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el - Menuetto in G minor
틈, 빛은 그 틈사이로 들어온다.
유튜브 숏츠 영상에서 한 이야기를 보았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쉽게 넘기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괜히 한 번 더 멈춰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옛날 나무꾼이 있었다. 매일 아침 산 위 옹달샘으로 물을 길러 올라갔다. 양쪽 어깨에 두 개의 항아리를 매고 다녔는데, 하나는 매끈하고 단단한 새는 곳이 없는 완벽한 항아리였고, 다른 하나는 오래되어 여기저기 틈이 생긴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 채워 내려오면 완벽한 항아리는 그대로 가득 남아 있었지만, 오래된 항아리는 절반쯤만 남아 있었다.
이 일이 반복되자 오래된 항아리는 결국 나무꾼에게 말했다. 자신을 버리고 새것을 쓰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그러자 나무꾼은 그 항아리를 데리고 다시 산길을 걸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한번 보거라.”
길 한쪽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척박한 길이었지만 그쪽만은 유독 색이 있었다. 나무꾼은 말했다.
“네가 흘린 물 덕분에 꽃이 자랐다.”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틈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건네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멈췄다.
완벽한 사람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잘 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결점이 있어서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진다는 말도 떠올랐다. 물론 결점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스스로도 감추고 싶은 부분이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와 함께 있다 보면, 감추고 싶던 부분은 결국 드러난다. 그때 관계는 멀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깊어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 틈을 통해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관계도 조금 더 단단해졌던 것 같다.
레너드 코헨(Léonard Cohen)은 그의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모든 것에는 틈이 있고,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온다고.)”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는 위로처럼 들렸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틈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에고(Ego)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적 자아이고, 셀프(Self)는 내면 깊은 곳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존재라고 한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해진다. 그래서 자기 공감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나도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해 퇴직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직원들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나이가 되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이 정말 괜찮아서 나온 말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말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후자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정관스님과 셰프 제프 고디너(Jeff Gordinier)의 일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남는다. 정관스님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오히려 그 음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았다는 이야기였다. 타인의 평가에서 한 발 물러났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틈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 틈을 가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 틈이 남아 있어야만, 무엇인가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틈을 스스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느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https://youtu.be/5ctnesYYicM?si=7BQo33WeJojk3SLl
이 곡은 헨델의 대규모 작품처럼 특정 사건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교육용 혹은 살롱 음악의 성격을 지닌 소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델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다양한 건반 소품들을 남겼고, 이 곡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헨델은 이 시기 이미 오페라 사업의 흥망을 겪으며 음악가로서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1720~30년대 런던 오페라 시장은 경쟁이 치열했고, 재정적 압박과 관객 취향 변화 속에서 헨델은 점차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이처럼 격변 속에 있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반 소품들은 오히려 담담하고 정제된 형태를 유지합니다.
이 곡에서도 감정은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신 짧은 선율 안에 미묘한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게 만드는 여백이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처럼 공식적인 초연 기록이 남아 있는 곡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귀족 가정이나 살롱, 또는 교육 현장에서 연주되던 실용적인 음악에 가까웠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이러한 건반 소품들이 일상적인 음악 교육의 중요한 재료였고, 연주자들이 손에 익히며 음악적 감각을 키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주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곡은 특정한 “첫 공연”보다, 수많은 연주자들의 손을 거치며 살아남은 음악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연주는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1895~1991)의 편곡 버전입니다.
원곡은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위한 음악이지만, 켐프는 이를 현대 피아노로 옮기면서 음의 연결과 울림을 확장시켰습니다. 하프시코드는 음이 짧게 끊어지는 특징을 가지지만, 피아노는 페달과 터치를 통해 음을 이어가며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어 피아니스트들에게 자주 연주하는 레퍼토리입니다.
켐프의 편곡은 바로크의 선율에 낭만적인 숨결을 더한 해석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 곡은 과거의 음악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곡은 짧은 형식 안에서도 매우 정교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주제부는 단순한 음형으로 시작합니다. 반복되는 리듬 위에 짧은 동기가 이어지며, 마치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단조(G minor)라는 조성은 밝기보다는 약간의 긴장과 내면의 무게를 동반합니다. 그러나 과장된 비극성은 없습니다.
멜로디의 특징은 크게 도약하지 않고, 좁은 음역 안에서 움직이며 안정감을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반복과 변주를 통해 동일한 구조가 조금씩 변형되며, 듣는 이에게 익숙함과 새로운 느낌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특히 피아노 연주에서는 왼손의 단순한 반주 위에 오른손 선율이 또렷하게 드러나며, 음 하나하나의 길이와 터치가 곡의 분위기를 결정짓습니다.
또 강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조용히 시간을 정리하는 음악에 가깝습니다. 짧은 곡이지만, 듣다 보면 생각이 길어집니다.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말을 멈추게 하는 쪽에 가까운 음악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아침에 듣기에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에 듣기에도 어울립니다. 감정을 채우기보다, 이미 쌓인 감정을 가볍게 내려놓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 곡을 연주한 조성진(Seong-Jin Cho, 1994~ )은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연주는 과장된 표현보다 구조와 균형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미묘한 색채를 만들어내는 해석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바로크 음악, 특히 헨델과 같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곡에서도 조성진은 감정을 과하게 덧입히지 않습니다. 대신 각 음의 길이와 간격, 그리고 호흡을 통해 음악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연주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곡 자체를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오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갑습니다. 낮에는 기온이 19°C까지 올라 포근한 봄날 같겠지만, 퇴근길 무렵이면 다시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겠지요. 계절의 바뀜도 결국 겨울이라는 단단한 껍질에 틈이 생길 때 시작되는 법입니다. 변화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외투 한 벌과, 마음의 균열을 응시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함께 듣는 헨델(Händel)의 '미뉴에트 G단조'는 바로크 특유의 절제미 속에 깊은 우수를 품고 있습니다.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의 편곡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Seong-Jin Cho)씨의 타건으로 듣는 이 곡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여백'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 여백은 마치 우리 삶의 '틈'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그의 저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의 슬픔이 당신의 몸 안으로 들어와 당신을 통과해 지나가게 하십시오. 슬픔이 낯선 손님처럼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조용히 머물러야 합니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강제적인 퇴직이든, 뜻하지 않은 이별이든,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균열은 부끄러운 결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낯선 슬픔이 내 안을 완전히 통과하도록 자리를 내어줄 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빛이 들어온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아침, 조성진의 투명한 타건이 여러분의 마음속 숨기고 싶었던 틈새마다 따뜻하게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그 틈 사이로 흐르는 물이 언젠가 여러분의 길가에 작고 아름다운 들꽃을 피워낼 것임을 믿으며 음악을 띄웁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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