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데이트
"다 큰 아들이랑 둘이서 여행이라니. 이러기는 쉽지 않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엄마는 이따금 서글픈 이야기를 덤덤하게 한다. 다만 그것은 결코 덤덤해서가 아닐 테다. 어쩌면 그 말은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괜스레 비장해지는 마음을 내려두고 철이 없는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당일에 갑작스레 취소된 뮤지컬을 뒤로 한채 아늑한 식당에서 떫은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생각보다 맛없는 요리를 맛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계속되었다. 엄마의 말을 오래 듣는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는 엄마의 중학교 시절 등굣길에 대해, 아빠와 처음 만난 카페에 대해 들었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함께 그 길을 걸으며 들으니 노련한 가이드와 함께 엄마를 공부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가이드님은 사진 촬영을 요구하셨는데 마침 공연이 취소된 세종문화회관이 보여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과 함께 그 후로도 종종 찰칵- 찰칵- 셔터 소리를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평소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게 특별했다. 하루를 온전히 내어 엄마랑 함께 있으니 2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내 걸음걸이가 더 빨라져서 걸음을 맞추게 된 것. 나머지는 똑같았다. 여전히 엄마의 마음은 보폭이 커서 내가 아장아장 걸어갈 때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니까. 무덤덤한 아들이 어떤 마음일지 늘 헤아려주니까.
"거봐, 내가 분명 좋을 거라고 했잖아"
여행을 다녀와서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오늘 저녁 내내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런 귀한 시간을 놓쳐버릴 뻔했다. 마지막이 아닌 시작으로, 이번을 계기로 부지런히 이런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