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독백에서 빛의 질주로: 멘델스존과 임윤찬의 시간

Mendelssohn: Fantasia in F♯minor, Op.28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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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낳은 천재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Felix Mendelssohn Bartholdy)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19세기 전반의 유럽은 결코 평온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더 이상 궁정의 화려한 장식물로만 머물 수 없게 되었고, 베토벤이라는 거인이 남긴 거대한 그림자는 여전히 유럽 음악계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 뒤를 잇는 젊은 작곡가들은 고전주의의 균형과 질서를 몸에 익힌 채, 그 틀을 조금씩 흔들며 자기만의 내면을 밀어 넣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멘델스존은 유난히 독특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였지만, 감정을 마구 쏟아내기보다 절제와 형식미 속에서 불안과 열정을 빚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멘델스존의 음악은 겉으로는 정교하고 아름다운데, 그 안에서는 늘 어떤 긴장과 초조, 말하지 않은 동요가 함께 움직입니다. 그의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단정한 얼굴 뒤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내면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1828년에서 1830년 사이, 이 곡을 처음 구상했을 무렵의 청년 멘델스존은 일종의 그랜드 투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을 떠나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그는 북유럽 특유의 황량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받은 인상은 훗날 「핑갈의 동굴」 서곡과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고,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는 이미 ‘스코틀랜드 소나타(Sonate écossaise)’라는 이름도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바로 「환상곡 올림바단조(Fantasia in F-sharp minor), Op.28」입니다. 이 곡 역시 단정함 속에 복잡한 내면을 숨기고 있던 멘델스존의 성격을 대단히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에 멘델스존 특유의 완벽주의적 고뇌가 서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830년 무렵 이미 이 작품의 초고를 써 두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한동안 서랍 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러다 1833년에 이르러 지금의 형태로 다시 다듬었고, 이듬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존중하면서도 ‘환상곡’이라는 이름을 붙여 형식적 자유를 꾀한 선택은, 보수적인 음악 질서와 새롭게 밀려오던 낭만주의의 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했던 멘델스존의 음악적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곡이 어떤 민속 선율을 직접 차용한 작품이라기보다,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이 불러오는 정서, 곧 거칠고 습한 공기와 바위에 부딪히는 차가운 파도, 폐허가 된 성벽 주변을 감도는 적막,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서늘한 우울감을 피아노의 언어로 옮긴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민요풍의 색채보다 밤의 습기와 바람의 방향이 먼저 떠오릅니다. 멘델스존은 베토벤을 깊이 존경했던 작곡가였고, 이 작품의 올림바단조라는 조성 또한 어딘가 비극적이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당시의 청중들에게 이 곡은 단순한 피아노 소품이 아니라, 한 편의 서사시를 건반 위에 펼쳐 놓은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당대의 거장 이냐츠 모셸레스(Ignaz Moscheles)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이 곡이 단순히 감상적인 정경 묘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피아노 문법과 연주 기술을 전제로 쓰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멘델스존은 감정을 흐릿하게 번지게 두지 않고 정교한 선으로 새기는 작곡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역시 손끝의 명료함과 섬세한 구조 감각,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이 곡은 듣는 이를 단순히 아름다운 세계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첫 악장부터 마음을 흔들어 놓고, 둘째 악장에서 잠시 발걸음을 가볍게 돌리는 듯하다가, 마지막 악장에서 다시 한 번 불안과 의지를 한 덩어리로 몰아칩니다. 격렬한데 흐트러지지 않고, 어두운데 무너지지 않는 이 숭고한 균형. 멘델스존은 여기서 낭만주의의 감정을 다루되, 결코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감정을 다루는 품격이 이 곡을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새벽에 그쳤습니다. 창밖의 아침은 아직 흐릿하지만, 구름 너머 어딘가에서 천천히 밝아오는 기색이 느껴집니다. 곧 맑은 하늘을 보게 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멘델스존의 이 환상곡을 듣는 마음도 이와 닮았습니다. 첫 선율은 마치 짙은 먹구름 아래 홀로 서 있는 듯 차갑고 서늘하지만, 음악은 그 어둠 속에 결코 주저앉지 않습니다. 흔들리며 걷고, 잠시 가벼운 발걸음을 되찾으며, 마침내는 거침없는 질주를 통해 스스로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곡이 끝난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순히 격정적인 음악의 잔상이 아니라, 흐린 안개를 뚫고 맑은 대지로 걸어 나온 듯한 개운한 해방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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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2년 8월 13일, 폴란드 두즈니키-즈드로이(Duszniki-Zdrój)에서 열린 제77회 국제 쇼팽 페스티벌(International Chopin Festival)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한 이는 임윤찬이었습니다. 쇼팽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에서, 반 클라이번 우승 직후 세계의 주목을 받던 그 시기에 그는 이 불안하고도 정교한 환상곡을 택했습니다. 화려한 과시보다 집중력과 내면의 긴장을 요구하는 이 작품을 프로그램에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임윤찬의 연주로 이 곡을 마주하면 그 감동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유리알처럼 맑은 타건 속에 숨겨진 내면의 불안을 정직하게 응시합니다. 그의 손길을 거친 멘델스존은 더 이상 박제된 낭만주의자가 아닙니다. 요동치는 감정을 끝까지 질서 있게 붙들며, 스스로의 삶과 예술을 우아하게 지켜냈던 한 인간의 뜨거운 의지로 다시 살아납니다.


젊은 멘델스존이 이 곡 안에 담은 것은 풍경의 묘사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던 두 가지 힘, 곧 흔들림과 통제, 꿈과 구조, 어둠과 우아함을 함께 넣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곡은 ‘환상’이면서도 막연하지 않고, ‘소나타’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습니다. 피아노 한 대로 이루어진 음악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바람을 듣고, 추격을 느끼고, 자기 마음속 어두운 복도를 걷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멘델스존은 끝까지 아름답고, 끝까지 긴장하며, 무너지지 않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오늘 아침의 공기와 유독 잘 어울립니다.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밝아지고 있는 하늘, 비에 젖은 흙내음, 그리고 그 사이로 조금씩 선명해지는 마음의 결들. 멘델스존이 끝내 지켜낸 것은 단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면을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한 사람의 품격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아침 그의 음악은 귀로만 듣는 곡이 아니라, 마음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조용히 보여주는 한 편의 기록처럼 남습니다.(마침)


임윤찬이 연주하는 Mendelssohn: Fantasia in F♯minor, Op.28

https://youtu.be/dQDJFOibbWw?si=RAVyGQcy0Yd1NY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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