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ändel, Lascia ch'io pianga (Sop. 조수미)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음악은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오래 붙들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선율이 좋아서 듣기 시작하지만, 듣다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사정과 시대의 공기, 말하지 못한 슬픔이 뒤늦게 따라옵니다.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제게는 늘 그런 곡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곱고 단정합니다. 억지로 울음을 짜내지도 않고, 감정을 거칠게 밀어붙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듣고 나면 마음속에 묵직한 것이 남습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더 아프고, 너무 맑아서 오히려 더 슬픈 곡. 그래서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아름다움이란 때로 사람을 위로하기보다 먼저 조용히 붙잡아 세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헨델(Handel)이 이 곡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런던(London)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람과 돈, 소문과 유행이 몰려들던 도시였고, 예술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빠르게 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한때 영국은 청교도 혁명의 영향으로 연극과 음악이 움츠러들었던 시기를 지나야 했지만,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런던(London)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헤이마켓(Haymarket)의 여왕극장(Queen’s Theatre)을 비롯한 공연장은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는 관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오페라는 더 이상 왕실과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낼 수 있는 도시의 사람들도 그 화려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었고, 젊은 헨델(Handel)은 이 도시가 음악가에게 얼마나 큰 기회가 될 수 있는지 누구보다 빨리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는 1711년 런던(London)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작품은 헨델(Handel)이 영국 음악계에 확실히 자리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리날도(Rinaldo)」가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이 고요한 아리아의 이미지와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관객이 본 무대는 꽤 떠들썩하고 화려했습니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전쟁과 사랑, 마법과 구출이 뒤엉켜 있었고, 무대에는 번개가 치고 환상적인 장면이 이어지는 등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시각적 장치들이 아낌없이 동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화려한 소란 한가운데에서 이상하리만큼 오래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가장 단순한 노래 한 곡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불꽃과 마법을 보러 갔다가, 정작 마음속에는 붙잡힌 한 여자가 조용히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는 이 짧은 아리아를 담아온 것입니다.
이 곡을 부르는 인물은 알미레나(Almirena)입니다. 적에게 붙잡혀 자유를 빼앗긴 채, 자기 운명을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사를 옮기면 더욱 절절하겠지만, 저는 이 곡의 진짜 힘이 그 절절함을 드러내는 절제의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절규하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울게 해 달라고 말하지만, 그 울음마저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슬픔은 종종 크게 드러날 때보다, 이렇게 단정한 목소리로 놓일 때 더 깊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헨델(Handel)은 런던(London) 관객을 열광시키는 법도 알았지만, 어디에서 사람의 마음이 조용히 무너지는지도 정확히 알았던 작곡가였습니다.
이 곡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영화 「파리넬리(Farinelli, 1994)」를 함께 기억합니다. 영화 속에서 이 음악은 단순한 아리아를 넘어, 찬란한 목소리와 잔혹한 시대가 겹쳐지는 비극의 상징처럼 남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조금 더 흥미롭습니다.
헨델(Handel) 역시 파리넬리(Farinelli)의 명성을 모르지 않았고, 런던(London) 오페라계는 그를 일찍부터 데려오고 싶어 했지만 그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파리넬리(Farinelli)는 헨델(Handel)의 무대가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던 귀족 오페라 쪽에서 런던(London) 관객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영화가 만들어놓은 인상과 실제 오페라사의 결은 조금 다르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그럼에도 그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비극적인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천상의 소리라며 열광했지만, 그 소리는 한 인간의 몸이 치른 돌이킬 수 없는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알미레나(Almirena)의 자유를 향한 탄식인 동시에, 한 시대가 아름다움을 위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으로도 들립니다.
저는 이 곡이 그래서 더 좋습니다. 슬픔을 크게 흔들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안의 조용한 상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소리 높여 우는 음악도 많고, 기교로 압도하는 음악도 많습니다. 그런데 헨델(Handel)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선 듯하지만, 더 정확한 자리에서 우리를 건드립니다. 끝까지 남는 것은 자유를 잃은 존재의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무너뜨리지 않고 노래로 견뎌낸 인간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아름다운 음악이기 전에, 우리가 오래도록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음악입니다.
오늘 아침은 참으로 맑습니다. 며칠간 내린 비와 어제의 미세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 햇살이 들어서며 시야를 한결 또렷하게 열어줍니다. 스마트폰 예보대로 낮 기온이 25도까지 오른다면, 오늘은 완연한 봄의 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주일이 될 것 같습니다.
미사를 드리고 난 뒤에는 가까운 곳을 천천히 걸어보려 합니다. 이제 끝을 향해 가는 벚꽃의 마지막 모습과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나무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오늘의 봄을 눈에 오래 담아두고 싶습니다.
헨델(Handel)의 음악이 귀에 오래 남고, 조수미(Sumi Jo)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음을 조용히 건드렸다면, 이제는 바깥의 봄 풍경이 그 자리를 이어줄 것 같습니다. 자유를 잃은 슬픔을 끝내 노래로 견뎌낸 알미레나(Almirena)의 아리아를 듣고 나면, 오늘처럼 맑은 날의 평온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비가 그치고 공기가 맑아진 자리, 꽃이 지면서도 또 다른 잎과 빛이 올라오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이 고귀한 선율은 오늘 우리가 마주할 연둣빛 풍경 위에도 조용히 머무는 듯합니다.(마침)
음악을 감상해보세요. G.Händel, Lascia ch'io pianga (Sop. 조수미)
https://youtu.be/eBBd425-zHw?si=_O08g5WU_XXEeGZ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