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떠오르는 어릴 적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처럼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그 사진 속에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빛의 온기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 집은 신작로 옆에 있던 2층짜리 적산가옥이었습니다. 2층 창가에서 신작로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오가고, 미군 지프가 지나가고, 가끔 세단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하나의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러다 졸리면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던 2층 방에서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추위가 찾아오면 늘 생각나는 장소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 옆 길 모퉁이에는 작은 중국집이 있었습니다. 중국집 주방의 외벽은 늘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그 벽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겨울이면 아이들이 놀다가 뒷짐을 진 손을 벽에 대고 기대어 서서 몸을 녹이곤 했습니다.
어느 초봄의 날이었습니다. 햇빛이 따뜻하게 내려오던 날이었습니다. 나는 혼자 그 중국집 주방 외벽에 기대 서 있었습니다. 등을 벽에 대고 햇빛을 받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 속에는 바로 밑 동생과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막내가 함께 놀다가 다친 이야기, 낚시를 하러 갔던 이야기, 그릇을 깨뜨려 혼났던 이야기 같은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늘 내가 없습니다.
어릴 적 찍은 사진들을 보아도 동생들과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더 많습니다. 당시 사진을 찍는 일은 집안에서 꽤 중요한 일이었을 텐데, 나는 사진 속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늘 밖에 혼자 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여 전 만난 여동생도 “어릴 때 큰오빠와 함께한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에도 없는 부재에 대한 동생에게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어머니가 용돈을 주시면 신작로 건너편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았던 기억, 어렵게 사주신 어린이 잡지를 읽던 기억, 혼자 우주인을 만나는 공상을 하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밤이 되면 별을 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유성이 떨어지면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했길래 그렇게 행복했던 것일까요.
국민학교 3학년이 되면서 비로소 친구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내 옆에 앉았던 짝꿍이 기억이 납니다. 2인용 책상 가운데 줄을 그어 서로 넘어오지 말라고 으르렁거리던 기억이 친구라는 단어로 시작된 기억이었으니까요.
고향인근에 살아서 그런지 중학교때 만난 친구는 2명이 남아 자주 연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친했던 친구와는 어느새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채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와도 일 년에 한두 번 식사를 하는 정도입니다. 예전처럼 공통된 이야기가 줄어든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혼자 놀던 시간처럼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니 8천여 개가 넘습니다. 그 연락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갑자기 만나자고 하면 몇 사람이 나올까.”
그 생각을 하다가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몇 줄을 적어 보았습니다.
겨울이 아직 가기 싫은 모양입니다. 아침과 저녁이 되면 여전히 자신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리듯 공기가 차갑습니다. 낮의 포근함만 믿고 얇게 입고 나왔다가 저녁 추위에 낭패를 보는 일이 생깁니다. 어제 저녁이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춥습니다. 게다가 지난 14일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아직 완전히 진화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산불로 발생한 연기가 북풍을 타고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미세먼지가 유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 오후부터 초미세먼지 위기경보가 발령되었고 오늘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추위와 미세먼지로 오늘 하루가 조금 고단할 것 같습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https://youtu.be/U9RxGijXy4g?si=uKfeSNdTF30oBq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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