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잉크 냄새 나는 종이신문과 책은 사유의 도구

Abdulkadir Çağlar 연주 : 쇼팽의 왈츠 3곡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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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는 오랫동안 신문을 구독하셨고 저는 자연스럽게 신문을 접하며 자랐습니다. 당시에는 경향신문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 주변에서도 그 신문을 보는 집이 적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는 늘 신문이 있었고,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가장 먼저 알게 해주는 것이 그 신문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신문을 직접 배달하기도 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에는 사설을 필사하며 글을 읽는 시간을 반복했습니다. 모르는 한자는 아버지께 물어가며 익혔고, 문장을 따라 적는 과정에서 글의 흐름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웠습니다. 그때의 필사는 숙제라기보다 문장을 따라가며 생각을 따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읽는 일이 아니라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어를 익히고 문장의 구조를 익히는 과정이었고, 한 줄의 문장이 다음 문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자와 단어가 쌓였고, 문장을 읽는 힘이 조금씩 만들어졌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신문을 꾸준히 읽으며 정치와 경제를 보는 눈을 넓히려 했고, 기사와 칼럼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의 기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사를 함께 읽으면서 같은 사건이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글과 글 사이를 스스로 채워보는 습관도 그때부터 생겼습니다.


이후 홍보 업무를 하면서는 매일 조간신문을 살피고 기사를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문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흐름을 읽는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과 소제목만으로도 그날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고, 서로 다른 기사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국제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도 그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을 읽는 시간은 결국 사건을 아는 시간이 아니라 맥락을 따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보다, 왜 일어났고 어디로 이어질지를 생각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가 쌓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옮겨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정보를 손안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선택해서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종이신문은 원하지 않는 기사도 함께 마주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접하게 합니다. 저는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신문을 읽는 시간은 정보를 얻는 시간이라기보다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관심 밖에 있던 주제라도 제목을 통해 한 번 눈에 들어오고, 그 작은 접촉이 생각을 조금씩 넓혀 줍니다. 그 과정이 쌓이면서 읽는 힘도 함께 자란다고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신문을 읽고 필사했던 시간들이 문해력을 만들었고, 한자와 단어를 익히는 바탕이 되었으며,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해 이해하는 힘을 길러 주었습니다. 문장을 따라 읽는 습관이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종이신문이 좋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 삶에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종이를 넘기며 읽는 시간은 정보를 따라가는 속도와 생각을 정리하는 속도가 비슷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종이로 된 책과 신문, 잡지를 읽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는 여전히 자연스럽고, 유익하며, 편안합니다.




쇼팽의 왈츠 3곡

00:00 - 03:24 Waltz in B Minor (Op.69, No.2)

03:24 - 07:20 Waltz in C# Minor (Op.64, No.2)

07:20 - 09:21 Waltz in A Minor (B.150, Op. Posth)

https://youtu.be/JE4In5fQ814?si=mFYiMx_hW092RMI7

오늘 아침, 창밖으로 스치는 봄 풍경과 함께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쇼팽의 왈츠 3곡을 선곡했습니다.

쇼팽에게 왈츠는 단순히 '춤을 추기 위한 곡'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화려하고 흥겨운 왈츠와 달리, 쇼팽은 이를 귀족적인 우아함과 시적인 감수성을 담은 '감상용 왈츠'로 재탄생시켰죠. 그래서 쇼팽의 왈츠는 무도회장보다는 화려한 살롱이나 고요한 방안에 더 잘 어울립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세 가지 보석 같은 곡들


① B단조 왈츠 (Waltz in B Minor, Op.69, No.2)

배경 및 일화: 이 곡은 쇼팽이 19세(1829년) 무렵 작곡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판된 '유작'입니다. 쇼팽은 생전에 이 곡이 출판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해요. 아마도 본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애틋한 감정이 담겨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악적 전개: 처음 시작하는 B단조의 멜로디는 마치 안개가 낀 듯 쓸쓸하고 우울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잠시 장조로 바뀌며 햇살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 다시 슬픈 테마로 돌아오죠.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곡입니다.


② 올림 C단조 왈츠 (Waltz in C# Minor, Op.64, No.2)

배경 및 일화: 쇼팽의 왈츠 중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죠. 1847년, 쇼팽이 건강이 악화되고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결별할 무렵의 고독감이 녹아있습니다.

음악적 전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은 한숨을 쉬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 두 번째는 조금 빨라지며 회전하는 듯한 느낌, 세 번째는 다시 차분해지는 구조입니다. 특히 쉼표를 활용한 밀고 당기는 리듬(Rubato, 루바토)이 일품이라 연주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③ 가단조 왈츠 (Waltz in A Minor, B.150, Op. Posth)

배경 및 일화: 이 곡은 아주 짧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순수합니다. 쇼팽이 제자들을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악보가 늦게 발견되어 작품번호(Opus)가 정식으로 붙지 않고 나중에 발견된 순서인 'B.150'으로 불립니다.

음악적 전개: 장식음이 섞인 애잔한 멜로디가 반복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진실된 느낌을 주어 많은 초보 연주자부터 거장들까지 즐겨 찾는 '작은 보석' 같은 곡입니다.


연주자 소개: Abdulkadir Çağlar (압둘카디르 찰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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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인 압둘카디르 찰라르(Abdulkadir Çağlar)는 튀르키예 출신의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복잡한 기교보다는 곡이 가진 본연의 정서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의 연주 영상들은 시각적으로도 매우 차분하고 예술적인 미장센을 보여주어, 귀로 듣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는 힐링까지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의 쇼팽 해석은 과하지 않은 담백함 속에 깊은 슬픔을 담아내어 현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쇼팽의 왈츠에 열광할까요?

음악학자들은 쇼팽의 왈츠를 "피아노로 쓴 시(Poetry for the Piano)"라고 부릅니다. 슈만(Robert Schumann)은 쇼팽의 왈츠를 보고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려면 적어도 상대가 공작부인(Countess) 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그 고결함을 극찬했습니다.

쇼팽의 왈츠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 '고독'과 '환희'를 동시에 건드립니다. 기쁠 때 들으면 우아하고, 슬플 때 들으면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 같죠. 특히 오늘처럼 맑은 봄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출근길에 들으면 마음의 소음을 잠재우고 평온함을 찾게 해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나를 찾아가는 왈츠


오늘 아침,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유난히 맑습니다. 기상청은 이번 주 내내 이 따뜻한 봄의 향연이 지속될 것이라 예보하더군요. 출근길 이어폰을 통해 흐르는 쇼팽의 왈츠는 잉크 냄새 가득했던 나의 옛 기억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쇼팽의 왈츠는 화려한 무도회장을 위한 곡이 아닙니다. 고독한 방 안에서, 혹은 홀로 걷는 길 위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영혼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앙드레 지드는 그의 저서 『쇼팽 노트를 위한 노트』에서 "쇼팽은 제안할 뿐,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종이 신문의 행간처럼 우리가 스스로 사유하고 느낄 수 있는 '여백'을 선물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왈츠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바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맑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버스 안, 쇼팽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여러분에게도 문해력을 넘어선 '삶의 이해력'을 더해주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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