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만 하면 수 분 내에 잠이 들었다. 쿨쿨 콜콜하고 깊이 잠이 드는 엄마는 목적지가 바뀌어도,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의심이 많고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뒷자리의 가운데에 앉아 바깥 상황을 주로 관찰했다. 물론 그러다가도 스르륵 언니들 사이로 끼어 들어가 엄마와 언니들처럼 쿨쿨 콜콜 졸다가 침을 흘리다가 다시 졸다가를 아주 많이 했던 것 같다. 졸지 않고 아빠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아빠의 차 쌍용이의 편안함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른함이 몰려오는 날이 적지 않았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 나서 꼬마였던 내가 어른이 되어 내 차를 갖게 되었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재울 수 있을 정도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몹시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움직이는 물체 안에서 잠들려면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을 아주 깊이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잘 가겠지, 어쨌거나 죽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등의 무한하고 깊은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운전면허를 딴 나는 천만 원을 대출받아 중고차를 샀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돈을 써본 적은 처음이라 믿기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따면서 높아진 운전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에 힘입어 아빠에게 운전을 배워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가져온 내 차를 보고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는 내 차를 한번 직접 운전해보았다. 차에서 내린 그는 말을 시작했다. 브레이크가 너무 가볍다, 엑셀이 너무 가볍게 밟힌다, 경적이 너무 아가씨의 소리라 "우아앙" 또는 "우어엉 팡"하는 중저음의 소리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사륜구동이 아니라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어떻게 다닐 거며, 비가 많이 올 때는 어떻게 다닐 거냐 등등. 짧은 시간에 다양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빠의 잔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빠에게 운전 연수를 받을 수는 없겠구나. 돈이 아까워도 꼭 친절하고 말이 없는 여자 선생님께 연수를 받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한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운전을 배워도 불편하지 않은 여자 선생님이라 운전을 배우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선생님은 작은 언니에게 운전을 알려줬던 운전 연수 전문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녀가 말수가 적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참을 만했다. 물론 도로 위에서 의지할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참아야 했다는 게 맞다. 선글라스에 장갑을 착용한 그녀는 나를 공항 주변의 넓은 도로로 데려갔다. 가장 오른쪽 차선에서 시작해서 점차 가장왼쪽에 있는 좌회전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연습했다. 차선 변경과 차선 변경 그리고 차선 변경을 반복한 끝에 유턴에 유턴에 유턴을 반복했다.
이 정도로 광폭의 도로에서 차선 변경에 차선 변경을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과 유턴에 유턴을 반복해야 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선생님은 이게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그렇게 좌회전 깜빡이와 유턴으로 가득한 운전 연수를 마치고 나서 혼자만의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로 위에는 다양한 운전 선배님들이 계셨다. '초보운전' 딱지를 귀엽게 봐주고 양보를 해주는 인자한 선배님. '초보운전'을 붙여서 대놓고 빵빵거리며 무시하던 선배님. 나도 초보니까 다른 건 안중에도 없다고 하는 듯한 초보 선배님들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진정 도로 위에 다 모인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왕복 1시간 40분여를 직접 운전하고 출퇴근을 했다. 도로 위에서 하지 않아야 할 행동과 기꺼이 해야 하는 행동들이 내 머리속에 빅데이터처럼 쌓였다. 예를 들면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은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이고 양보는 기꺼이 해야 하는 행동에 속했다.
하루는 이제 막 운전 가능자가 된 나와 엄마, 남동생이 아빠의 쌍용이 2를 타고 시골에 내려가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운전을 배운 것을 처음 후회한 날이 되었다. 운전 가능자인 내 눈에 우리 집 유일한 운전사였던 아빠는 좋은 운전 선배가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차선을 바꿀 때마다 깜빡이의 존재를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깜빡이 없이 자연스럽게 미꾸라지처럼 차선을 바꾸는 유려하고 위험한 운전을 했다. 누가 끼어들라치면 구두쇠처럼 깐깐하게 굴며 차선을 양보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빠 깜빡이를 왜 안 켜시는 거에요. 아빠 양보 그냥 해주시지." 나는 아빠의 운전을 간섭했다. 차라리 운전하기 전에 아빠의 차를 마음 편히 얻어탔었던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왠지 내가 운전을 배우기 전에 아빠의 차를 안락하게 느꼈을 때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괜히 화가 나고 많이 슬펐다.
한번은 아빠, 엄마, 남동생 이렇게 셋이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 아빠가 제주도에 간 건 20년도 훨씬 더 된 일이라 유난히 신이나 보였다. 그 무렵의 나는 돈은 많았고 시간은 없었다. 큰맘 먹고 연차를 써야 하는 여름휴가와 같은 것을 매일 보는 가족들과 쓰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연차를 내기 어렵다고 얼버무렸고 제주 여행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제주를 여행하고는 며칠 만에 조금 그을린 채로 돌아왔다. "재미있었어 엄마?"하고 묻자 엄마는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아빠가 차 사고를 냈어. 그래서 그날 이후로 얼마나 시무룩해졌는지. 너무 속상했지, 뭐야." 아빠는 사고가 일어난 날, 여행을 위해 빌렸던 차를 신나게 운전하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와 동생은 원래대로 아빠의 운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졸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했을 것이다. 아빠는 평소의 습관과 다름없이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 변경을 했고 뒤에서 빠른 속도로 오던 다른 렌터카와 부딪혔다고 했다. 평생 접촉사고 하나 없이 잘 해왔던 운전인데 이번 일로 아빠가 엄청나게 속상해하는 것 같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게. 내가 불안하더라니." 괜히 속상해서 내가 한마디 보탰다. 아빠가 잔소리하고 큰소리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났다. 그 후 나는 아빠 차를 얻어타게 되도 깜빡이 켜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빠보다 내가 뭔가를 더 잘하게 되고 아빠보다 내가 뭔가를 많이 알게 되는 일은 슬프고 찝찝하다.
엄마는 제주도 여행 이후 아빠의 차에서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 매번 운전 좀 조심히 해주라고 아빠에게 부탁한다. 아빠는 툴툴거리며 신경쓰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말한다.
내가 운전을 하기 전으로, 돈을 벌기 전으로, 대학에 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럼 아빠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아빠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며 끄덕거리고 있을 텐데. 아빠의 차에 가족들과 함께 실려 꾸벅꾸벅 졸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