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은밀한 피난처, 나를 마주하는 아지트

[아침음악] Wieniawski, op.15 Variations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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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 종일 스터디카페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틀어박혀 블로그 글들을 읽고, 책을 읽고, 유튜브를 통해 시사 방송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요? 김치찌개? 제육볶음?" 잠시 후 "김치찌개"라는 답이 왔습니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인근 백반집으로 가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스타벅스에 들러 챙겨간 텀블러에 '오늘의 커피'를 가득 담아 길을 걸었습니다. 햇볕이 좋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풍경도 좋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나에겐 힐링이 되었습니다.


자주 가던 PC방 입구에서 멈췄습니다. 들어갈까 말까를 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디를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니 남은 시간이 20여 시간이나 되더군요. 그곳에서 정범식 감독의 2023년 개봉작 영화 <뉴 노멀(NEW NORMAL)>을 시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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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우, 이문식 등이 주연한 이 영화는 6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의 스릴러입니다. 웃지 못하는 여자 현정(최지우)과 가스 검침원 정훈(이문식)의 첫 번째 이야기부터 정동원(승진 역), 이주실(할머니 역), 이유미(현수 역), 최민호(훈 역), 표지훈(기진 역), 하다인(연진 역)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공포를 다룹니다.


혼밥, 혼영, 혼술이 당연해진 일상 속에서 현대인의 고립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지요. 정범식 감독은 온기 있는 따뜻한 밥 대신 빵, 통조림, 샐러드 같은 차가운 음식을 먹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와 결핍을 부각했습니다. 전개와 구성은 신선했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의 플롯은 '뉴'보다는 '노멀'한 우리 주변의 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스릴러물을 볼 때마다 느끼는 특유의 찝찝함을 안고 다시 스터디카페 자리로 왔습니다.


다시 책을 읽습니다.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는 벌써 한 달째 들고 다닙니다. 사색적인 글이라 생각을 많이 하게 해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비로소 의미가 들어옵니다.


정 작가가 2015년에 출간한 에세이 『헤세로 가는 길』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메모했던 노트에서 한 문장을 찾아냈습니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 하나의 은밀한 장소, 숨은 피난처가 있다고. 우리는 언제나 그 속에 틀어박혀서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참으로 적다."


저에게는 이곳 스터디카페가 바로 그 은밀한 장소이자 숨은 피난처입니다. 이곳에 오면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삶이 후회라기보다 부끄러움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반성도 하고 새로운 구상도 합니다. 앞으로는 지방이 발전할 것이라는 나름의 진단을 내리고, 그곳에서 문화, 예술, 독서와 관련된 일을 해보겠다는 사업 구상까지 해봅니다. 누가 뭐라지도 않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에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 장소를 제가 태어난 고향으로 점찍어 두었습니다.


적다 보니 영화 이야기부터 나만의 동굴인 스터디카페, PC방까지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고 싶을 때 하루 종일 박혀 있을 수 있는 이곳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힐링 아지트인 셈입니다.


Henryk Wieniawski, op. 15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for violi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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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니아프스키는 당대 파가니니의 재림이라 불릴 만큼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물리적 한계에 도전했던 연주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이 곡은 단순히 기술을 과시하는 난곡(難曲)을 넘어, 하나의 선율이 어떻게 다채로운 표정을 입고 변주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1854년, 불과 19세의 청년 비에니아프스키가 작곡한 이 곡은 그의 뜨거운 열정과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에 대한 무한한 탐구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기교를 뽐내는 비르투오소적인 음악이 유행이었고, 그는 자신의 연주 기량을 스스로 증명해 내야 했습니다. 이 곡은 그가 단순히 연주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의 영감을 얼마나 정교하게 직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와도 같습니다.


Henryk Wieniawski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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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니아프스키는 1835년 폴란드 루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재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겨우 8살의 나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는 파격적인 기록을 남겼죠. 당시 파리 음악원은 입학 연령 제한이 엄격했지만, 그의 연주를 본 교수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11살에 이미 1등 상을 받고 졸업한 그는, 평생을 유럽 전역을 누비는 ‘바이올린의 방랑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비에니아프스키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입니다. 그는 파가니니의 화려한 기교를 완벽하게 계승하면서도, 거기에 슬라브적인 서정성과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었습니다.


초인적인 테크닉: 오늘 감상하시는 『오리지널 테마에 의한 변주곡』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바이올린의 모든 기교를 섭렵했습니다. 빠른 패시지, 화려한 더블 스탑(두 줄을 동시에 긋는 기법), 하모닉스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청중을 압도했죠.

불꽃같은 활놀림: 그는 활을 쓰는 방식에서도 혁신적이었습니다. 힘차게 내리긋는 강렬한 보잉(Bowing)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이는 낭만주의 음악이 지향하던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도구였습니다.


많은 비르투오소(기교파 연주자)들이 연주 실력에 비해 작곡 수준은 평범했던 것과 달리, 비에니아프스키는 스스로의 연주를 위해 가장 완벽한 곡들을 직접 써 내려갔습니다.


그의 곡들은 ‘연주자를 위한, 연주자에 의한’ 음악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오리지널 테마에 의한 변주곡』은 그가 19세의 젊은 혈기로 쓴 곡이지만, 이미 작곡가로서의 세련미와 연주자로서의 과감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그는 45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협주곡과 소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통과 의례'이자 사랑받는 레퍼토리로 남아 있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는 평생을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불태웠지만, 한편으로는 잦은 연주 여행으로 인한 피로와 불안정한 건강 때문에 누구보다 '안식'을 갈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듣는 이 화려한 변주곡들은, 그가 세상의 소란 속에서 자신만의 고요한 리듬을 찾아내기 위해 쉼 없이 활을 켰던 '작은 여행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화려한 기교 뒤에 숨겨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한 청년의 치열한 내면을 상상하며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9zSHcJp2-ZE?si=e-xr4pXJaAADeBUL

비에니아프스키의 『오리지널 테마에 의한 변주곡, Op. 15』는 마치 한 편의 짧고 화려한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마디마다 바이올린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기교가 압축되어 있어 백과사전 같습니다.


1. 도입부: 서막 (Maestoso & Andante ma non troppo)

곡은 ‘Maestoso(장엄하게)’라는 지시어답게, 마치 왕의 등장을 알리는 듯한 당당한 화음으로 시작됩니다. 이어서 이어지는 ‘Andante’ 부분은 깊은 호흡으로 감정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마치 긴장된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울리며, 앞으로 펼쳐질 폭풍 같은 연주를 앞두고 청중의 주의를 완전히 집중시킵니다.


2. 주제의 제시 (Theme: Allegretto)

드디어 곡의 뿌리가 되는 **‘주제(Theme)’**가 등장합니다. 이 테마는 비에니아프스키 특유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소박하고 우아한 멜로디입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이 선율은, 이후 나타날 기교적인 변주들을 받쳐주는 아주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마치 단순한 흰 캔버스 위에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3. 변화무쌍한 변주 (Variations) : 이제부터 본격적인 ‘기교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Var 1: 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바이올린이 가볍고 날렵하게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꾸밈음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곡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Var 2 (Poco più lento): 조금 더 느긋해진 템포에서 바이올린은 훨씬 감성적인 음색을 뽐냅니다. 긴 호흡의 선율을 타고 흐르는 선율이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합니다.

Var 3 (Risoluto): **‘Risoluto(단호하게)’**라는 말처럼, 곡의 분위기가 일순간 긴박해집니다. 강렬한 보잉(활 쓰기)과 함께 바이올린이 거칠고도 힘차게 줄을 긁어댑니다. 연주자의 손놀림이 가장 바빠지는 구간으로, 듣는 이의 심장까지 조여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4. 화려한 종지부 (Finale & Coda)

Finale (Tempo di valse):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경쾌한 왈츠 리듬으로 전환됩니다. 마치 무도회장에 온 듯 우아하고도 발랄한 분위기가 감돌죠.

Coda (Allegro vivace): 마지막은 **‘Allegro vivace(매우 빠르게, 생기 있게)’**로 휘몰아칩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기교를 모두 모아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구간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건반과 현이 교차하며 폭발적인 마무리를 선사합니다.


이 곡은 ‘단순한 주제가 어떻게 복잡하고 화려한 삶으로 변모하는가’를 보여주는 음악으로 생각됩니다. 처음의 담백한 주제가 변주를 거칠수록 화려해지는 모습은, 우리가 비워낸 일상 위에 다시 어떤 풍요로운 경험들을 채워갈지를 상상하게 만들지 않나요?


나만의 은신처에서 사색

아침 공기가 아직 조금 차갑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다시 하루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조금 걸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하루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Le véritable voyage de découverte ne consiste pas à chercher de nouveaux paysages, mais à avoir de nouveaux yeux.)”


어쩌면 하루를 돌아보는 일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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