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첫째의 생일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마지막 생일이라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한 번도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한 적이 없어 친구들 초대할래 물으니 싫다고 했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은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 주었다. 먹고 싶은 거 없냐고 하니 딱히 없대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 먹었다.
하아... 어떻게 해야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되려나..
브런치 글 중에 죽음을 앞둔 엄마의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작가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쓴 편지였다. 어느 책에선 사춘기 아이들에게 매일 칭찬 편지를 쓰신다는 작가님의 글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첫째가 만 12세가 되는 동안 단 한 번도 편지를 쓴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매년 어버이날과 생일에 짧게나마 쓴 편지를 받아왔는데 왜 나는 한 번도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글들을 읽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장이라도 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쑥스럽고 어색했다. 이번 생일을 계기로 편지를 쓰기로 했다. 생일이라니 얼마나 좋은 타이밍인가.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기억에 남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때 기분은 마치 짝남에게 고백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느낌이었다. 서로 사랑을 확인한 후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편지가 아니라, 짝남이 나의 고백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이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기대와 걱정의 마음으로 쓰는 편지였다. 짝남이 내 마음을 받아주길 바라듯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브런치에 편지 에피소드를 적으려고 아이에게 썼던 편지를 사진 찍어 놓았다. 그걸 오늘 브런치에 옮겨 쓰다가 지워버렸다. 다시 읽어보니 육아서에 나온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한다' 던가 자기 계발서에 나온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된다'라던가 하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편지를 쓸 당시엔 스스로 감동했건만. 아이가 당혹스럽진 않았을지 걱정이 살짝 들었다.
그래도 편지를 건네었을 때 아이의 표정과 읽고 나가면서 나를 꼬옥 안고 뽀뽀해 주던 모습에 편지 내용이야 어떻든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싶다.
편지를 쓰면서 아이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안겨준 아이, 자라면서 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아이, (아! 물론 좌절과 슬픔도 함께 알게 해 줌) 정말 내 아들로 태워나 줘서 감사한 아이였다는 것을.
아이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하니 왜 자기에겐 안 써주냐고 볼멘소리를 하던 신랑이 편지에 자기 이름도 넣어 달라고 했지만 넣어 주지 않았다. (어디서 묻어가려고 ㅋㅋ)
대신 신혼 때 쓰고 멈춰 있던 연애편지를 다시 써봐야겠다. 생각보다 편지는 쓰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