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110년의 기록, 두 수녀님에 대한 기억

[아침음악] Susan Rigvava Dumas - Rebecca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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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소록도에서 봉사하고,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öger)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 수녀가 43년간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과 살을 부대끼며 지켜온 다짐이다.


오늘, 2월 24일은 소록도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110년이 되는 날이다. 1916년 2월 24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한센인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이곳에 ‘자혜의원’을 개원했다. ‘자혜(慈惠)’라는 이름과 달리, 그 안의 역사는 비탄으로 얼룩져 있었다.


소록도는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시린 상흔을 간직한 섬이다. 2대 원장 하나이 젠사쿠처럼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불린 이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시간은 혹독했다. 환자들은 가족의 동의 없이 해부당했고, 죽어서도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는 비극을 겪었다.


강제 노역과 일본식 생활 강요, 그리고 ‘단종(斷種)’이라 불린 불임 시술과 강제 낙태는 1990년대 전후까지도 이어지며 인간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았다. 8.15 해방의 기쁨조차 소록도에는 비극으로 찾아왔다. 자치권을 요구하던 환자 84명이 병원 직원들에 의해 학살당하는 ‘8.4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척박하고 버려진 땅에 빛이 스며든 건 1960년대였다. 마리안느는 1962년, 마가렛은 1966년 차례로 소록도를 찾았다. 그들은 약을 바를 때 장갑조차 끼지 않은 채 환자들의 곪은 상처를 만졌고,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을 온몸으로 허물었다. 2005년 11월 22일, 고령으로 인해 오히려 섬에 짐이 될까 우려한 두 분은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조용히 고국으로 떠났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두 수녀님은 몸소 증명해 보였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비로소 사람다워지며, 그 바탕은 오로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아침, 소록도 자혜의원 개원 110주년을 맞아 그들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며 음악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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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맨덜리, 그 서늘한 유혹의 선율

오늘 우리가 함께 감상하는 'Rebecca'는 뮤지컬 <레베카>의 상징과도 같은 넘버입니다. 단순히 노래를 넘어, 극 전체를 지배하는 '죽은 자의 존재감'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걸작이지요.


음악적 전개: 비밀스러운 속삭임에서 광기 어린 절규로

이 곡은 도입부와 후렴구의 극명한 대비가 백미입니다.

초반부(Verse): 낮은 저음의 첼로 선율과 함께 댄버스 부인이 은밀하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누군가 목을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을 주며, 단조($Minor Key$)의 선율이 맨덜리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후렴구(Chorus): "레베카~!"라고 외치는 대목에 이르면 곡은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칩니다. 실베스터 르베이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에 록($Rock$) 비트가 가미되어, 댄버스 부인의 숭배에 가까운 집착과 광기를 폭발적으로 보여줍니다.

멜로디의 마력: 반복되는 '레베카'라는 이름의 멜로디 라인은 듣는 이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주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수잔 리그바바 뒤마의 압도적 존재감을 음악영상을 감상하며 확인해 보시겠습니다.

https://youtu.be/kyFOuHlRauk?si=9-u7KgoDGDxORR-7

이 넘버는 새로운 안주인인 '나(I)'가 맨덜리 저택에 들어온 후, 죽은 레베카의 방을 그대로 보존하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댄버스 부인에 의해 불립니다. 댄버스는 '나'에게 레베카의 유품들을 보여주며 그녀가 여전히 이 집의 진짜 주인임을 강요하고, '나'를 심리적으로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가장 소름 끼치는 대결의 순간입니다.


수잔 리그바바 뒤마(Susan Rigvava-Dumas)의 독보적 해석

2007년 'Musical Forever' 콘서트 무대는 수잔이 왜 '세계 최초의 댄버스'인지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실제 뮤지컬 무대에서 쓰이는 파도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효과음(SFX)은 들리지 않지만, 현악기들의 가느다란 떨림과 금관악기의 낮은 울림이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오케스트라가 묘사하는 음악적 파도 위로 수잔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 무대는 순식간에 영국의 거친 해안가로 변모합니다.


수잔은 중저음에서의 탄탄한 공명과 고음에서의 날카로운 힘을 동시에 갖춘 배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기에, 오히려 그 안에 숨겨진 캐릭터의 광기가 더 차갑고 무섭게 다가옵니다. 콘서트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이미 맨덜리의 테라스에서 죽은 안주인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가사 중"Rebecca, komm heim, Rebecca! Aus dem Nebel zu uns...(레베카, 집으로 돌아와, 레베카! 안개를 헤치고 우리에게로...)"라는 대목을 주목해 보세요. 소박하고 진실한 사랑을 베풀었던 소록도의 두 수녀님과 달리, 비뚤어진 집착으로 죽은 자를 불러내려는 댄버스 부인의 노래는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이 강렬한 선율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아침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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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1984년 성 요한바오로 2세 소록도 방문시 마리안느와 마가렛, 우 :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표지)


오늘 아침, 하늘 밑 많은 구름으로 덮혔다. 흐린 날씨가 마치 소록도의 그 옛날 풍경처럼 아스라합니다.


우리가 감상한 뮤지컬 <레베카>의 넘버는 사실 집착과 어둠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하지만 수잔 리그바바 뒤마의 압도적인 음성은 역설적으로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강력한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레베카’가 서늘한 집착이라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의 성함은 따스한 등불 같은 그리움일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Le plus grand bonheur de la vie, c'est la conviction qu'on est aimé.(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소록도의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환자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나를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사랑해준다는 그 확신 때문이었을 겁니다. 비록 110년 전 시작된 역사는 아픔이었으나, 그 끝에 피어난 사랑의 향기는 소록대교를 건너 우리에게까지 전해집니다.


조금은 차분한 이 아침, 강렬한 선율 뒤에 숨겨진 깊은 여운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흐린 날씨 너머로 반드시 밝은 햇살이 찾아오듯, 여러분의 하루에도 명확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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