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음악] Shostakovich: "Leningrad"
새벽부터 들려오는 중동의 소식은 참담함을 넘어 비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얽힌 갈등은 언제라도 확전될 수 있는 긴장 속에 놓여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강경 노선은 국내 정치와 연결된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장기 집권을 둘러싼 정치적 계산 속에서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입니다.
이 긴박한 전운 속에서 어제저녁 한 가지 안도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동 지역의 긴장과 항공편 중단으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UAE, Dubai)에 발이 묶였던 우리 국민 약 300여 명이 에미레이트(Emirates) 항공편을 통해 무사히 귀국했다는 소식입니다.
대통령실 강훈식 비서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는 아부다비(Abu Dhabi)에서 출발하는 에티하드(Etihad Airways) 항공 운항 재개 상황을 지켜보며 대한항공(Korean Air) 전세기 투입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동 지역에는 약 1만 8천 명의 우리 국민이 체류 중이며, 이 가운데 단기 체류자 약 4,900여 명을 우선적으로 귀국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1,000명 이상 수송을 목표로 하는 대응입니다.
타국 국민의 생명을 정치 계산 속에서 다루는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생각하면,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안도감 뒤편에는 여전히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참담한 현실을 떠올리며 저는 80여 년 전 포탄과 굶주림 속에서 태어난 한 편의 교향곡을 떠올립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Leningrad)’입니다.
1. 작곡 배경 — 봉쇄된 도시에서 쓰인 교향곡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레닌그라드 포위전(Siege of Leningrad)'이 시작되었습니다. 872일간의 처참한 봉쇄 속에서 수십만 명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도시 방공대 소방요원이던 쇼스타코비치는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도시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며, 폭력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악보에 기록했습니다.
2. 역사적인 초연 — 굶주림 속의 기적
1942년 8월 9일, 지휘자 카를 엘리아스베르크(Karl Eliasberg)와 레닌그라드 라디오 오케스트라(Leningrad Radio Orchestra)는 기적적인 연주를 선보입니다. 공연 당일, 소련군은 독일군 포병대를 묶어두기 위해 '대규모 반격 포격 작전(Operation Squall)'을 펼쳤고, 그 포연 속에서 울려 퍼진 음악은 시민들에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3. 교향곡의 구성
1악장(침공의 행진): 전쟁의 공포가 점차 거대한 군대처럼 다가오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2악장(사라진 일상의 기억): 평온했던 도시의 기억을 되새깁니다.
3악장(애도): 사라진 이들을 위한 깊은 레퀴엠입니다.
4악장(다시 일어서는 도시): 불협화음을 뚫고 장대하게 확대되는 관현악을 통해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려는 인류의 강인한 의지를 노래합니다.
4. 오늘 선곡한 4악장
4악장은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폐허 위에서 다시 숨을 고르는 인간의 강인함을 그립니다. 1악장에서 들려왔던 나치의 행진곡(침공의 테마)이 공포의 그림자였다면, 4악장은 그 그림자를 딛고 일어나는 '삶의 함성'입니다.
이 악장을 듣고 있으면, 폭격으로 무너진 거리 위로 조심스럽게 첫 햇살이 비추는 아침이 그려집니다. 처음에는 낮게 깔리는 선율이 마치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듯 조금씩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점차 악기들이 하나둘씩 합세하며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칠 때, 그것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우리는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인류의 거대한 합창처럼 들립니다.
https://youtu.be/qH0ukiglw2E?si=ISMB_Lih-M1pIHK_
역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전쟁을 겪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이라크전쟁. 전쟁이 끝나면 승리한 국가와 패배한 국가는 나뉘지만, 그 사이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도시는 폐허가 되고 경제는 무너집니다. 정치 권력은 바뀌지만 사람들의 상처는 오랫동안 남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그 사실을 음악으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굶주림과 포격 속에서도 연주된 이 교향곡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강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존재인지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어제 무사히 귀국한 300여 명의 우리 국민들의 소식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음악을 들으며, 정치적 계산 속에서 희생되는 무고한 생명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떠올립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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