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Sibelius - 'The Spruce'
아침 공기가 참 포근합니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보드라운 봄의 숨결이 느껴지네요. 이제 산이나 들로 나서면, 발밑까지 성큼 다가와 버린 봄의 기척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겠지요.
우리 아파트 뜰의 목련은 아직 꽃잎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예쁜 자태를 보여주려고 몽글몽글 싹을 틔우며 정성을 다하는 중이지요. 아마 내일모레쯤이면 저 봉오리가 퐁 터져 하얀 꽃송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목련(Magnolia). 새하얀 꽃잎이 맺힌 모양이 마치 물 위에 뜬 진주 같다 하여, '나무 위의 진주'를 뜻하는 영문명 마가렛(Margaret)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이야기도 참 아름답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목련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꽃 식물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무려 백악기(Cretaceous)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아, 인류가 마주하는 '최초의 꽃' 중 하나가 바로 우리 곁의 목련이지요. 수천만 년의 시간을 견뎌낸 그 강인함이 이토록 우아한 꽃잎으로 피어난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봄은 대지가 밀어 올린 귀한 생명이고, 겨울은 그 생명을 안으로 포근히 품어준 계절입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작은 생명들에게 마음속으로 가만히 안부를 묻게 됩니다. “넌 이름이 뭐니”, “나중에 어떤 예쁜 모양으로 자라나려 하니.”
제가 특히 마음을 두는 꽃은 봄 초입의 목련과, '사랑'과 '순수'라는 꽃말을 지닌 '제비꽃'입니다. 하얀 목련을 보면 참 우아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꽃잎이 질 때의 모습은 조금 안쓰러워, 되도록 지는 모습은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곤 합니다.
보랏빛 '제비꽃'은 한식이 낀 4월 초순이 지나 산에 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겠지요. 그때쯤이면 가지마다 새로 돋아난 새싹들이 저마다 초록 잎으로, 혹은 알록달록한 꽃으로 자라날 준비를 마치고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이 작은 꽃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극한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나폴레옹(Napoleon)은 유배지에서도 "제비꽃이 필 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아내 조세핀(Joséphine)에게 변치 않는 마음을 전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비꽃 잎이 담긴 펜던트를 소중히 간직했다고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가 그린 그의 뮤즈,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검은 옷깃 위에 브로치처럼 정성스레 꽂혀 있던 그 작은 제비꽃 뭉치를 떠올려 봅니다. 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그림 속에 담긴 보랏빛 꽃잎도 좋겠지요. 그 작은 잎사귀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랑캐꽃'이라는 거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 빛깔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참 고결합니다.
동양화 속 목련이 '정원의 귀부인' 같다면, 제비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는 '대지의 보석' 같습니다. 하나는 곱게 자란 우아함이요, 하나는 길가에 피어도 숨길 수 없는 순수함이지요.
오늘 저녁, 광화문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이 열린다고 하네요. 그들의 상징색인 보라색이 마침 제가 기다리는 제비꽃과 닮았습니다. 팬들이 흔드는 수많은 응원봉 물결이 봄밤의 광화문을 보랏빛 제비꽃 들판으로 먼저 꽃피워 주겠지요. 그 이른 개화를 상상하며, 오늘은 북유럽의 깊은 숲을 닮은 시벨리우스(Sibelius)의 음악을 꺼내 봅니다.
https://youtu.be/vD7jiXWqhPs?si=slzFXJn7YrQZRuu0
1914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있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살던 핀란드 역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고통받던 시기였죠. 전쟁으로 인해 독일 등 해외에서의 저작권료 수입이 끊기자, 시벨리우스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때 그는 대작 교향곡 대신, 출판이 쉽고 대중적인 소품 위주의 피아노 곡들을 많이 작곡하게 되었는데,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이 '5개의 피아노 소품(Op.75)', 일명 '나무(The Trees)' 시리즈입니다.
시벨리우스는 평생 핀란드의 대자연, 특히 숲과 나무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교향곡이 거대한 성벽이라면, 피아노 소품은 정원의 꽃과 같다"고 말하곤 했죠. 당시 그는 알코올 의존과 후두암 수술 이후 건강과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북유럽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 나무들을 보며 깊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가문비나무(The Spruce)'는 그가 가장 아끼던 나무 중 하나였으며, 어쩌면 이 곡은 거센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곡은 특정 화려한 무대에서 초연되었다기보다, 당시 핀란드 가정 내 피아노 보급과 함께 가정용 음악(Hausmusik)으로 널리 사랑받으며 퍼져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품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북유럽 특유의 서늘한 정서와 서정성이 높게 평가받으며 시벨리우스 피아노 곡 중 가장 유명한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도입부: 곡은 'Stretto'로 시작하며 잘게 부서지는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입니다. 마치 숲속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듯한 정경을 묘사합니다.
주제 멜로디: 곧이어 아주 서정적이고 애잔한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단조의 우울함 속에 북유럽 특유의 투명함이 서려 있으며, 첼로의 깊은 울림을 연상시키는 낮은 음역대의 선율이 인상적입니다.
전개: 곡의 중간부인 'Risoluto' 섹션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강인하고 단호한 화음이 전개됩니다. 이는 거센 눈보라를 견뎌내는 나무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악기적 특징: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오케스트라적인 풍부한 울림보다는, 맑고 차가운 공기의 질감을 살리는 섬세한 터치와 절제된 페달링이 강조됩니다.
연주자 소개: 카즈마사 마츠모토 (Kazumasa Matsumoto) 영상의 연주자 카즈마사 마츠모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섬세한 해석과 투명하고 맑은 음색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특히 시벨리우스와 같은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영상에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가문비나무의 고고함과 내면의 강인함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포근함은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선물 같습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Sibelius)의 '가문비나무'를 듣고 있으면, 화사한 봄꽃 이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목련의 우아함도, 4월에 만날 제비꽃의 순수한 아름다움도 결국은 모진 겨울바람을 견뎌낸 뿌리 덕분이겠지요. 도종환 시인이 노래했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말처럼 가문비나무 역시 거센 눈보라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비로소 그 푸른 정적을 완성했습니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불패의 여름이 있음을 깨달았다(Au milieu de l'hiver, j'apprenais enfin qu'il y avait en moi un été invincible)." 아무리 춥고 힘든 겨울이라도, 우리 마음 안에는 그것을 이겨낼 따뜻한 여름이 이미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백악기부터 피어난 목련이거나 순수한 제비꽃이거나, 제 시기에 맞추어 피어나는 모든 존재는 참 귀합니다. 오늘 저녁 광화문을 채울 보랏빛 물결 또한 각자의 고독을 견뎌온 이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거대한 봄일 것입니다. 시벨리우스(Sibelius)가 그려낸 가문비나무의 짙은 향기를 상상하며, 아직 오지 않은 꽃들을 기다리는 이 시간도 충분히 따뜻하고 편안합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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