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껌딱지가 되어줄게

여자가 먼저 하는 프로포즈

by mamang


연애를 시작한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다른 매일같이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나의 복잡한 머리와 다양한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대략 이런 것이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 "그는 나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이렇게 그와 1년, 2년의 허송세월을 하다가 늙어만 가겠지?" "그러다가 그는 저울질하던 다른 매력적인 여자에게 가버릴 테고" "나는 아마 다시는 연애를 하지 못할 거야." 미미한 신세 한탄에서 시작한 나의 걱정은 그 크기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모든 감정을 잠식했고 나는 이걸 매일 반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청혼할 수는 없어." 나는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이 나는 결혼이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에 격하게 공감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교제를 하는 남자친구에게 "나와 결혼해줄래?" 또는 "내 아를 낳아도." 하는 다정하고 터프한 제안은 최고의 애정 표현 말고 다른 말도 표현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마 그때 눈물을 팡 터뜨리고 말겠지?그때의 내 나이는 30대 중반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청혼을 받는 상상과 반지를 끼어보는 감동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수십번 리플레이되었다.


이렇게 여러 번 다양한 버전의 프러포즈에 놀라는 척하는 상상을 해보다가 이번 주, 다음 주, 그 다음 주에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만난 지 6개월 만에도 잘 결혼도 하고 그러더니만. 왜 나는 이러는 거야?"


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딱 1주년을 앞두고 있던 어느 주말, 나는 그를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선 그가 지인의 결혼식장에 있던 토요일 오전, 나는 강남의 한 케이크 전문점에 가서 그를 위한 케이크를 만들었다. 어떤 문구를 쓸까 고민하다가 음. 이렇게 적었다. "평생 예쁜 껌딱지가 될게."


호불호가 아주 갈릴 수 있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마저도 약간 섬뜩하기까지 했지만, 별수 없지 않은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정하지 않았다.


케이크 집 사장님의 "좋은 결과 있으시길!" 하는 묵직한 응원을 듣고 길을 나섰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지인의 결혼식장에 간 그를 직접 내 차로 데리러 갔다. 그렇게 나는 그를 태워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물론 그는 케이크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남한산성 위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는 길에 케이크를 들고 가서 짜잔 하고 케이크를 열면서 프러포즈를 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야무지게 등갈비찜을 먹었고 물론 나는 그보다 훨씬 열심히 먹으며 긴장감을 달랬다.


차를 타고 카페로 이동 주차를 한 후 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아. 오빠 우리 곧 다가오는 1주년을 기념해서 내가 케이크 사 왔어. 커피랑 케이크랑 같이 먹자."


"응? 지금? 배부르지 않아? 우리 아까 등갈비 많이 먹...." 그의 말을 끊어버린 나는 "응. 나는 먹을 수 있어." 하고 대답한 후 앞만 보고 카페로 향했다.


어색하게 카페에서 메뉴를 고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케이크를 열어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마음만 급한 내가 케이크를 짜잔 하고 꺼냈다.


당초 나의 계획은 "나는 오빠가 너~어~무 좋아. 우리 결혼하자앙!" 하고 말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이게 너무나 낯간지러운 일인지라 케이크를 그냥 꺼내서 상자위에 올려놓고 '이제 알아들었겠지?' 하며 괜히 창밖만 보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는 내가 차에서 케이크를 꺼낸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고 한다.


"하하하. 케이크 맛있겠다. 마망이가 만들었어?"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에게 물을 것도 없는 질문을 한다. '그럼 이런 모양의 케이크가 어디에 있겠니?' 나는 생각만 이렇게 했으며 친절히 대답했다. "웅. 내가 아침부터 강남에까지 가서 이렇게 만들구 글씨두 쓰구." 그리고 덧붙였다. "오빠 근데 이거 무슨 말인지 알지?"


그는 끄덕거리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나저나 마망이 정말 신여성이구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심하게 끄덕거렸다. "응. 나는 신여성이야. 그러니까 결혼 추진해보자."




여기에서 바로 결혼이 추진되었다면 나의 속은 조금 덜 탔을 텐데. 5월에 프러포즈를 받은 그는 6개월이 지난 11월이 되어서야 답 프러포즈를 했다. 6월의 나는 매주 주말을 앞두고 그의 답 프러퍼포즈를 기대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연습했다. 7월의 나는 그에게 괜히 화를 냈다가 짜증을 냈다가 했다. 8월의 나는 나의 비관적이고 쓸쓸한 미래를 상상했으며 9월과 10월의 나는 내려놓음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허탈함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은 남자가 추진해야 진행이 되는 것 같아." 결혼 선배님들의 말을 비웃으며 여자가 먼저 하는 프러포즈를 했던 나는 결혼 선배님들의 말을 격하게 공감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이런 시니컬한 농담을 그에게 종종 건넸다.


"오빠. 요즘 아기 엄마들 정말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요즘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들도 참 예쁘네요. 했거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뭐라는 줄 알아? '예뻐야 애기 엄마가 되는 거야.' 그래. 나는 예쁘지 않으니까 아기 엄마가 될 수 없을 거야. 그렇지?"


아무튼, 그는 내가 답 프러포즈에 대한 기대도 하지 못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나에게 청혼을 했다.


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온 그는 금요일 저녁 나에게 을왕리에 가서 회를 먹자고 했다. 엉덩이 뜨끈한 보일러가 들어오는 오래된 바닷가 식당에 앉아 양껏 회와 매운탕을 먹은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가 말한 '이 주위 어딘가에 있는 예쁜 카페'를 찾아 한참을 차로 빙빙 돌았다. 알고 보니 그 카페의 문은 닫혀있었고 우리는 빙빙 돌다가 어느 부둣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금요일 저녁이지만 한산했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바닷가에서는 피융피융하고 귀여운 폭죽 소리가 들렸다.


"오. 잠깐만. 기다려줘." 하고 그가 문을 열고 차 바깥으로 나가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꽃다발과 손바 만 한 쇼핑백, 그리고 편지를 내밀었다.


'응? 여기에서?'라고 잠시 생각했던 나는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평소 말로 누군가를 구슬리는 게 익숙지 않은 그가 꾹꾹 눌러 성실하게 써 내려간 편지에서는 나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배려와 따뜻한 마음은 항상 넘치게 받아왔지만, 이렇게 어떤 뭐랄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중장기계획 또는 그 이상과도 같은 프러포즈 편지라니. 그는 편지 말미에 나의 아내가 되어주라고 말했다. 왁자지껄 주변에 떠드는 사람이 없었고, 흘려보내 버리는 말로 얼버무린 프로포즈가 아니라 참 좋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고 조용하고 어두운 그 바닷가가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금이야!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각지 못한 이벤트였기에 평소 수도꼭지처럼 펑펑 자주 우는 내가 울지를 못했다. 한두 방울 눈알에 매달려있던 게 다였다. 그가 물었다. "마망이 안 우네? 별로야?" 나는 아니라고 너무 예상치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 속으로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이거 기다리느라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안 나오나 봐...."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걸 무척 힘들어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연애도 잘 할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혼자서 잘 해낼 자신이 없었고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할 수 있다는 확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내 마음이 한결 나아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은 서둘러 결정하고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프러포즈를 공평하게 주고 받았고 결혼을 했고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인화하고 앨범에 붙여놓는 마음으로 소중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신혼인 우리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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