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잘 사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느낀 기분을 설명하려면 업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나는 건축공사를 하는 건설회사에서 일한다. 건설회사는 나라에서 인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법에서 정한 인원만큼 있어야 개업과 영업을 할 수가 있다. 우리 회사는 법에서 정한 인원만 있는 아주 소규모 기업이다.
나도 건축과를 나와서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일은 전공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하면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애 전담 어린이집 특수교사였음) 건축을 배우고 싶어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갔다. 졸업도 하기 전에 부산에서 꽤 규모가 큰 건축설계사무실에 취업을 했다. 1년 정도 다녔을 때 집안 사정 상 그만두고 아빠 일을 도와야 했고 1년 정도 후 다시 취업을 준비하려고 했을 땐 건축 설계일을 구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었어.)
공사에 대한 행정적인 업무와 각종 서류 및 견적등을 하는 사람을 공무라고 칭한다. 건설업에선 현장뿐만 아니라 본사에서 처리해야 할 행정적인 업무도 상당히 많다. 나는 본사 공무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에 다녔던 회사는 회계 담당하는 분이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공무일까지 하기 버거워 공무일만 할 사람을 뽑는 곳에 들어간 경우였지만, 지금 회사는 워낙 소규모라 자격증이 있는 공무를 뽑아 회계 업무까지 하게했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싫었다. 일이 많아서 힘든게 아니라 (오히려 일이 너무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위대한 꿈이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닌 오로지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생계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군)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경력 단절이 생겨났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마다 연봉이 늘 그대로인 것도 속상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꿈이 있는데 육아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해야 한다며 우울하다는 엄마들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였다. (나도 82년생인데..)
'생계가 아니었으면 회사를 그만 두고 집안일과 육아를 즐겁게 했을 것이다.' 라는 말이 아니다. 집안일과 육아도 정말 하기 싫고 힘드니까..
그저 꿈과 목표를 위해 일하고 애쓰는 여느 사람들이 부러웠고 나도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여기서 반전은 하고 싶고, 좋아 하는 일이 없었다는 거)
이런 마음이니 회사 안에 있는 게 얼마나 괴로웠을까.
경제적 자유라는 트렌드가 화두가 되면서 나도 그 트렌드에 편승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코인과 주식도 해봤고 부동산 공부도 했다. 이것들만 성공하면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두거나 취미로만 다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건설업 경기가 안 좋고 회사가 준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어그러지면서 내가 입사한 4년 동안 일이 많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았다. 덕분에 난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웃긴 게 공부하는데 일 시키면 짜증이 났다. (아니 이게 무슨 ㅋㅋㅋ) 주객이 전도되도 한참 된 것이다.
지금 세상은 워라밸이 찰나의 유행이 아닌 하나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어떤 워라밸은 회사 생활을 단순 돈벌이의 수단으로, 퇴근 후의 나를 진짜 나이자 온전한 나로 정의한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건 퇴근 후 자유를 즐기는 나도, 천근만근인 월요일 출근길의 나도 모두 하나의 삶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회사라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나 역시 삶 속에 함께 존재한다.
- 마테터의 밑줄 中
현재를 잘 살기 위해 내가 가진 회사에 대한 의미부터 다시 정립했다.
아무나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지만 아무나 나만큼 잘하지는 못 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 감사하다.
생계가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아이들 케어하면서 다닐 수 있었고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책도 실컷 읽었다. 월급 밀리지 않고 따박따박 잘 나오고 점심도 지원해 주니 좋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상사, 동료와의 갈등도 없다. 대부분 혼자 사무실에 있고 내가 일 처리만 확실히 하면 부딪칠 일 전혀 없다.
이렇게 적고 보니 참 좋은 회사였네? 내가 더 열심히 일 한다고 해서 인센티브 팍팍 나오고 연봉 수직 인상될 가능성은 절대 없는 회사지만 적어도 다녀야 하는 동안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렇다고 회사를 평생 다니겠다는 건 아니다. 분명 퇴사 이후의 삶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이직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그만 둘 때 인수인계 하는 것도 너무 귀찮아서 이 회사 망할 때까지만 회사를 다닐 생각이다.
(실제로 3번 인수인계 해봤는데 한 명은 일주일만에 그만 두고 한 명은 1년 동안 전화왔음. 나머지 한 명은 사장님 딸이라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 듯)
아! 물론 회사가 승승장구해서 안 망하고 내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기꺼이 귀찮은 인수인계를 감당할 수도 있다.
평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괴롭고 가기 싫은 곳이 아닌 (그렇다고 회사 가고 싶어서 새벽부터 설레진 않겠지만) 회사 안에서 내가 온전히 존재하고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집중하는 충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뭐든 마음먹기 달렸다던가? 난 이 말이 정말 와닿지 않았었는데 스스로 경험을 해보니 정말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되기도 지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