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심연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서사시

-젊은 망명자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Op.23」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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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벽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창밖을 오래 두드리던 빗소리가 아침이 되자 조금씩 잦아들고, 흐리게 내려앉아 있던 구름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맑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늘은 분명히 밝아지고 있고, 조금 지나면 봄날답게 따스한 주말이 열릴 것 같습니다. 이런 아침에는 지나치게 환하고 가벼운 음악보다, 한 차례 젖은 마음을 지나 천천히 빛으로 가는 음악이 더 어울린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제게는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Op.23」이 바로 그런 곡이었습니다.


젊은 쇼팽이 느끼던 짙은 고독과 우수를 표현한 곡, 저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쇼팽은 흔히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지만, 그 별명이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순간도 아마 이 발라드를 들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곡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슬프다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표정을 품고 있습니다. 조용히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흔들리는 마음이 숨어 있고, 선율은 노래하듯 흐르다가도 갑자기 몰아치며 듣는 이의 가슴을 세게 건드립니다. 그래서 이 곡은 피아노곡이면서도 한 사람의 내면이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 작품이 태어난 시기를 떠올리면, 그 안의 정서가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에 머물던 젊은 망명자였습니다. 당시 바르샤바의 봉기는 러시아 군대에 의해 진압됐고, 독립운동의 지도자 차르토리스키와 시인 미츠키에비치 등 폴란드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조국을 떠나 파리로 속속 망명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쇼팽 역시 그 시대의 상실을 통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고향, 손에 잡히지 않는 조국, 그리고 젊은 예술가로서의 자부와 외로움이 한데 뒤엉켜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곡에는 단순한 낭만보다 더 짙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 뒤에 설명하기 어려운 그늘이 있고, 그 그늘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기운이 있습니다.


이 곡을 두고 미츠키에비치의 시 「콘라드 발렌로트」와 관련 지어 말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다만 이 곡은 특정 줄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표제음악이라기보다, 시를 읽고 마음에 남는 우수와 비장함, 그리고 시대의 상실감이 음악 속으로 스며든 작품에 더 가깝습니다. 클래식 칼럼니스트 이채훈은 이를 두고 가슴에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시’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다른 세 곡의 발라드에 비하면 유독 장엄한 ‘서사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곡은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데도 자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듣는 사람마다 다른 장면을 그릴 수 있지만, 그 장면 속 공기의 결은 어딘가 비슷합니다. 외롭고, 어둡고, 그러나 끝내 꺾이지 않는 마음 말입니다.


이 곡에는 당대의 인상적인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쇼팽과 동갑내기였던 슈만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발행하던 「음악신보」를 통해 쇼팽의 음악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라이프치히에서 쇼팽의 새로운 곡들을 들은 슈만은 특히 이 「발라드 1번」에 깊이 끌렸다고 전해집니다. 슈만이 이 곡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쇼팽 역시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는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괜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네 곡의 발라드 가운데서도 1번은 유난히 첫인상이 강하고, 처음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단번에 붙잡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마음이 버티고 흔들리고 끝내 무너질 듯 치닫는 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 저는 자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동안 폐허가 된 도시에서 굶주림과 공포 속에 버티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슈필만은 독일 장교 빌름 호센펠트에게 발각됩니다. 숨을 곳도, 변명할 말도 없는 순간, 장교는 그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슈필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피아니스트라고 답하자, 장교는 폐허 속에 남겨진 피아노 앞으로 그를 데려가 연주해 보라고 합니다. 그 장면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기에는 화려한 무대도 없고 객석도 없기 때문입니다. 먼지와 폐허, 굶주림과 죽음의 공기만 있을 뿐입니다. 야위고 지친 몸의 슈필만은 피아노 앞에 앉아 손을 건반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연주하기 시작하는 곡이 바로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입니다.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존엄을 끌어올리듯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그 연주에 감동한 호센펠트는 슈필만이 빈 집의 다락방에 숨도록 돕고, 이후 정기적으로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그 순간 이 곡은 단지 유명한 피아노곡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음악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이 곡은 아름답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격정적이지만 천박하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를 지나온 사람의 품위를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은 아마 사진처럼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밤새 비가 내린 뒤의 아침 하늘처럼,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도 처음부터 환하게 열리는 음악은 아닙니다. 이 곡은 젖어 있고, 흔들리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품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어두운 자리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깊은 고독과 우수를 통과한 끝에, 무언가를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 같은 것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같은 봄 주말 아침에 이 곡이 더 잘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비를 지나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젊은 쇼팽의 외로움과 격정이 담긴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도 날씨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흐릴 때가 있고, 젖을 때가 있고, 쉽게 걷히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은 끝내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조금씩 빛 쪽으로 나아갑니다.


조성진의 연주로 듣는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는 바로 그런 음악이었습니다. 상실과 고독, 우수와 격정을 지나 끝내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음악. 한 편의 시처럼 시작해 한 사람의 생애처럼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오래 남는 침묵을 남기는 곡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창밖의 구름이 조금씩 걷혀 가듯, 이 음악도 우리 안의 젖은 마음을 조용히 지나가며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비 갠 뒤의 하늘처럼 조금은 밝아진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게 됩니다.(마침)


글을 읽으신 후 피아니스트 조성진씨가 연주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Op.23」를 감상해보세요

https://youtu.be/taY5oHleS4I?si=5fjsp7omH4gy5c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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