음 접했다. 처음엔 씁쓸하고 밍밍한 맛에 이걸 왜 먹나 싶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이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소주 한 잔에 국물 한 스푼을 곁들이는 반주의 맛을 즐기게 되었고, 이맘때면 지인들과 나누는 점심 메뉴의 대부분은 도다리쑥국이 된다.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는 늘 어머니께 냉이국이 먹고 싶다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저녁 상에는 냉이국과 함께 미리 구워 놓으신 삼겹살이 올라온다. 봄에는 이렇게 보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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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발표된 프로콜 하름(Procol Harum)의 데뷔곡이자,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신비로운 곡으로 꼽히는 'A Whiter Shade of Pale'을 선곡했습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잘 어울리는 클래식한 감성을 담고 있죠.


곡의 탄생 배경과 음악적 특징

이 곡은 록과 클래식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주는 '심포닉 록(Symphonic Rock)'의 선구적인 작품이죠.

바흐(J.S. Bach)의 향기: 곡 전체를 지배하는 몽환적인 오르간 선율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칸타타 BWV 140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해먼드 오르간의 깊은 울림 덕분에 마치 아침 안개가 깔린 고요한 성당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폭발적인 성공: 발매 당시 영국 차트 1위를 6주간 지켰으며, 전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시대를 초월한 명곡입니다.


작곡가와 에피소드: "창백한 하얀 빛"

이 곡은 주로 게리 브루커(Gary Brooker)가 곡을 쓰고, 키스 리드(Keith Reid)가 가사를 붙였습니다.

제목의 유래: 작사가 키스 리드는 파티장에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You've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당신 안색이 창백함보다 더 하얗게 질렸어)"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영감을 받아 제목을 지었다고 하죠.

작곡가 게리 브루커: 블루지한 목소리와 탁월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갖춘 그는 202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곡을 연주하며 팬들과 소통했다고 합니다.

법적 분쟁: 오랜 시간이 흐른 2005년, 오르간 연주자 매튜 피셔가 상징적인 오르간 라인을 만든 공로를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2009년 영국 법원은 피셔의 공동 작곡 저작권을 인정하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려 음악계가 놀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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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스토리

이 곡의 가사는 어느 밤의 파티장에서 시작해, 혼란스러운 감정의 끝에서 연인이 서로 멀어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시작됩니다. 천장은 자꾸만 돌아가는 것 같고, 사람들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춤을 춥니다. 노래 속 주인공은 술에 취한 듯, 혹은 분위기에 압도된 듯 정신이 몽롱한 상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사 중에는 영국 문학의 고전인 《캔터베리 이야기》 속 '밀러(방앗간 주인)의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이 이야기는 원래 외설적이고 복잡한 남녀 관계를 다룬 희극입니다. 주인공은 자신과 상대방의 관계가 이 옛날이야기처럼 꼬여 있거나, 혹은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주인공이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진실(혹은 이별의 예감)을 말하려 하자, 상대방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립니다.

"내가 그녀에게 진실을 말하자, 그녀의 얼굴은 '창백함보다 더 하얀 빛(A Whiter Shade of Pale)'으로 변했어."


'창백함보다 더 하얀 빛'이라는 표현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충격, 혹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이 곡의 핵심 이미지로 보여집니다.


노래 후반부(미공개 가사 포함)에는 바다와 바다 요정(Neptune)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더욱 몽환적으로 변합니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결국 이들의 밤은 명확한 결론 없이, 마치 해안가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흐릿하고 서늘한 여운만을 남긴 채 끝이 납니다.


https://youtu.be/LN-q4Gg8SOg?si=zKZ8z2OIOhkfuPB-

이 곡의 시작과 동시에 흐르는 매튜 피셔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Hammond M-102)는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선율을 연상시키는 이 오르간 라인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뚫고 흐르는 장엄한 성가처럼 들리며, 곡 전체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게리 브루커의 보컬은 소울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습니다. 낮은 저음으로 읊조리듯 시작하다가 후렴구에서 호소력 있게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클래식한 오르간 선율과 대비를 이루며 묘한 슬픔을 자아냅니다.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코드 진행 위에 얹힌 이 멜로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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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공기가 비교적 포근하고 상쾌합니다. 낮에는 완연한 봄날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마저 훈훈해집니다. 이 기분 좋은 아침의 햇살 아래서, 김훈 작가의 글귀를 빌려 오늘의 풍경을 갈음해 봅니다.


"봄의 국물은 땅속의 어둠을 뚫고 올라온 초록의 젖줄이다."

출처 : 김훈 작가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 중 '봄의 국물' 대목에서


어머니의 둑방 바구니에 담겼던 쑥도, 어제 일식당 뚝배기 속에서 향을 내뿜던 도다리쑥국도 실은 그 지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도착한 '반가운 기별'이었던 셈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한 프로콜 하름(Procol Harum)의 선율은 그 기별 뒤에 찾아오는 우아한 봄의 축하곡과 같습니다. 바흐의 선율을 닮은 오르간 소리가 상쾌한 아침 공기를 타고 흐를 때, 입안에 남은 은은한 쑥 향기처럼 따뜻한 위로가 여러분의 하루를 감싸 안기를 바랍니다. 포근한 봄날의 시작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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