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세이]퇴직 이후 필요한 것, 배움과 새로운 가치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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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길이지만 갑작스럽기도 하고 회피하고 싶은 인생의 사건 가운데 하나가 ‘퇴직’입니다. 회사를 호기롭게 그만두고 나면 매일 가던 길과 공간, 그리고 늘 만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어듭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변화가 조금씩 현실로 느껴집니다. 한 달쯤 지나면 정서적인 충격과 당혹스러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감이나 이유 없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직장이란 그동안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고, 하는 일에 대해 존중받으며 열정을 쏟았던 공간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혹은 정년이 되었든 퇴직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정년퇴직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 충격이 덜할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퇴직은 삶의 균형을 한순간에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퇴직 후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퇴직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배우자와 가족의 지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준비입니다. 그러나 비자발적 퇴직자에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재취업이나 사업으로 삶을 이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배우자의 응원과 기다림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퇴직 소식을 가족에게 전할 때 돌아오는 반응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 “무슨 일이 있었어?” “다시 이야기해 보면 안 되나?”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모 대기업에서는 임원들이 갑작스럽게 퇴직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곧장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인문학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어느 날 회장이 “김 이사 어디 있나?”라고 묻고 이미 퇴직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지금 뭐 하고 있나?”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인사담당 임원이 “외국어나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면 회장은 “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해. 일이 많은데 공부는 무슨 공부야. 와서 일하라고 해.”라고 말해 다시 일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기업에서는 퇴직을 당한 뒤에도 외국어나 인문학 같은 공부를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고 있으면 다시 부름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되는 것도 결국 배움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퇴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황과 억울함, 분노의 시간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 일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한 많은 은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배움과 일입니다.


퇴직 직후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움’입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그동안 모르고 있던 세상의 변화를 배울 수 있고, 여러 강의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배움의 시간은 단순한 공부의 시간이 아닙니다. 퇴직 이전에 형성되었던 가치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가치 구조를 다시 설계하면서 자신이 오래 할 수 있는 일, 평생 이어갈 수 있는 일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 과정이 가능하려면 가족의 응원도 중요합니다. 갑작스럽게 퇴직한 가장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말, 그리고 퇴직자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수고했다.” “괜찮다.” “함께 노력해 보자.”는 말입니다.

몇 년 전 동아일보에 실린 정경아 작가의 칼럼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완전한 퇴직은 회사에서 통보를 받은 날이 아니라, 그날부터 시작된 마음속 가슴앓이가 끝나는 순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퇴직은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시작에 가깝습니다. 당사자는 배움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설계하고, 가족은 믿고 기다려주며 함께 시간을 견딥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또 다른 삶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은 흐립니다. 그러나 춥지 않습니다.

이런 날에는 근교에 나가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바람과 공기 속에서 봄이 오는 기운을 직접 느끼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길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다니던 길에서 내려와야 하는 날도 있습니다. 퇴직이라는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알게 됩니다. 길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사람들은 다시 배우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그 과정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지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이 만들어집니다.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봅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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